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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병욱이 Jun 13. 2023

마을 탐방 2

22. 04. 21




까만 아스팔트 중앙을 가로질러 한몸이지만 아래 동네와 윗동네는 확연하게 다른 느낌의 풍경을 풍긴다. 바닷 바람에 소금끼가 풀풀 날래어 짠내가 콧속을 후비고, 마늘 향이 골목길을 가득 채운다. 소원을 들어줄 것 같지만 또 다른 이면에 악한 마음을 품은 하나지만 둘의 매력을 지닌 램프의 요정 지니 같다. 바다를 마주한 윗 마을, 마늘의 향기가 홀려 골목길을 멍하니 따라 오른다. 낯설지만 언젠가 와 보았던 곳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든다. 데자뷰이러니 흘러버렸지만 익숙한 증거가 각막, 수정체, 망막을 거쳐 시신경의 통로를 통해 발바닥부터 스멀스멀 올라온다. 익순한 풍경은 순간 두뇌 우측의 북위  38 128.162075의 두(頭)선을 흔들어 놓는다. 꼼짝없이 사로잡힌 두뇌 우측의 놀라움에 돌하르방처럼 움직일 수 조차 없다.

“아~ 여기가 거기였어!.” 오랜만에 만난 친구를 받기듯 놀라움과 감격에 사로잡혀 있을때 쯤 30m 근방, 어느 노부부의 대화에 다시 한번 발걸음을 멈춰선다. 5년이란 시간을 제주에서 보냈지만 노부부가 내뱉는 제주어의 대화는 여전히 어렵다. 영어 듣기 평가를 치르듯 귀를 세우고 집중을 하지만 얼핏 몇개의 대화만 들렸고 숙제로 남을 뿐 아직 역부족이다. 몇분동안 대화를 주고 받더니 앞에 주차된 삼륜 오토바이 짐칸에 물건을 싣고 떠날 준비에 나선다. 이제 할아버지는 어디론가 갈테고 할머니만 남겠지가겠지. 핸들을 잡는건 할아버지가 아닌 할머니다. 처음이였다면 당황도 했겠지만  제주의 삶에서 익숙한 장면의 한 부분이다. 할머니가 밭을 갈고 할아버지는 밭둑에 앉아 할머니의 모습을 쳐다본다. 그나저나 생각을 뒤집은 역공격이다. 게메이(그래도) 문제는 할머니가 사라진 후다. 축처진 어깨를 감추며 집안으로 들어가는 할아버지의 힘없는 뒷모습에 맘이 짠해 온다. 하르방을 보며 미래의 나를 떠올리게 만드는 생각의 아찔함. 시간은 나이를, 나이는 시간을 먹는 공존의 사이지만 나이를 먹는다는 것만으로 우울증에 걸릴 것 같다. 상상도, 바라지도 않지만 20년 후 60세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오전을 넘어 햇살은 겹쳐 싸여 열기를 뿜어낸다. 할머니도 외면한 하르방의 그림자를 뒤로하고 나즈막한 오르막길. 뜻밖의 횡재와 거북한 손님을 마주친다. 익숙한 장면이 또 한번 리마인드 각성이 된다. 둥글게 둘러싸인 돌담은 밭담으로 이어지고 돌담 너머 초록으로 덮인 밭의 싱그러움에 눈이 부시다. 입을 반쯤 벌리고 점점 더 깊은 집중에 빠져들때쯤 고막을 거쳐 달팽이관의 신경을 타고 흘러들어오는 그 소리. 목청이 찟어저라 질러되는 그놈의 목소리에 이리저리 휘젖히는 눈동자와 마음은 이미 두려움에 휩싸였다. 와그작 깨져버린 희락을 손바닥에 주워 담을 수 있는 처지도 아니고,  신경은 하나같이 한 쪽 방향을 가리킨다.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되는 그 녀석

“ 왈왈왈~”

5년이란 시간속에 익숙해질 것도 같지만 여전히 처음 같은 설렘보다 놀라움이 심장을 두드린다. 갈필을 못잡은 하나뿐인 심장은 몸 밖으로 뛰쳐 나올지경이다. 개도 두려움과 집을 지켜야 하는 본분의 책임을 위해 짖는 것이지만, 찢어질듯한 목소리는 잔소리로 귀에 딱지가 않을뿐이다. 애걸복걸 울어되는 성화에 못이겨 그 자리를 비켜설 수 밖에 없다. 20m 쯤 벗어나자 사그라드는 이름 모를 녀석의 목소리에 마음 한구석도 어느새 안정을 취한다. 반쯤 강제로 떠밀려 난 몸은 주인을 잃고 방황의 늪속에 빠졌다. 제주의 삼다는 대체로 돌이 많다. 그 뒤를 이어 여자 아닐까요? 반물을 던질지 모르지만 정작 매연을 뿜어내는 자동차다. 18세기에는 어땠을지 모르지만 20세기에 들어서는 삼다의 수식어를 교체할 시기가 된 것이다. 제주의 삼다라 불릴만한  “바람, 돌, 개+ (자동차)” 가 있다.

오르막을 오르지 못하고 돌고 돌아 눈 앞에 보이는 전망대로 종착지를 잡는다. 때론 바라지 않던 일이 빛의 길로 안내를 한다. 동복리 뿐 아니라 더 멀리 다른 동네의 면모도 확인 할 수 있는 가치가 있는 전망대다. 겨울의 흔적이 아직 정리되지 않는 나무 계단 위로 낙엽이 나뒹굴고 거미줄로 함정을 판다. 눈을 찌르고 입을 막고 거미줄은 죽을 힘을 당해 막아섰지만 상대를 잘못 골랐다. 가방 옆 주머니에 꽂아 둔 삼단봉을 꺼내 들고 보이지 않는 거미줄의 반항에 허공을 향해 휘두른다. 말할 것도 없이 바람에 떨어지는 낙화나 다름 없다. 20분이 지나 전망대와 눈을 마주칠 거리로 좁혀졌고,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전망대 위로 오른다. 푸른 바다는 수평선을 긋고 집집마다 알록달록 치장한 지붕이 귀엽기만 하다. 동복리를 넘어 김녕의 바닷가 풍차가 실어주는 바람이 손을 잡는다. 마을 탐방은 돌담을 시작으로 밭담을 만나고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대화를 들으며 끝판왕 전망대에 올랐다.

잘 한 짓이다. 때론 쫓겨날때도 있지만, 흑룡만리를 돌담을 따르다 보면 새로움이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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