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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tie Bomi Son 손보미 Mar 09. 2020

뚱뚱한 예술 작품 뒤에 숨겨진 'Fun' 이상의 의미

전 세계 위기 상황 속에서 배부른 소리일지도 모르겠지만...

재미있다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 그런 것일까? 코미디언이 일부러 만들어낸 바보 같은 넘어짐이나 천역덕스럽게 지능이 모자라 보이는 행동들도 재미있긴 하지만, 때론 기대하지 않았던 상황을 만났을 때, 사회의 편견에 해학적으로 반항할 때, 반전의 매력이 느껴질 때 ‘재미있다’ 단어를 절로 떠오르게 된다.



예술은 아름답고, 예술 속 주인공들은 더욱 아름답게 그려져야 한다고 당연히 생각하는 우리에게 반전의 매력을 선사하는 한 조각 작품. 나도 모르게 ‘크큭’하고 웃음 짓게 만드는 작품 앞에서 한동안 한참을 서성거렸다.


그 작품을 만난 곳은 콜럼버스 서클(광장 Columbus Circle). 뉴욕 맨해튼 어퍼 웨스트사이드(Upper West)의 시작을 알리는 기점이자 센트럴파크의 남서쪽과 교차하는 원형광장에 위치한 타임 워너센터 (Timewarner center) 1층 로비.


1492년 미국 신대륙을 발견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동상이 광장 중앙에 높다랗게 서있고 그 아래에는 콜럼버스가 이끌던 니나호, 핀타호, 산타마리아호의 뱃머리가 조각되어 있다. 많은 뉴요커들과 관광객들의 약속 장소로도 유명한 이곳. 건물 3개 층이 연결된 투명 유리창으로 햇살을 듬뿍 머금은 타임워너 빌딩 로비의 양쪽 엘리베이터 앞에 나를 웃음 짓게 하는 한 쌍의 커플. 그 커플은 페르난도 보테로(Fernando Botero, 1932~)의 <아담과 이브>라는 대형 청동 조각 작품이다.


© thevantagepoint718, 출처 Unsplash


작품 제목만 보면 멋진 훈남의 아담과 바비인형같이 예쁜 이브의 조각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이곳에 울퉁불퉁 터질듯한 뚱뚱한 아담과 이브가 나체로 조각되어 있었다. 뚱뚱한 것이 아름답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미의 기준과 확연히 반대되는 느낌의 몸매를 자랑하는 조각을 보자니 헛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가만, 어쩐지 보면 볼수록 귀엽고 ‘재미있다’는 느낌이 들어 조각상 앞에서 빙그르르 계속 돌게 된다. 여기저기 신체의 은밀한 구석까지 익살스럽게 표현한 것까지 훑어보면서.



보테로는 라틴아메리카 콜롬비아의 화가이자 조각가이다. 보테로의 작품을 보면 금방이라도 터질듯한 형태의 풍만함과 볼륨감을 느끼게 된다. 햇살이 열정적으로 내리쬐는 라틴아메리카의 대중문화에서 착안한 아이디어로  뚱뚱한 관능미과 함께 삶의 여유로 인한 늘어짐의 미학을 표현하고자 주로 부풀려진 소재를 이용하여 작품을 만든다고 한다.


위트가 넘치고 미소가 떠오르는 즐거운 작품을 선사하며, 작가 특유의 유머감각으로 남미의 정서를 작품으로 표현하지만, 유명한 옛 거장들의 작품을 이용한 독특한 패러디 작품들과 정치적 권위주의와 현대 사회상을 풍자한 작품들로도 유명하다. 또, 콜롬비아 식민 시대의 전형적인 건축 양식인  바로크 양식의 성당과 우스꽝스러운 모습의 성직자들, 응접실, 창녀촌 등을 표현하기도 했다.



© brnkd, 출처 Unsplash

또 재미있는 사실은 보테로 작품 속 인물은 항상 무표정과 부동자세로 인체만 뚱뚱한 것이 아니라 인물의 느낌도 항상 뚱한 느낌이라는 것. 작가는 일부러 인물의 개성을 거의 생략하여 뚱뚱한 덩어리로 표현하여 독자에게 ‘양감’을 느끼게 한편, 작품 속 인물의 옷이나 주변 도구로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는 재미도 선사한다. 일반적인 통념과는 달리 인체의 비례나 사물의 비례를 사실과는 다르게 터무니없이 확대시키거나 축소시켜 표현한다.


인물이 처한 상황도 재미있다. 때로는 성직자나 군인이나 정치인처럼 한 나라의 권위와 권력을 잔뜩 가진 듯한 세력가들이 근심에 쌓인 것처럼 보이고, <아담과 이브>에서처럼 당연히 아름다울 것이라는 인물을 뚱뚱한 미로 표현을 하는데 그 둘은 서로 정면을 쳐다보고 있어 사랑하는 사이인지 상상이 되지 않을 정도이다. 그의 이러한 사회비판적이면서도 위트 있는 작품으로 콜롬비아 작가로는 거의 전례가 없을 정도로 미술사적으로나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어, 미국 비평가들의 혹평에도 불구하고《타임》지를 장식 등 전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세계적으로 위대한 화가 반열에 오른 보테로도 사실 처음부터 대가가 된 것이 아니라 ‘꿈’을 위해 어려운 시절을 극복해낸 인물이었다. 정식으로 미술 교육을 받지 못했으나 미술관에서 독학으로 배웠고, 가난한 시절에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보며 고국 콜롬비아의 오랜 식민 역사의 잔혹함, 마약으로 망가져가는 일상을 안타까워하며 이를 작품에 담게 되었다. 평화로운 시골 모습과 상반된 자살 장면이나 좁은 골목 속에 긴장감을 감돌게 하는 그림들. 과장된 인체 비례를 통해 제도화된 규범을 조롱하는 한편, 때로는 침울한 작품에 묘사된 뚱뚱한 인물들을 통해 위트가 넘치고 미소가 떠오르는 즐거운 작품을 선사하고자 했다.




“나는 내 그림들이 뿌리를 갖기를 원한다. 왜냐하면 바로 이 뿌리가 작품에 어떠한 의미와 진실함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항상 내가 손을 댄 모든 것이 라틴아메리카의 영혼으로부터 침투된 것이기를 바란다.”



보테로는 콜롬비아 국민들이 겪었던 전쟁의 고통과 마약으로 망가져가는 고국의 일상 및 폐쇄적인 문화와 사회적 불평등을 작품의 주제로 삼아 묘사하며, 예술가로서 불평등과 탄압을 고발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는 작가로 팔십이 훌쩍 넘은 지금도 전 세계 곳곳에 있는 작업실에서 작업에 몰입하고 있다고 한다.  



‘재미있는’ 삶이 단순한 유희로 가득 찬 것이 아니라 무언가 의미가 있고 세상을 위한 사명감으로 살아갈 때라고 한다면 예술도 ‘삶’과 같은 맥락은 아닐까. 한 갓 ‘미적 관조의 대상’이 예술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나 의미가 발생하는 것’이 예술이라는 생각으로 작품을 보니 재미있고, 감사하다는 각이 들었다.



내 삶은 재미있는 걸까? 오늘 하루쯤 내 삶이 ‘재미있는’ 이유를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싶다.




+ 전 세계 위기 상황 속에서 배부른 소리일지도 모르겠다.


전 세계 코로나 19 공포, 유럽 중동 코로나 급증, 뉴욕 비상사태 선언, 원유 -20% 역대급 폭락, 삼성전자 공장 화재, 북한 미사일 발사, 한일 비자 발급 중단, 중국 비자 사실상 발급 중단 등


그러나  위기는 반복적으로 세계를 덮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삶을 영양가 있게 살아가야 하니까...


책 <뉴욕 아티스트> 중에서 (손보미 / 북노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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