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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병욱이 Apr 10. 2023

My last story or beginning.

2021. 04. 07 감사공묘역 겹벗



취소하지 않은 알람이 여전히 아침 6시30분이 되면 울린다. 감길 듯 말 듯 무거운 눈꺼플을 가까스로 들어올려 잠에서 몸을 일으킨다. 알람으로 다소 시간이 넉넉한 하루의 시작이다. 꽃의 계절 봄을 맞이해 길을 걷는 것 보다 겹벚꽃을 택한 하루다. 쌀을 휘휘 씻어 밥솥에 밥을 얹히고 화장실로 직행이다. 쾌속 취사로 15분 뒤 "밥이 다 되었습니다. 잘 저어 주세요." 타이밍이 절묘하다. 고슬고슬하게 잘 익은 밥과 냉장고에서 꺼낸 몇 가지 반찬으로 한상을 차렸다. 매일 반복되는 상차림은 똑같지만 밥상에 놓인 엄마표 김치 하나면 충분하다. 어젯밤 컴퓨터에 받아 놓은 영화를 감상한다.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일어났지만 느긋했던 시간은 9시를 지나 10시를 향해 달렸다. 시간을 도둑맞은 기분이다. 어쩌면 시간이 이렇게 흘러갈 수 있는지 의문이 생긴다. 비록 답을 찾는다면 밥알을 삼키며 영화에 빠져 있던 두 눈의 잘못이다. 영화가 끝나고 설거지 꺼리는 싱크대에 던져놓은 뒤 미리 챙겨 준 가방을 메고 현관문을 잽싸게 나선다. 혼자만의 사투가 시작되었다.

 

가쁜 숨을 몰아 쉬며 버스 정류장에 다다랐다. 방법은 두개의 버스 중 어떤 것을 타냐는 선택에 달렸다. 이것저것 따져보니 버스에서 내린 후에도 목적지와 가까운 260번이 가장 합리적이다. 버스라면 당연히 감당해야 할 시간이지만 20분은 좀처럼 더디게 흐른다. 인터넷 뉴스 기사를 훓고, 노래를 듣고 또 다른 기다림의 미학을 그린다. 이어폰을 타고 흘러나오는 김수철의 ‘나도야 간다.’ 노래가 한창 불러지고 있을 때이다. 노래 제목과 딱 떨어지게 260번 버스가 코앞에 멈췄다. 늦은감은 있지만 버스가 적절하게 와주어 하루의 첫디딤은 괜찮은 편이다.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카드를 찍고 버스에 타면 되었지만 불행은 예고없이 다가온다. 주머니 뿐 아니라 가방 속까지 모두 뒤졌다. 정신을 빼앗은 영화의 여운이 여기까지 뻗었다. 전장을 나가는 군인이 군화대신 슬리퍼를 신고 총은 버리고 나온격이다. 신이 가호를 내려줬다면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까? 혼자 떠나는 나에게 돈을 빌려 줄 친구도 없지만 주머니속엔 그 흔한 동전하나 잡히지 않는다.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핵심요소는 지갑을 가지려 왔던 길을 돌아가는 것이다. 1.5km되는 거리를 왕복으로 30분을 더 소요해야 하지만 피할 수 없는 노릇이다. 급한대로 이마에 땀 좀 흘리게 생겼다.  

4월초의 봄은 지구의 이상 기온으로 좀 더 몸을 달궜다. 얼굴을 흘러내리는 땀으로 10분이 더 소요되어 40분이 지났지만 잊어버린 40분은 버림이 아니라 깨달음을 얻었다. 


버스에서 내려 다시 1.8km를 내질렀다. 나무로 둘러쌓인 숲도 아니고 느닷없이 튀어나올 개도 없으니 천하무적이다. 만나는 것마다 마음이 훈훈해진다. 아스팔트 도로를 20분쯤 내려간 후 무시한 광경에 눈알이 뒤집혔다. 구분이 되지 않는 아스팔트 도로는 주차장이 된지 오래다. 자동차도 사람도 3m의 아스팔트를 차지하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느껴졌다. 손에 땀이 흠벅 젖을정도로 아슬아슬한 곡예를 보여준다. 

400평 남짓되는 감사공묘역의 찐분홍빛은 사람을 도발한다. 벚꽃과 같은 부류지만 지체 높은 양반 가문의 대를 이어갈 장손이다. 그들은 너나할거 없이 장소를 바꿔가며 겹벚꽃과 사진을 담는데 인체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을 태세다. 와글와글 북새통이 된 감사공묘역 공원은 도떼기 시장으로 전략해가는 중이다. 자동차가 지나가던 말던 안중에도 없다. 남여는 벌이 되고 나비가 되어 서로를 탐하며 벚꽃을 찾아드는 멍충이가 되어갔다. 그렇게 공묘역 주변은 사람이란 곤충으로 분볐고 꽃을 떠날 이유를 찾지 못했다. 잡고 싶지만 잡을 수 없는 시간에 애간장만 녹고 나뭇가지를 수놓은 찐분홍 겹벚꽃을 잡고 헤어질 준비를 서두른다. 


걸음 앞에 장사는 없지만 나에겐 통할꺼리가 아니다. 올레길을 10바퀴 걸은 나에게는 걷는 게 재미일뿐이고 곧 인생이다. 아슬아슬한 도로위를 걷다보니 "비자림입니다"라는 간판이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심장이 쿵 한 번 더 설레고 그저 걷기만하던 발걸음에 속도가 붙는다. 머리부터 발가락 끝까지 9만 6km의 혈관의 소용돌이가 휘갑긴다. 뜨겁게 심장을 달구는 비자림을 뒤로하고 입구 앞은 땅속으로 푹 꺼지는 한숨의 전율이 꿈틀댄다. “오늘 하루 인원 마감” 마감이라니 믿기 힘들다. 감사공묘역 공원에서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거친 욕이 입안에서 꼼지락거린다. 코로나로 인해 하루 관람 인원이 1,500명이라는 제한을 두었다. "저 혹시 혼자인데 안될까요?" 구차하게 두손모아 빌어보고 싶은 심정이다. 성산일출봉 사건 이후로 처절한 몸부림은 두 번째다. 버스 노선도 다양하지 않고 애매한 시간에 다음 발길을 어디로 돌려야 할지 난처하다. 길을 멈춰 서 뜨거워진 뇌로 궁리해 보지만 화만 더 뻗친다. 잡, 집, 집 “HOUSE” 감사공묘역 공원에서 활약했던 카메라의 역할은 끝났다. 아침부터 버스와 전쟁을 치뤘더니 통째로 몸을 버스에게 맡긴 하루같다. 

20대로 추정되는 건장한 다섯명의 남자가 버스 정류장을 지나쳐 간다. 그들은 비자림에 흔적이라도 남기고 싶었던 걸까? 시끌벅적한 웃음과 대화소리가 10리 까지 들릴정도다. “야~ 5km면 얼마나 가야 하냐. 3시간이면 되겠지.” 그들도 그럴시피 걸음을 나와 같이 했다면 이심전심으로 통했을 타입이다. 희희낙락 다섯명의 남자로만 이뤄졌다지만 뒷모습은 외로움보다 즐거움이 뿜어져 나온다. 퇴짜를 맞고 마지막엔 그들의 우정에 부러움까지, 한숨만 푹푹 세어나온다. 



..................

젊음을 안고 목적지가 있는 곳 끝까지 즐거운 행군이 되길 바란다. 버스가 집까지 나를 데려다 주길 기다린다. 집까지 가는 버스를 만나야겠다.

여전히 아침 6시30분이면 울리는 알람. 감길 듯 말 듯한 눈꺼플을 가까스로 들어올려 잠에서 깬다. 다소 시간이 넉넉하다. 길을 걷는 것 보다 분홍 겹벚꽃을 택한 하루다. 전기밥솥에 밥을 얹히고 몸을 씻는다. 5분 뒤 다 지어진 밥과 몇가지 되지 않은 밥상을 차렸다. 반복되는 상차림. 밥상에 놓인 엄마표 김치 하나면 충분하다. 

느긋했지만 느긋한 시간이 희미해진다. 뭘 했다고 시간은 이토록 여기까지 흘러가 있는 걸까? 9라는 숫자가 놀랍다. 미리 싸두었던 가방을 메고 현관문을 나선다.

가쁜 숨을 몰아 쉬며 버스 정류장에 다다랐다. 방법은 두개의 버스 중 무엇을 타느냐에 달렸다. 찬찬히 훑어보고 따져보니 260번이 가장 합리적인 정답이다. 버스에서 내려 목적지까지도 가깝다. 좀 더 기다려야 했지만 260번 버스를 택한다. 아직 20분의 시간이 남았지만, 대수롭지 않다. 버스라면 당연히 감내해야 할 것이고 또 다른 미학이다. 이어폰에서 나오는 김수철의 ‘나도야 간다.’ 노래가 흐르는 사이 저만치 260번 버스가 확인된다. 지갑을 빼려고 손을 주머니로 넣지만 뭔가 허전하다. 여기저기 텅 빈 주머니를 뒤졌지만 지갑이 없다. 전장을 나가는데 군화대신 슬리퍼를 신고 나온격이다. 신의 가호가 있으면 해결될까. 누가 차비라도 여기 있소 할지 모른다. 신은 곁에 없다. 급할때만 부처님, 하느님을 부르는 무종교이다. 방법은 집을 다녀오는 것 뿐이다. 1.5km되는 거리를 왕복해야 했지만 다행히 시간은 넉넉했다. 다행이라면 그것 뿐이다. 이마에 땀 좀 나겠다. “버스야 가지마 나도 가소 싶어.”


40분의 잊어버린 시간은 버림이 아니라 깨달음이라 생각한다. 


버스에서 내려 다시 1.8km를 걸어야 한다. 숲길이 아니라 무섭지도 않고 최대의 적 개도 없으니 맘편하다. 아스팔트 길을 20분쯤 내려가니 도로 갈길은 온통 자가용뿐이다. 길을 막고 있는 그런 느낌 답답하고 위험해 보인다. 서로 도로를 차지하려는 듯 왔다갔다 아슬아슬 곡예를 보여준다. 손에 땀도 차지 않는다. 


감사공묘역의 찐분홍빛은 사람을 도발한다. 지나가는 자동차의 안위는 생각도 없다. 벌도 나비도 없으니 내차지라는 생각에 의식생각뿐이다. 좁은 공묘역 안은 사람으로 분비고 떠날 생각이 없다. 잡고 싶지만 잡을 수 없는 시간은  대롱대롱 메달린 찐분홍 겹벚꽃이나 잡자.


걸음 앞에 장사 없다지만 나에겐 통하지 않는 말이다. 걷는 게 재밌으니 걷다가 비자림 도착이다. 가슴이 한 번 더 설레기 시작하고 발걸음에 속도가 올라간다. 피의 소용돌이가 9만 6km의 핏줄을 휘갑는다. 입구 앞, 땅속으로 푹 꺼지는 생생한 느낌이 전율. “오늘 하루 인원 마감” 마감이라니 뭔 짓이야. 여길 어떻게 왔는데, 욕이라고 튀어나올 지경이다. 코로나로 인해 하루 관람 인원이 1,500명 이라니. "저 혼자인데 안될까" 따지고 싶은 마음이 입안을 맴돈다. 성산일출봉 이후로 처절함의 맛은 두번째다. 다음 발길은 어디로 돌려야 하지? “HOUSE” 다시 버스를 기다린다. 왠지 버스에 통째로 몸을 맡긴 하루다. 다섯명의  남자들이 정류장을 지나친다. “야~ 5km면 얼마나 가야 하냐. 3시간이면 되겠지.” 젊으니까 끝까지 가길 바란다. 좀 전에 나를 보는 것 같다. 이젠 난 지쳤다. 집까지 가는 버스를 만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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