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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Tree May 31. 2023

초등생 의대 준비반

수학 말고 '화학'은 안녕하십니까?

대한민국 초등학생에게 '의대 광풍'이 몰아쳤다. 어느 한 입시업체의 설문조사에 의하면 초등학생 5명 중 4명은 의학계열 진학을 위해 공부한다고 한다.


초등생들이 의대입시에 뛰어들어 유튜브와 SNS에 15시간, 17시간 공부했다는 인증을 남기고 의대 진학을 위한 정보를 공유한다. 대치동 학원가에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10명 이하의 '초등 의대반'이 성행한다고 한다. 물론 이런 소수 정예반에 들어가려면 치열한 경쟁률의 레벨 테스트를 거쳐야 한다. 


아마도 부모들은 의학계열이 미래에 가장 이상적이고, 자녀가 성인이 되었을 때 사회에서 인정을 받을 것이고, 경제적으로 충분한 보상이 주어 질 것이며, 초등학교 1-2학년인데 아이가 '수학'에 재능을 보이니까 무조건 '의대'라고 학원으로 달려간다.   


나는 골수문과체질이고, 의대 근처에 가보지도 않았지만 십수 년 대입컨설팅과 미국대학을 다닌 경험으로 그 살인적인 현실을 대충 알고 있다. 


미국은 손에 꼽을 극소수 대학을 제외하고는 학부에 의대가 없다. 대학 4년 동안 의과대학진학을 준비하는데 이를 '프리메드 (Pre-med)'라고 한다. '프리메드(Pre-med)를 한다'는 것은 의과대학 준비를 위해 대학에서 주로 생물, 화학, 생화학을 전공한다는 것을 뜻한다. 


결국 의과 대학원에 진학해서야 정식 의과대학에 진학하게 되는 셈이다. 대학에서 프리메드를 하고 있는데 '의대에 합격했다'라고 말하는 한인 학부모들이 간혹 있는데 큰일 날 소리다. 대학별로 차이가 있지만 프리메드학생들의 의과대학 진학률은 40% 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MCAT (Medical College Admission Test)라는 의과대학진학 시험의 연간 응시자 10만 명 중 50%는 낮은 점수 때문에 의과대학 지원을 포기한다.

   

그렇다면 의과대학 진학은 왜 이리도 악명 높게 어려울까? 


의과대학 진학의 필수과목은 화학, 생물 그리고 물리다. 그리고 그중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과목은 화학이다. 한국의과대학 커리큘럼도 비슷하겠지만 미국 프리메드학생이 택해야 할 필수과목은 이렇다.

 

* 6~7개의 화학수업 + 실험수업

* 5개의 생물수업 + 실험수업 

* 3개의 물리수업 + 실험수업

* 2개 이상의 영어 글쓰기 수업

* 2~4개의 수학수업


그렇다면 왜 이렇게 어렵고 많은 화학수업을 들어야 할까? 진정한 의사에게는 '진단'이 가장 중요한데 뛰어난 관찰력과 이미 알고 있는 판단을 근거로 새로운 판단을 유도하는 추론, 즉 연역적 추론 (deductive reasoning)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화학이 그러한 근본적인 교육에 최적화된 학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화학은 의과대학 준비생들에게 이 공부를 계속할지 판가름하는 과목이 된다. 프리메드학생의 의대진학 상담 시 "화학점수가 잘 나오지 않으면 의과대학을 포기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프리메드 학생들에게 화학은 '불행'과 동의어로 통한다. 


대학 1학년 때 전공이 뭐냐는 질문에 프리메드라고 답하는 학생들이 제법 되지만 2학년이 되면 그 답변은 "프리메드였지만...." (I used to be pre-med, but....")으로 바뀐다. 프리메드 학생들의 대학 1학년 과목 중에는 소위 잡초를 제거하는 과목 (weed out class)이 있다. 그것이 바로 '화학'이다, 그것도 유기화학 (Organic Chemistry) 수업이다. 


고등학교 때 화학은 숫자를 공식에 대입하고 정답을 찾아내는 거였지만, 대학의 유기화학 문제는 판이하게 다르다. 문제를 진단하고, 무엇이 가능한지, 적절하지 않은지 등을 배제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의료행위의 기본이 되는 것이다. 


프리메드를 마치고 미국 의과대학에 지원하기 위한 필수사항은 아래와 같다. 

 

* 대학 평균 학점 3.5 이상, 이 중 과학과목은 평균 A 마이너스

* 200시간 이상의 봉사활동

* 의과대학시험 MCAT 고득점 또는 탑 10%

* 리서치/연구경력 및 발표논문의 제1저자

* 충분한 쉐도윙 (Shawing) 시간, 즉 의사가 환자를 진료하는 현장을 지켜보는 관찰학습 시간 

* 리더십 활동 및 3~5개의 추천서


위의 필수사항이 다 충족된다고 해서 원하는 의과대학으로부터 입학허가서를 쉽게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보통 20곳 이상의 의과대학에 지원하는데 인터뷰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경우도 많다. 거기다 비용도 만만치 않다. MCAT 수험료는 310달러이고 각 의과대학별 원서료는 대략 300달러가 넘기도 한다. 


대치동 초등학생은 지금 수학을 잘해서, 부모가 시켜서, 아니면 '슬기로운 의사생활'과 '닥터 김사부' 그리고 '닥터 차정숙'같은 메디칼 드라마를 보고 '의대 광풍'에 뛰어들었는지 모르겠다. 초등학생이 의학이라는 학문과 어떤 공부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얼마나 알 것인가? 다양한 경험으로 자신의 재능과 진로를 찾아야 하는데 너무 맹목적인 돌진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댁 자녀의 '화학'은 안녕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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