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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tie Bomi Son 손보미 Mar 13. 2020

솔직함의 사회적 거리두기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어떤 솔직함은 못됐다는 거 언니도 아시죠? 타인이 민망을 당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타인이 상처를 받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누군가는 솔직이라는 무기를 이용해요. 반면 누군가는 반대로 타인의 상처를 희석시켜주려고 아무도 묻지 않은 자신의 실패를 일부러 드러내면서 솔직을 사용하죠. 



요조와 임경선 작가의 교환일기의 시작은 '솔직함'에 대한 이야기이다. 


교환일기의 컨셉인 만큼, '일기' 그리고 어릴 때 추억처럼 '둘만이 교환하는 비밀' 같은 것이 포함되어 있으니 '솔직과 가식'이라는 시작은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선한 시작과 함께 멋지고 당당한 전략적 생각을 가진 '임경선 작가'의 솔직에 대한 거침없는 의견. 



© jontyson, 출처 Unsplash


경선: 


"10대나 20대 초중반까지는, 자신이 처한 유리한 환경이 도와준다면 계속 솔직하게 살 수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 시기를 지나면, 단순히 행운만으로는 유지가 될 수 없어. 저마다 겪는 경험의 차이가 확연히 생기다 보니 나의 솔직함이 상대에게 이질감이나 부담, 상처를 주기도 하고, 나의 솔직함이 돌고 돌아 나를 공격하는 화살로 쓰이기도 해서 내가 고통받기도 해.


좋게 표현하면 '사회화'가 되어가는 과정일 거야.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기보다 꾹 참거나 에둘러 말하고, 적당한 가식을 체득해 다른 사람들과 조율하고 타협하고, 그렇게 우리는 모나지 않은 어른이 되어가는 법을 배워가. 인간관계의 갈등이나 마음고생이 버겁고, 누군가를 실망시키는 것도 두렵고... 모두가 다 스스로를 보호하고자 솔직함은 우선순위의 뒤쪽으로 미루는 거지. 


하지만 습관적으로 그렇게 오랜 시간을 보내다 보면 점점 '내 마음의 소리를 듣는 능력'을 잃어가는 것 같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결론은 '솔직'이 장기적으로 '옳은 방법'이라고 말한다. 


감당해야 할 그 모든 짐을 다 감수하고서도 아무리 생각해봐도 '솔직함'은 살아가는 데 장기적으로 '옳은 방법'인 것 같아. 솔직함을 포기하면 당장의 불편함이나 위기는 모면해도, 가면 갈수록 근본적인 만족을 못 느끼고 '얕은 위안'으로 '겨우 연명'하거든. 



요조: 


반면 요조의 그다음 글은 신선한 시각과 사이다 같은 발언들이 낭만적으로 들리기까지 했다. 


그녀는 얼마 전에 읽은 책을 인용했다. 디아 작가님의 '사과를 먹을 땐 사과를 먹어요'라는 책인데, 그 안에 현대인의 '리-액션'에 대한 글이 있다고. 그래서 저자는 리액션 하지 않는 시간을 꼭 확보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리액션하지 않는 시간, 타인의 욕망에 응하지 않는 시간. 


요약하자면, '현대인은 하루 종일 '리액션'이라는 것을 하면서 산다. 리액션은 타인의 욕망에 응하는 행위이다. 따라서 이 행위에 몰두하면 할수록 나 자신의 욕망은 점점 거부되고 잊힐지도 모른다.' 


임경선 작가가 말하는 '내 마음의 소리를 듣는 능력' '스스로에게 솔직해지기 위한 태도' 와 같은 맥락이리라. 


요조는 누군가의 솔직한 모습을 볼 때 늘 그 솔직함의 기저를 더 눈여겨본다고 한다. 


무슨 마음을 먹고 저렇게 솔직하게 구는 것일까. 어떤 솔직함은 못됐다는 거.


타인이 민망을 당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타인이 상처를 받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누군가는 솔직이라는 무기를 이용해요. 반면 누군가는 반대로 타인의 상처를 희석시켜주려고 아무도 묻지 않은 자신의 실패를 일부러 드러내면서 솔직을 사용하죠. 그런가 하면 누군가는 타인을 지키기 위해서, 타인이 상처를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끝끝내 솔직하지 못한 태도를 취하기도 하고요. 




보미: 


솔직함은 좋은 것, 옳은 것이라고 교육받고 살아왔다. 그런데 솔직했더니 오히려 상처받는 일들이 누적적으로 많아진 경험을 겪게 되면 어떤 때는 방어적으로 적당히 솔직해지는 '솔직함의 사회적 거리'를 두게 되는 경우도 생긴다. 


미국의 문화인류학자인 에드워드 홀은 저서 '숨겨진 차원' 에서 사람의 공간은 인간관계에 따라 4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고 했다. 


1) ‘친밀한 거리’(0~46㎝)는 가족이나 연인 사이의 거리다. ‘숨결이 닿는 거리 46㎝’라는 카피를 앞세워 시판 중인 한 치약 제품이 이 개념을 차용했다. 


2) ‘개인적 거리’(46~120㎝)는 친구와 가까운 사람 사이에 격식과 비격식을 넘나드는 거리다. 타인에게서 침범받고 싶지 않은 물리적 공간을 의미한다.


3) ‘사회적 거리(120~360㎝)’는 사회생활을 할 때 유지하는 거리다. 업무상 만나게 되는 사람들과 지키는 거리다. 제3자가 끼어들어도 부담스럽지 않은 공간이다. 호텔 로비 커피숍의 좌석은 통상 이 정도의 거리를 유지한다. 


4) ‘공적인 거리’(360㎝ 이상)는 무대 공연이나 연설 등에서 관객과 떨어져 있는 거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밀폐된 실내의 밀접 접촉으로 감염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사회적 거리에 대한 캠페인이 한창이다. 중앙방역대책본부의 최근 브리핑에 따르면, 코로나바이러스의 경우 비말(飛沫)이 튀는 거리가 2m 정도이며, 코로나19의 피해와 유행을 최소화하기 위해 개인위생이 중요하고, 이를 위해 가장 효과적인 것은 사회적 거리 두기라고 말한바 있다.  



솔직함을 바이러스 개념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지만, 

솔직함에도 적당한 사회적 거리가 있다면?

 


어릴 적 나는 더 솔직했는데... 지금의 나는 사회생활 경험으로 일정한 부분 솔직함의 사회적 거리를 둘 때가 있다. 이는 나를 보호하는 것도 있지만, 어떤 면은 상대방에게 내 솔직함이 무기가 되거나 상처가 되기를 원치 않기 때문이다. 또, 나에게 너무 솔직한 사람들의 의도가 뭔지, 요조처럼 그 기저가 뭔지, 정말 순수한 의도인지 한 번 더 생각하는 습관이 생기다 보니, 가끔은 나에게 적당한 거리를 두는 사람이 편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서로서로 생채기 낼 일이 없다는 안전감이 생기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궁극에는 나도 솔직함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솔직함을 세련되게 표현할 수 있는,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솔직함을 이야기 할 수 있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따뜻한 솔직함을 가질 수 있기를. 



나는 아직도 멀었다. 하지만 아직도 살아갈 날들이 많다. 솔직하지만 따뜻한 어른이 되자. 



© philinit,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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