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를 사랑하는 일
사랑은 끝이 났고, 나는 책을 읽는다. (글을 쓴 시점과 지금의 상관관계는 없다. 싱어송라이터들이 옛사랑을 떠올리며 작사작곡을 하듯이...) 내 마음을 표현해 줄 어떤 한 문장을 찾아서 끊임없이 읽어댄다. 다이어트를 포기하고 폭식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포기할 때 무언가를 채워넣어야 한다. 안그러면 무기력함과 허기짐과 외로움의 고통을 나같이 허약한 존재가 감내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20년이 된 친구는 이런 나에게 책을 선물했다. 알랭 드 보통의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The Course of Love>
눈에 잘 들어오는지 아닌지도 모르게 허겁지겁 읽어낸다. 정신없이 음식을 채워넣는 것처럼.
“우리는 사랑이 어떻게 시작하는지에 대해서는 과하게 많이 알고, 사랑이 어떻게 계속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무모하리만치 아는 게 없는 듯하다.”
비수에 꽂히는 저 문장 외에 주인공 커스틴과 라비가 주고받는 대화와 일상은 그리 와닿지는 않는다. 왜 이렇게 집중이 안 되는 건지... 내 지난 연애가 오버랩되면서 좀처럼 감정이입할 수가 없다.
나는 아직도 그를 떠올린다. 잘 지내는지,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 하는 일은 잘 되고 있는지, 부모님과 친구들과는 별 탈 없이 지내는지, 나와 있었던 시간들 중에 말 못할 그 무엇은 어떤 것이었는지. 나를 그리워하고 있지는 않는지...
그리곤 반성한다. 연애 기간 중에 내가 그의 자존심을 건드린 건 아닌지. 그에게 충분한 기회를 주지 않은 건지. 혹은 대화할 분위기를 만들어주진 않은 건지.
일 중독인 나는 가끔 연애를 일에 빗대곤 한다.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은 서로를 이해할려고 시간을 주고, 추측을 하고, 배려를 하고, 고민을 하고… 수많은 생각이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치사하고 아니꼽고 더럽더라도 대화를 하고, 무엇이 문제였는지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하고, 개선의 방향을 같이 고민하고… 해결할 방향을 같이 모색하는 게, 결국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나는 한 때 말했다. 어느 책에서 발견했는지는 모르지만, 사진으로 찍어두었다. 감동적이기 때문이다.
한 남자를 사랑하는 일은
그의 육체와 정신, 영혼뿐 아니라
장점과 강점, 눈부심이나 의협심뿐 아니라
비겁함과 비루함
어두운 미래와 헝클어진 과거,
때와 땀과 똥을
똑같이 !
사랑하는 일이란다.
바다가 뒤척이는 것은 바다가 덜 무겁기 때문
사랑이 뒤척이는 것은 사랑이 덜 무겁기 때문
이런 노래를 지어 속으로 흥얼거려보며, 손톱 걸음을 걷는 날. 아무래도 한 남자를 생각하는 일은 그냥 그대로 충분히 좋은 일.
나는 자주 그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나는 이 글귀를 공감한다. 사랑하는 이를 생각할 때는 도저히 이해 안되는 부분들도 이해하고 싶고 노력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러나 상대방이 일말의 반응을 보이지 않을 때, 대화의 끈을 이어가지 않을 때는 나도 놓고싶고 포기하고 싶다. 내가 어떤 잘못을 하고 있는지 사실 나도 모른다. 이야기를 해주면 좋겠다. 개선의 방향을 찾거나, 포기하게 설득하거나 다양한 해결책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라 생각하는데... 오랜 사랑을 이어가는 것은 개인의 너그러움과 성격 탓인 것일까, 아니면 정말 운명처럼 인연이라서 이어지는 것일까. 나는 아직도 궁금하다.
전세계의 부러움을 사는 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도 갈라섰다. 그뿐이겠는가. 우리가 주목하지 않았지만 너무도 아름다운 사랑은 모래성처럼 쉽게 부서진다. 부서지는 듯 보인다. 그 와중에 견고히 지켜가는 것은 사랑이 단단하기 때문일까, 서로에 대한 배려가 많은 것 때문일까.
'많은 부분을 포기한다'
사랑의 비결을 묻자 친구가 말했다. '포기'는 '기대'를 충족시키지 않더라도 넘어간다는 의미로 들린다.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 사랑일까, 적게 하는 것이 배려있는 사랑인 걸까.
새로운 사랑을 찾을 시점이다.
그의 사랑에서 벗어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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