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도, 여기도 아니라고 생각하지 말고 둘다 즐긴다고 생각하기
기상: 6시
착석: 6시 30분
어제 취침시간이 늦었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일어나서 새벽기상 루틴을 수행했다.
세수, 양치 - 물 끓이면서 스트레칭 - 독서 - 영어공부. 그리고 지금 기록 루틴으로 마무리하려 한다.
새벽 독서는 주로 자기 계발서를 읽지만, 오늘은 박완서님의 에세이집으로 시작했다. <사랑을 무게로 안느끼게> 라는 에세이집으로 작가의 70년대, 80년대, 90년대 산문과 궤적이 실린 책이다.
1970년대에 쓰여진 산문들을 읽노라면, 내가 살아보지 못한 그 시대의 사건들과 감성을 간접 체험할 수 있어 흥미롭기 그지 없다. 산문에 등장하는 인물, 사건, 풍조 등을 검색하며 내가 사랑보지 못한 그 시대의 고국에 대해 배운다. 그러면서 내가 살아갔던 1980년대에 대해 떠올리기도 한다. 바나나 라는 것을 처음먹어봤을때의 충격, 처음 봤던 '비데'에 대한 신기함, 내가 어렸을때 살았던 지방 소도시를 덥쳤던 홍수와 잠시 수해피해 이주민이 되었던 기억, 어렸을때 거쳐갔던 단독주택들. 기억과 동시에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많은 것들에 대해 아쉬움이 있다. 다른 사람들은 어렸을때의 기억을 얼마나 가져가는지 궁금하다. 박완서님의 산문을 읽노라면, 전쟁을 거쳐갔던 기억과 그로 인한 가족의 상실. 반면에 시골에서 자란 어린시절 느꼈던 자연의 풍요로움과 따뜻한 감성- 이 모든 것들이 단단하게 느껴진다. 이 감성들이 쌓이고 쌓여 하나하나 주옥같은 글들을 쓰실수 있었겠지.
대 작가가 유년시절을 기억하는 모습에 내가 기억하는 모습을 비교하는 것은 가당차지만, 어쨌든 아쉽게도 나는 그닥 단단한 기억이 없는것 같다. 강력한 사건이 없어서인지, 혼자서 보냈던 시간이 많아서 였는지, 아니면 기억하고자 하는 노력을 무의식중에 하지 않아서 그런 것인지.. 그럼에도, 그때의 기억들과 경험이 나라는 인간을 부지불식간에 형성하고 있음은 분명하기에 지금의 나 자신에 대입해여 과거의 흔적과 영향력을 가끔 가늠해 보고는 한다. 나는 나와 관계맺기에 이나이 먹도록 아직 미숙하기에 과거의 영향력을 대입해 볼때마다 그닥 유쾌하지 않은 나 자신의 한 부분으로 연결되긴 하지만.
1975년에 쓰여진 <시골뜨기, 서울뜨기>라는 산문의 마지막 부분이 오늘 나의 맘에 걸렸다. 와 닿았다 라기 보다는 나에게 생각할 거리를 줬기 때문에 걸렸다는 표현을 써본다.
나는 나를 시골뜨기라고 생각하기를 좋아한다. 특히 세련되고 교양있는 사람 앞에서 느끼는 소원감, 화려한 장소나 사교적인 모임에서 남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촌닭같이 빙충맞게 구는 것 등이 다 내 뿌리 깊은 시골뜨기 성(性)때문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렇다고 그걸 부끄럽게 알고 지내 왔다기 보다는 오래 간직하고 싶은 소중한 걸로 알고 지내왔었다. 그런데 이번에 강화 나들이를 다녀오고 나서는 그런 내 시골뜨기성에 대한 자신마저 없어져 버렸다.
나는 제대로 된 시골뜨기도 못되고 딱 바라진 서울 뜨기도 못되고 얼치기쯤 되는가보다
이런 감정은 내 성인기의 한 모퉁이를 차지하는 감정이다.
지방 소도시에서 광역시로 이사하고 전학하며 느꼈던 생경함, 소도시의 단독주택에서 자란 어중간한 시골뜨기 (시골이지만 부모님의 일은 농사는 아니었기에 시골뜨기라고 하기도 애매하다). 초등학교 고학년때 광역시의 아파트 단지 한 가운데 초등학교로 전학가며 느꼈던 외로움. 광역시에서 서울의 대학교로 진학하며 느꼈던 부의 차이, 문화의 차이와 주변인의 느낌. 대학교 같은 전공 친구들이 주로 택하던 분야와는 다른 분야의 직업을 가지게 되며 느꼈던 외로움과 자기 방어 의식. 지금은 토종 한국인이지만 외국에 와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주변인으로서의 느낌. 지금의 느낌을 작가의 말을 훔쳐 써보자면 '나는 제대로 된 한국사람도 못되고 딱 바라진 캐나다 사람도 못되고, 그 중간도 아닌 얼치기쯤 되는가보다' 인것 같다.
한국이 그립지만, 약간 까마득하고 거기 가서 다시 일하게 될까, 생활하게 될까 라는 생각을 할때 노라면 거기서 태어나고 몇십년간 직장생활을 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두려운 감정이 앞서고 그렇다고 여기서 계속 살 생각을 하면 그것도 상상이 되지 않고.. 하하. 어찌 보면 진취성도 없고 한심하게 보일수도 있어서 하하 라는 자조섞인 웃음을 맘 속으로 내보내본다.
그래도, 이 애매한 중간자적 입장 또한 다르게 보면 혜택 받은 것이며, 예전부터 궁금해 왔던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애매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양측을 다 즐기며 살아간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다. 유유히 노저으면서 즐기는건 아니고 힘겹게 저으면서 어떻게든 나아가다가 잠시 숨 돌리면서 양쪽을 바라볼 때가 많지만 말이다.
월요일이다. 오늘도 바쁘게 노를 저어야 하지만, 그 속에서도 열심히 일하는 어깨를 주무르며 내 인생의 양쪽을 조금이나마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하루게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