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atie Bomi Son 손보미 Mar 25. 2020

어쩌면 우리 인생의 내비게이션은 한 사람의 등짝인지도

이병률 여행산문집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 mischievous_penguins, 출처 Unsplash


등대


어쩌면 우리 인생의 내비게이션은 한 사람의 등짝인지도 모릅니다.


좋은 친구, 아름다운 사람, 닮고 싶은 어떤 사람.


그리고 사랑하는 누군가의


등.


그걸 바라보고 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방향입니다. 



© andriklangfield, 출처 Unsplash

시간을 럭셔리하게 쓰는 자, 그런 사람이어야 한다. 


나에게도 여행은 시간을 버리거나 투자하는 개념이 아니었다. 여행은 시간을 들이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내게 있어 여행은 시간을 벌어오는 일이었다. 낯선 곳으로의 도착은 우리를 100년 전으로, 100년 후로 안내한다. 그러니까 나의 사치는 어렵사리 모은 돈으로 감히 시간을 사겠다는 모험인 것이다.


일상에서는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는 게 시간이지만 여행을 떠나서의 시간은 순순히 내 말을 따라준다. 사실 여행을 떠나 있을 때 우리가 더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은 돈이 아니라 시간 쪽이질 않은가. 



사진출처: http://blog.naver.com/yeseon1986/220860840394



언젠가 처음에 


천체망원경을 갖고 싶었다. 밤하늘의 무늬를 즐긴다는 것은 얼마나 비밀스러운 일이며 할 수 있는 일 가운데 얼마나 이쁘고도 큰 사치인가. 그렇게나마 먼 우주에 한발이라도 들여놓고 싶은 충동은 또 얼마나 갸륵한 일인가. 뭔가를 보고 싶어서라기보다는 그저 하염없는 아름다움 속으로 빠져들고 싶었다. 중학 시절 별 관측 동아리에 몸을 담은 적이 있었는데 나중 생각해보면 그때 거기서 만난 별들을 통해 더 가까이, 좀 더 가까이 보지 안흥면 아무것도 보지 않는 것과 같다는 진리를 어렴풋이 배우게 된 것 같다. 그러나 밤을 지새우는 일은 나하고는 맞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사람 마음을 훔쳐보는 재주'를 갖고 싶었다. 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으면 더군다나 나와 관련된 그 무엇에 대해서, 그의 속마음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는 초능력을 갖고 싶었다. 초능력이 아니더라도 기계 하나쯤을 발명해 누군가의 신체에다 플러그 같은 걸 꽂고는 책장처럼 넘기면서 그의 마음을 훤히 읽을 수 있었으면 했다. 아마도 사람을 좋아해서였으리라. 사람에 관해서가 아니라면 왠지 아무 일도 일어날 것 같지 않았던 열여덟 살의 막막함 때문이기도 했으리라. 




허기를 달래기엔 편의점이 좋다.


시간이 주는, 묘한 느낌을 알기엔 쉬는 날이 좋다.


몰래, 사람들 사는 향내를 맡고 싶으면 시장이 좋다.


사랑하는 사람의 옆모습을 보기엔 극장이 좋다.


몇 발자국 뒤로 물러서기에는 파도가 좋다.


가장 살기 좋은 곳은 생각할 필요 없이 내가 태어난 곳이 좋다.


조금이라도 마음을 위로받기엔 바람 부는 날이 좋다.


여행의 폭을 위해서라면 


한 장보다는 각각 다르게 그려진 두 장의 지도를 갖는 게 좋다.


세상이 아름답다는 걸 알기 위해선, 높은 곳일수록 좋다.


세상 그 어떤 시간보다도, 지금 우리 앞에 있는 시간이 좋다.


희망이라는 요리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두근거릴수록 좋다.


고꾸라지는 기분을 이기고 싶을 때는 폭죽이 좋다.


사랑하기에는 조금 가난한 것이 낫고


사랑하기에는 오늘이 다 가기 전이 좋다. 




매거진의 이전글 살아가는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