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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병욱이 Apr 05. 2023

제주의 하루 일상

20. 04. 02 옳레 19코스 일상


바다가 살금살금 파도를 밀고왔다. 너무 조용해 지나가던 바람마저 그냥 스쳐지나 갔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파도는 하얀 거품을 문채 줄 지어 고운 모래밭을 향해 돌격해 왔고 파도 위 언덕위엔 노란 유채꽃 향기 그윽하게 퍼지며 빨리 오라오라며 손짓했다.


조천에서 시작하는 올레 19코스의 19.4km 중 6km 지점으로 너무 예뻐서 또, 또, 또 찾고 찾게 되는 함덕 해변에 닿았다. 고운 모래가 바람에 날려 눈을 뜰 수 없다. 누가 곱게 갈아 놓은 흑설탕을 가져가다가 쏟아 부은 것 같았다. 해변의 바람은 달콤 따끔했다. 물결은 에매랄드를 삼킨듯 영롱하게 빛났고 함덕 서우봉 언덕배기에는 노란 물결이 출렁출렁 꽃파도로 일렁였다. 그냥 지나친다면 너무 서운했을지도 모른다. 수수한 향기가 바람에 날려와 콧등을 쳤다. 꼬르륵~ 김밥 한 줄 먹은지 1시간도 지나지 않은 자시도 되지 안았는데 왜 이러는 걸까. 뱃속에 상거지라도 군림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콧바람 힘껏 빨아들였다. 달코름한 향기는 뱃속 가득찼고 꼬르륵~ 밥줘! 사나이의 힘찬 외침은 순식간에 잠들었다. 노란 유채꽃의 마법이었다. 


얼마동안 이곳에 머물렸던지 자시를 지나 축시를 내달렸다. 갈길은 구만리, 너무 느긋하게 딩가딩가 보낸 난 시간에 쫓겼다. 잠시 잊고 있던 배고픔이고 힘든 그 뭣도 없었다. 해발 113.3m 눈깜짝할 새 서우봉을 훌쩍 넘었다. 바다를 풍경삼아 밭이 바다 언덕을 가득 매운 파, 보리 해풍을 맞아 건강하게 자랐다. 금방이라도 입속으로 풍덩, 육해의 감칠맛이 혀를 살살 휘감았다. 솔 향기는 바다 바람을 타고 와 지쳐가는 몸동아리를 감씨주며 곧 다가올 아픔에 대해 살며시 귓속말을 전해왔다. 출발지점으로 항일운동이 일어난 조천만세동산과 같이 아픈 역사를 담고 있는 제주 근현대사를 알 수 있는 너븐숭이4.3기념관이 9km 지점에 놓여 있다. 말 할 수 없는 처참한 인생을 맞이한 제주의 삶, 잊혀서는 안 될 과거를 일깨웠다. 바다에서 마을, 마을의 포구를 지나 숲으로 향했다. 동복리 운동장이 가까웠다. 처음 걸었던 19코스의 아찔한 기억이 떠오른다. 조용한 주택가를 지나 교회가 보이고 이제 나무가 우거진 숲으로 들어가야 했다. 교회 앞까지 갔지만 쉬이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날의 악몽에 "갈까말까" 망설여지는, 멍하니 한참을 서서 내린 결론은 뒤돌아서는 것이다. 아쉬움을 가득 떨궈버리고 돌아가는 길. 수다를 떨며 스쳐지나가는 모녀를 스쳤다. 끝나버린 확답은 아직 결말의 종점을 이끈게 아니었다. 다시 한번 더 심심찮은 고민에 빠졌다. "갈까말까" 마음이 갈팡질팡 하는 찰나 어느새 사라진 모녀의 그림자, 올레 19코스의 끝을 보려면 지금 순간 밖에 없다. 혼자란 두려움을 의지하는 수 밖에 답이 보이지 않았다. 모녀의 온기를 찾듯 열심히 그들을 쫓았다. 100m의 거리를 둔채 주위를 둘러보며 혹시 어디선가 훅~ 튀어나올지 모를 낯선 동물에 대해 감각 찌릿찌릿 팔의 털을 곤두세웠다. 즐거움에 입가엔 흥얼거리는 리듬이 흐늘거렸다. 사정거리 내에 모녀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 걸었던 그때 그 장소 동복리 운동장에 도착했다. 마치 처음 온 것 마냥 생소하게 느껴졌다. 여기가 그곳인가? 정자와 간세가 없었더라면 머리속 기억이 떠오르지 않을 만큼 변해버린 환경에 의아스럽다. 


작년(2019년) 3월이였다. 그때는 처음이자 겁없는 무적의 사나이었다. 지금과 다르게 두려움이란 단어를 마음속에 키우지 않았다. 숲을 빠져 나올때가 해가 니엿니엿 저물어가는 저녁 5시쯤이다. 나무가 빼곡한 숲속은 그들의 그림자로 언제나 어둠이 빨리 찾아왔다. 서두르지 않으면 어둠에 먹혀 숲속을 헤매는 미아가 되는 상황이다. 국민학교(초등학교) 시절 그러니 1989년 전설의 고향에서 나오는 귀신이라도 만난 사람처럼 걸음은 빨라지고 심장은 미칠듯이 두근거렸다. 스스로 괜찮다고 외쳤지만 몸은 이미 반응했다. 울퉁불퉁한 돌길은 걷기에도 벅찼지만 뛰어야 숲속을 빠져나가 살 것 같았다. 작은 낙엽의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놀라 식은땀이 등줄기를 주르륵 타고 흘렀다. 한 편의 공포 영화를 혼자서 보는 느낌이다. 그렇게 30분을 헐레벌떡 뛰어 동복리 운동장에 도착하면 안심하고 마을이 있을 줄 알았다. 그건 큰 오판이자 착각이었다. 마을이 보이는 거리는 대략2km가 더 남은 상황으로 낭패가 아닐 수 없다. 터질 것 같은 심장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다시 뛰고 또 뛸뿐이다. 얼마나 그렇게 뜀박질에 몰두했을까? 땀이 온몸을 적셨고 안정이란 곳을 맞이하고서 가뿐 숨이 가슴을 누르듯 압박해왔다. 그때의 그 시간은 두려움이고 악몽이다. 1년이 지나고 그 장소에 발을 다시 올렸다. 뭣도 모를 당시의 공포는 쉽게 가시지 않았고 해가 서쪽으로 잠들러 가기전 서둘러 숲속을 빠져나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몸을 휘휘 감는다. 내가 살 수 있는 방법은 태양을 저버리지 않는 일이다.


뭐지? 1년 전 그때와 너무 다른 고요함이 흐른다. 숲속이 조용하다면 그에 따른 이유가 반드시 있다. 첫번째가 드라마 "킹덤"이 연상된다. 좀비로 나오는 장면을 보면 숨죽인 듯 새 울음소리도 "쉿~"이다. 대낮에 유령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다. 깜짝이야! 적막을 깨고 사람의 형상이 보인다. 유룡아 아닌 정말 사람이다. 무엇 때문인지 몰라도 깊숙한 숲속에 굴삭기가 동원되어 숲속을 울린다. 거대한 덩치로 어지러운 숲을 정비하는 듯 시끌벅적한 소리에 잠시 또 한번 두려움의 시름을 내려놓는다. 숲길을 거쳐 또 다른 숲길 또 숲길, 마법의 결계에 갇힌 듯 빠져나가지 못하고 맴도는 아찔한 좋은 기분이다. 숲은 어느 듯 나눠져 있던 내몸과 자연은 하나가 되었다. 숲속 요정의 탈을 쓴 누군가 나를 이끌고 있다.

하늘을 가린 나무들로 빼곡한 숲길은 한동안 이어졌다. 언제쯤 푸릇푸릇한 마늘이 심어진 밭이 나올까 노심초사. 숲길을 빠져나가는 시간은 오래 걸렸다. 숲을 빠져나갔다 싶으면 길을 다시 숲으로 안내했다. 다시 미로속에 갇혀 헤어나올 수 없을까 두려움이 앞섰다. 스마트폰 지도의 정보를 찾아보니 동복리 마을 운동장에서 2.8km를 지나면 김녕 농로길을 만날 수 있다. 

한마디로 나무들의 어깨동무로 만들어진 그늘에서 벗어난다. 파란 하늘이 마중을 나올 것이다.  

이제 두 모녀의 그림자는 그렇게 필요치 않다. 어제도 오늘도 그 다음날도 제주의 하루 일상이 만들어진다. 들판에는 온갖 작물이 자라나고 아스팔트 위로는 여행을 온 사람들로 가득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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