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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tie Bomi Son 손보미 Mar 11. 2020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목표를 대하는 우리의 현명한 자세

내게 주어진 작은 언덕, 작은 목표를 가벼운 마음으로 실천하다 보면 몸이 부딪치며 배운 감각은 어느덧 자신의 발길을 정상에 유려히 도달하게 만들어 줄지도 모른다



오랜만에 은사님을 찾아뵙겠다고 했더니, 대뜸 등산을 가자고 하셨다. 당황했지만 유쾌한 경험이 될 것 같아 흔쾌히 수락하곤, 함성을 지르듯 뜨거워운 햇살이 화려함을 뽐낼 때 관악산을 오르게 되었다. 서울에 살면서 평생 꽤 많이 찾아 익숙한 산이라 생각했는데, 은사님은 내가 처음 보는 듯한 등산로로 나를 이끌고 가셨다.


'저 언덕만 넘으면 되겠지, 저 고비만 넘으면 되겠지…'

"선생님, 조금 쉬었다 가요. 설마 저 위까지 올라가시려는 것은 아니시죠?"


 

© toomastartes, 출처 Unsplash


이제 어엿한 직장인을 넘어 사업을 한다는 제자는 몇 년 만에 찾아뵌 선생님 앞에 또 어린아이가 되어 어리광과 투정을 부렸지만, 마음을 비우고 무던히 등산길에 올랐다.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선생님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그렇게 걷다 보니, 풀 향기, 산 내음, 맑은 하늘 아래 두둥실 예쁘게 떠다니는 구름, 한 번도 본 적 없는 것 같은 아름다운 정자와 그 옆에 담대하게 팔랑이는 태극기, 여의도까지 시원하게 한눈에 펼쳐지는 서울의 경치를 눈으로 가득 담았고, 담소와 다과를 즐기시는 등산객 어르신들의 웃음소리와 맑은 바람 소리가 귀를 가득 채웠다.

지극히 클리세같은 문장들이 온 감각으로 이해되고 흡수되는 기분이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한 걸음 두 걸 음 걸으며 선생님과 수다도 떨고, 길을 모를 때는 물도 꼴깍꼴깍 나눠 마셔 가며 선생님께 묻기도 하고, 숨을 헐떡거리기도 하다 보니 어느새 정상에 도달했다.


예전에 한 여인이 숲을 다녀온 사람에게 당신은 뭘 봤느냐고 물었더니,


그가 답하길 '별것 없었어요. Nothing Special' 라고 했다고 한다.


그 여인은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이해를 못 했다고 한다. 자기가 숲에서 느낀 바람과, 나뭇잎과 자작나무와 떡갈나무 몸통을 만질 때의 전혀 다른 느낌과, 졸졸졸 지나가는 물소리를 왜 못 보고 못 들었느냐며. 그 여인은 바로 헬런 켈러였는데, 그녀는 보지 못하는 자신보다   있는 우리들이   보는 것이 아니냐며 놀랐다고 한다. 그녀의 에세이, '삼일만 볼 수 있다면'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가 대학교 총장이라면 '눈 사용법 How to use your eyes'라는 필수과목을 만들겠다"



목표를 대하는 우리의 모습이 이와 비슷하지 않은가.


처음부터 나와 너무 먼 목표를 세우면 현실적이지 않아 쉽게 의욕을 상실한다. 또, 과도한 의욕으로 무리한 목표를 향해 달려가다 보면 과정을 통해 배워야 할 주변의 아름다움을 놓칠 수 있다. 인생의 눈 사용법을 모른 채 흘러가는 대로 목표에 끌려다니게 되는 것은 아닐까.


등산을 할 때 누구도 달리기처럼 경쟁을 하지 않는다.


혹자는 더 높은 산에, 남들보다 더 빨리 오르겠다고 목표를 세울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휴식과 주변의 아름다움은 그대로 놓친 채 훈련된 트레이닝을 받아 기계적으로 나아가는 길뿐이다.


다른 이와 경쟁하거나 과도한 목표 때문에 내가 원하는 것을 놓지는 일이 없기를, 산을 올라가 본 인생의 선생님들에게 조언을 구해 올바른 길로 찾아가기를. 가끔은 정상이 얼마나 높은지 모르는 상태일지라도 한 발짝, 언덕 하나 넘어보는 시도 자체가 더 의미 있음을 알기를.


지나친 경쟁과 과도한 목표보다는 내게 주어진 작은 언덕, 작은 목표를 가벼운 마음으로 실천하다 보면 몸이 부딪치며 배운 감각은 어느덧 자신의 발길을 정상에 유려히 도달하게 만들어 줄지도 모른다.


이렇게 인생을 대하는 자세가 어느새 나를 정상으로 혹은 내가 상상하지 못한  이상의 목표를 달성하도록 이끌어주는 것은 아닐지.

< 2013년 9월. MODU magazine 추천으로 쓰게 된 고등학생을 위한 칼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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