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침대에서 죽고 싶다
늙고 병들어 더 이상 내 손으로 밥을 해 먹을 수 없고, 걸을 수 없고, 샤워나 화장실을 해결할 수 없을 때 마지막 종착지로 양로원이 있다. 미국에서 양로원은 너싱홈 (Nursing Home)이라고 한다.
미국 의료제도가 그러하듯 양로원비용 역시 살인적이다. 그래서 양로원에 들어가려면 어떤 보험을 가지고 있느냐가 모든 걸 결정한다.
미국에서 65세 이상이 갖고 있는 보험은 두 가지가 있는데, 이 중 한 가지 또는 두 가지를 다 갖고 있는 사람도 있다.
첫 번째는 충분한 세금을 납부한 65세 이상에게 국가가 지원하는 '메디케어'이다. 이 보험도 사설운영으로 수천 개의 보험회사 중 본인이 매년 선택해야 한다. 아침에 뭘 먹었는지 가물가물한 노인이 그 많은 보험플랜을 비교분석해서 결정하라는 거다. 그래서 모든 노인들은 정부로부터 커미션을 받으며 일하는 보험에이젼트에게 맡겨버린다, 자기가 가입한 보험규정을 모른 체...
'메디케어'는 본인이 병원비의 20%를 부담하고 양로원비용은 커버되지 않는다. 본인부담이 20%라도 미친 의료비 때문에 큰 병에 걸리면 수십만 불은 무조건 각오해야 한다. 치료비는 고사하고 입원비만 봐도 이렇다. 캘리포니아의 경우, 그저 그런 병원의 하루 평균 입원비는 일반병실 $2,700 (360만 원), 중환자실 $6,700 (900만 원) 그리고 호흡기를 착용할 경우 $11,000 (1,500만 원)이 넘는다.
두 번째는 '메디케이드 (캘리포니아는 '메디칼'이라고 함)'로 최하위 극빈자에게 제공되는 보험이며, 65세 이전에도 극빈자임을 증명하면 가입할 수 있다. 이 보험은 국가가 의료비와 양로원비용을 전액 부담하는 그야말로 프리패스다. 그래서 미리미리 전재산을 자식 앞으로 돌려놓거나 기타 방법으로 스스로를 빈털터리로 만들어 이 보험에 가입하는 '전락적인' 허위가입자도 많다.
그런데 캘리포니아는 저소득 불법체류자에게도 이 '메디케이드' 보험을 제공한다. 수입의 30%를 세금으로 내는 월급쟁이가 그들의 병원비를 내주는 셈이다. 그리고 보험료를 많이 내지만 본인부담금이 높아서 (매년 첫 $5,000 즉 700만 원까지의 병원비는 본인이 부담해야 하는 보험도 많다) 병원에 못 가는 사람은 속 터지는 일이다.
그럼 미국 양로원 비용은 얼마일까?
주. 동네마다 비용이 다른데 한인 인구가 가장 많은 캘리포니아, 뉴욕의 좋은 동네 기준은 이렇다.
1인실 기준, 캘리포니아는 한 달 기본비용이 $15,000 (현재환율로 2,025만 원)이고, 뉴욕은 $17,000 (현재환율로 2천3백만 원)이다. 기본검진, 상담, 마사지, 다채널 TV제공, 식사메뉴 추가, 와인/맥주제공, 전화/인터넷사용, 신문구독 등의 추가서비스 비용은 별도로 청구된다.
최근에 혼자 사는 70 중반의 친언니가 월 2만 불 (현재환율로 2천7백만 원)한다는 양로원 투어를 다녀왔다. 양로원의 실태를 조금 아는 내가 "실내가 밝고 쾌적하며, 찌린내 안 나고, 병실이 깨끗하고, 음식이 먹을만하고, 일하는 사람들이 무섭지 않아서 마지막을 지낼만하더냐?"라고 물었다. 미국에서 간호사로 일했던 언니의 답변은 "절대 아니다"였다.
미국 양로원비용의 팩트는 극빈자보험 '메디케이드'가 없으면 이 살인적이고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비용을 내 돈으로 내야 한다는 것이다. 슈퍼리치가 아니면 그냥 집에서 죽어가는게 답이고, 이래서 나는 존엄사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1인이다.
내게는 미국 양로원에 대한 아픈 추억이 있다.
친정엄마는 교통사고로 인한 무릎관절로 오랫동안 고생하셨고, 늙어서는 결국 거동이 불편해졌다. 그런 엄마를 언니가 오랫동안 돌봐드렸고, 오빠집에도 잠시 계셨지만 미국생활이 그렇듯 모두는 정신없이 바뼜다. 그래서 엄마는 거동이 불편한 몸으로 온종일 혼자 빈집에서 지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선포를 하셨다. "나는 이제 양로원으로 간다"라고... 지금은 한인이 운영하는 양로원이 많아서 적어도 언어문제나 음식이 해결되지만 그 시절엔 없었다. 그렇게 엄마는 허름한 미국 양로원으로 들어가셨다.
영어를 못하는, 그러나 맑은 정신과 깐깐한 성격의 늙고 병든 엄마는 그 양로원에서 얼마나 힘들고, 두렵고 외로웠을까...
엄마가 계시던 양로원은 어두웠고, 오래된 건물에서 나는 쾌쾌한 냄새, 찌린내 그리고 독한 소독약냄새가 뒤섞여있었다. 일하는 사람들의 무표정한 얼굴, 거친 몸짓, 영혼 없는 말투도 나를 슬프게 했다. 식판은 적잖은 깡통음식으로 채워져 있었다. 결국 양로원 근처에서 일하던 남편이 점심마다 집도시락을 갖다 드렸다. 그리고 "서랍에 넣어둔 현금이 없어진다."라고 종종 말하셨다.... 얼마 후 엄마는 돌아가셨다.
나는 양로원에 대해서 까맣게 잊고 살았다. 그런데 이제 내 삶의 마지막 페이지를 걱정하는 나이가 됐다. 여기저기 아프고, 이번 감기는 끊질기게 나를 괴롭히고 있다. 호전됐나 싶으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고약한 놈이다.
온종일 밖에 널어놓아 바람과 햇살냄새 가득한 내 이불을 덮고 나는 밤마다 생각한다, 아니 간절히 바란다. 제발 내 침대에서 죽고 싶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