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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병욱이 Jun 14. 2023

마을 탐방 3

22. 04. 26




먹구름이 물러나고 태양이 독차지한 파란 하늘은 시간이 지날수록 유난히 목이 타들어간다. 경사가 있는 오르막길을 내달려서니 했지만 그건 문제가 아니다. 봄이라며 떠들어되지만 유독 뜨거운 하루, 계절에 맞지 않은 봄맞이 용 옷, 후끈 달아오른 몸의 열기가 수상하다. 빨간 옷을 걸친 태양이란 여름 꼬마가 바라지 않던 손을 덥석 잡았다. 이글거리는 꼬마의 눈빛은 너무 강렬했고 정신까지 몽롱해졌다. 머리를 핑 울리는 어지리움에 땅은 울렁거렸고 짧은 몇초간 눈앞이 어두울뿐이다. 숨을 돌린 뒤 돌담위에 가방을 잠시 내려놓고 생수병을 찾아 500m의 물을 단숨에 들이켰다. 마른땅이 수분을 머금듯 쭉쭉 빨려들어간 물은 목을 지나 장기 구석구석까지 퍼져나갔다. 한여름의 소낙비에 식어가는 땅처럼 달궈졌던 몸의 열기도 한풀 꺾이는 추세다. “후우~” 깊은 숨을 나도 모르게 내지른다.

마을을 벗어나 길게 용트림을 하는 밭담으로 초록비단이 깔렸다. 비닐위로 얼굴을 내민 조그만한 새싹은 탄탄한 황사마스크를 뚫고 코를 향해 돌진해왔다. 걷기도 힘든데 밭에 깔린 어린 적에게 포위된 채 목적지를 잃어버렸다. 2년이 넘게 코로나와 대치중인 현재의 상황에 이제는 무뎌질때가 되었다. 주변을 둘려보고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 한 뒤에 깊은 숨을 들어마쉬겠다는 오기에 코로나는 문제가 아니다 마스크를 벗어 재겼다. 작년에도 그 전에도 쓰디 쓴 맛을 본 마늘이다 마늘, 아직 어린 새싹이지만 무척 강해 보인다. 숲속을 거닐때 맛 좋은 향을 뿌리는 피톤치드와 달리 또다른 활력을 불어넣었다. 곰이 웅녀가 된 것만 봐도 마늘의 효력이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다. 마늘 향이 가득찬 밭 가운데 진분홍 몸빼바지를 입은 할머니란 꽃이 한송이 피었다. 눈알을 부라리며 찾아도 만날 수 없던 사람의 조우에 반갑기 그지없다. 텁텁한 입안에 시원한 바람이 일었다. 인사를 건넸지만 시큰둥한 반응에 분위기는 더욱 어색해지고 뜨거운 태양의 열기만 몸을 태웠다. 이마를 타고 흘러내린 한방울의 땀만 턱선을 타고 신나게 미끄럼을 탔다. 무엇이 맘에 들지 않았을까? 어줍잖은 목소리에 인사 말을 듣지 못한 것일까? 나의 복장은 여행을 온 사람이나 다름없다. 손에는 카메라가 들려있고 두리번거리는 눈동자에 텃새나 경계심이라 생각한다.


유채꽃이 한창 고개를 들고 날뛸때이다. 서귀포 남서쪽 끝트머리 산방산과 꽃에 정신이 팔려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고 있을 때였다. 길 가쪽으로 자동차를 주차한 후 하르방이 주변을 둘러보더니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할아버지 왈~ “꽃이 참 이쁘지요.”

“아~ 네. 여긴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장소에요.”

할아버지 왈~ “어디서 왔어요”


"어디서 오셨어요"라는 말은 길을 걸으며 만나는 사람마다 수식어처럼 묻고 다녔던 나다. 그런 질문을 역공으로 듣고나니 묘한 기분이 온몸을 뒤흔든다. 한편으로는 무료함의 늪에서 탈출을 도와준 하르방이 고맙기도 했다.


“제주시에서 왔어요.”

“아~ 우리꺼구나”


하르방의 우리꺼라는 아리송한 말에 얼떨떨하다. 우리꺼란 말의 뜻을 이해할 시간도 주지않고 계속 말을 걸어왔다. 할아버지가 떠나고 우리꺼란 말이 제주 사람이란 뜻이란 것을 통화를 한 형에게 전해듣는다. 낯선 표현에 두뇌는 멍해졌지만 한편으론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다. 6년이란 시간동안 혼자라는 삶이 더욱 반갑게 다가오는 이유다. 자의적 타의적 반가움에 피시식거리는 입술의 꿈틀거림, 입가에 미소가 자꾸 올라탔던 지난 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홀로 땡볕아래 마늘쫑을 따는 삼춘의 모습은 씁쓸함, 어색함, 궁금함을 끌어 안고 밭담을 따라 그냥 지나쳐간다. 무뚝뚝함이 아닌 나에게 말을 걸어 줄 또 다른 삼춘을 만나기 위해서는 갈길이 먼 듯하다. 들판 지평선 끝 솟은 오름 위로 구름 한점이 바람의 꼬리를 잡고 집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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