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병욱이 Apr 06. 2023

뱅듸 길

21. 04. 06


한동리 계룡동을 빠져나왔다. 뭔가에 정신을 빼앗긴 것처럼 몽롱하다. 아마 공허한 길거리에 아가씨의 존재를 찾지 못한 허기에 빈혈이 왔다. 당(단 음식)이 부족하다. 길가에 잠시 멈춰 쪼그려 앉았다. 가진 건 물 한병이 전부다. 초콜릿의 당분 대신 미네랄의 섭취로 만족을 가졌다. 식도를 흘러들어간 물은 순식간에 메마른 몸을 적셨다. 수분보충으로 상쾌해진 몸은 가벼워졌고 정신은 맑아졌다.


한동리의 찬란한 오색지붕의 빛이 희미하게 멀어짐에 발걸음이 더디다. 잡혀있던 뇌가 일어서는 순간 시선은 토끼풀,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네잎 클로버의 사촌지간인 세잎 클로버가 유혹의 가루를 뿌린다. 유혹에 넘어갈까 자신만만, 눈은 벌써 두리번 두리번 혹시나 네잎 클로버를 찾을까? 눈에 힘을 주고 부라린다. 학교 다닐 적 보물찾기 이후 오랜만에 느껴보는  열정, 몸이 후끈 달아오른다. 발견이다 싶더니 클로버의 눈속임에 한방 얻어터지는 중이다. 클로버 여신의 가호를 받기란 누워서 떡먹는 것 보다 어렵다. 꽝을 선택한 난 더욱 신중하고 맹렬하게 눈동자를 한곳으로 모아 모든 신경을 쏟아 붓는다. 쉽게 잡을 수 없는 희귀아이템인 “네잎 클로버” 정말 찾고 싶다는 마음이 깊은 단전에서부터 불타오른다.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그들의 신을 믿는 것처럼 오랜 태고부터 전해 내려오는 네잎 클로버에 깆던 염험한 기운의 행운의 전설을 믿는다. 2.5m의 짧은 공간을 샅샅이 훑고 마지막 라운드에 다다랐다. 너무 큰 기대를 품었던걸까. 실망이 저주가 스멀스멀 연기처럼 피어오른다. 딱 그 순간 눈에 또 보이는 네잎클로버, 이제서야 행운의 빛이 발산하려 한다. 분하지만 속는 셈치고 확인에 나섰다. 떨리는 마음을 다스리며 뚫어져라 한곳을 응시한채 세잎 클로버를 밀친다. 네잎클로버 진품이다. 잎이 네 개인 희귀 아이템을 손에 쥐었다. 기쁨의 만끽도 잠시 네잎 클로버 하나가 더 눈에 꽂혔다. 설마하며 손등으로 스윽~. 이건 무슨 조화를 부려도 이럴수가! 행운을 오지게 맞는 날이다.

네잎 클로버 군락임이다. 행운을 맞보기보다 이건 그냥 세잎 클로버에 있어서 별종으로 취급되는 단계다.

희희낙락 하며 몇 걸음도 가지 않아 마주친 말 한필. 안쓰럽게도 목장의 말의 처지와 사뭇 다르다. 미동도 없이 목을 메여 달아날 수도 없다. 달리고 싶은 욕구도 채울 수 없다. 멍하니 서 있는 말이 안쓰러워 자꾸쳐다본다. 얼룩 무늬가 있는 것과 덩치로 제주말이 틀림없다. 아마 1840년 유배온 김정희는 9년의 삶을 제주에서 보낸다. 그 사이 탔던 후손의 말이 아닐까?  제주에 장기 투숙한 김정희. 자신의 학문을 전파하면서 말을 타고 제주 전역을 유람했을지 모른다. 유배의 삶이라고 모두 갇혀 있는 건 아니니까. 대정에서 평대리는 꽤 멀지만 말이 있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나의 궁둥이도 저 말 위에 얹혀 느긋이 올레길을 걸었다면 어떨지 좌측 머리 위로 떠올려 본다.


잠깐의 호화로운 상상을 뒤로한채 다시 발걸음에 시동을 건다. 오늘 하루 파란 하늘은 만날 수 없지만 봄이 들려주는 들판의 이야기를 듣고 바라보며 작은 평대리 해변을 마주한다. 작은 모래 사장은 듬성듬성 풀만 자라고 해변가는 할머니 한분도 없이 텅비었다. 평온한 거리를 마주하 게 요즘들어 힘들다. 멀뚱멀뚱 혼자 서 있는 모래 벌판이 이제까지 그린 풍경이다. 얼굴의 대부분을 가렸던 마스크를 벗고 콧구멍으로 바람을 들이마신다. 1단, 2단 필터로 정화되지 않았지만 상쾌함이 온몸으로 퍼지는 공기 질부터 남다르다.


아직도 갈길이 많이 남았지만, 천하태평 쉬고 싶은 맘이 봄비에 떨어지는 꽃보다 더 간절하다. 출렁이도 잠시 쉬고 싶다며 하얀 포말은 발버둥을 친다. 그래 5분만이라도 쉬자. 5분은 그냥 눈깜박이면 끝났다.


“이쪽으로 가시오.” 방향을 가리키는 간세. 이 길은 “뱅듸길”이란다. 뱅듸 즉 넓은 들을 뜻한다. 뱅듸길로 진입하려는 순간 어딘가에서 만났다가 월정리에서 헤어졌던 여인에게 따라잡히고 말았다. 한마디의 말을 던지고 싶었지만 마음만 요동치고 그 여인은 날 버려둔채 멀리 달아나는 중이다. 소심한 나의 성격에 뒤처졌지만 기분은 좋다. 이유가 뻔하다. 아직 깨어나지 않은 봄이지만 운치가 느껴졌다. 이때다 싶었다. 그냥 길을 담는다. 뭐~ 이건 어물쩡한 작품이라고 여겨둔다. 뱅듸길은 타 지역에서 사용하지 않는 외계어 같은 제주어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알 길이 도무지 없기 때문이다.

하찮게 보여도 어떤 것을 품은 듯 우아한 뱅듸길. 우연하게 클로버를 발견하고 사투끝에 다수의 네잎 클로버 획득. 모든것이 뱅듸길을 걸으려는 시련이라 여겨진다.


뱅듸길은 그렇게 긴 거리는 아니지만 강력한 인상으로 남았다. ‘뱅’ 돌다가 ‘듸’를 돌아보면 내가 있다. 절대 잊어선 안된다. 그 말이 딱 들어맞다.


“차탕 다니지 말앙 촌촌히 걸으멍 기꺼지개 놀당 간” 글귀가 머리속을 스친다. 아마 속마음이었을지 모른다. 내일은 누구와 혼디해야 할까?



  찾기 힘든 만큼 행운을 가져준다는 전설을 믿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제주의 하루 일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