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05. 09
아침부터 점심 사이 시작의 문을 열었다.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1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행동에 나섰다. 밥은 집에서, 잠은 집에서라며 고집을 부리던 나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혼자만의 맛을 즐기는 나로선 나만의 식당을 찾아간다. 메뉴판을 훓어보니 메뉴 하나하나 먹고 싶지 않은 게 없다. 마음같아선 1메뉴를 모두 시키고 싶었지만 홀쭉한 지갑을 바라보자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그렇다고 비굴하게 오래만의 외식을 비굴하게 보내긴 싫었다.
전복 칼국수에 돔베고기까지 잔뜩 먹었더니 너무 많이 먹었나 싶을 정도로 몸이 무겁다. 위장에서 식도를 타고 후두를 타고 자꾸 입과 코로 “꺼억~ 꺼어억” 가스를 내 보낸다. 그 전날 먹었던 저녁부터 다음날 아침과 점심사이의 먹었던 각종 부산물이 뒤섞인 냄새는 마스크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숨을 쉬는 사이 다시 코속으로 들어가기를 반복한다. 요망스러운 냄새, 위에서 녹은 각종 부산물의 가스가 부풀어 얼마나 녹아 있었을까? 그냥 밑으로 배풀되었다면 흔적하나 남기지 않았겠지만 마스크의 환기가 꼭 필요한 시점이다.
잔뜩 부른 배를 끌어안고 옮긴 그곳은 봄부터 겨울까지 항상 푸름이 잔뜩 끼어야 했지만 자동차와 사람들로 분볐다. 주차장에서 “하, 하 ,하” 웃고 있는 ‘하’자를 단 번호판의 자동차가 사람을 실어 날으니라 분주했다. 조용히 방안을 전전하던 시간동안 세상밖은 한때 코로나의 위협으로 덜덜 떨던 때가 아니다. 1년이 지난 시간동안 쌓이고 쌓인 갑갑함이 분출될 시기가 도달했던 것이다. ‘하’자의 수만큼 사람의 왕래는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 거리 수준이다. 그로 인해 주변 조성의 형태는 변한지 오래다. 코로나로 국내에 묶여있는 여행의 발목, 때론 좋지만 아픔을 가져온다. 몸이 끌리지 않던 반응을 비로소 깨닫게 됐다. 향긋한 녹차 향기에 도저히 입과 코를 막아 놓을 수 없었기에 동떨어진 장소를 찾아가 코를 막고 있던 마스크를 벗어재겼다. 10000평이 넘는 오셜록 녹차밭은 혼자만 있기에 딱 좋은 장소가 많아서 좋다. 발걸음은 가볍고 풍경은 그지없이 힙하다. 넓은 녹차밭을 홀로 지키는 나무 한그루, 그 아래 그늘을 지붕삼아 태양을 피한다. 영화의 한 장면이 스쳐지나간다. 누구였더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액션도 없고 판타지도 없는 로맨스, 러브 스토리 이야기다. 사랑은 울고 떠나고 다시 만난다. 열기를 품지 않아 다행이라며 비포장 길을 빙글빙글 몇 바퀴 돌며 지상 낙원이라 할 만한 장소에서 발길이 멈췄고 의자 하나와 파라솔만 있다면 낮잠이라도 잤으면 하는 그런 곳이다. 테이블 위에 놓은 붉은 와인 한잔과 5년 된 이탈리아산 치즈 브라디나 Murgella가 혀를 부른다. 현실은 태양이 활활 타올라 살갗이 꼼냥꼼냥 익어갔지만 상상을 한 것만으로도 코로나에 짜증과 분노는 사그라든다. 검게 그을린 손등, 목덜미를 적신 땀, 녹아내릴 것 같은 몸. 이젠 느낌만으로 버티기에 역부족이다.
정오를 지난 2시, 달궈진 몸은 이제 녹아버릴 지경에 이르렀다. 나무 그림자 주변도 이젠 열을 전도받아 뜨겁게 일어나고 점점 열기를 더해가는 태양의 무한한 힘앞에 무릎을 꿇어야 할 판이다. 주도 면밀하게 태양을 피할 방법을 찾아봐도 늪속으로 빨려들뿐이다. 방법은 단하나, 어쩔수 없이 복작거리는 더 큰 나무 그늘을 찾아 향했다. 한숨을 푹푹 내뱉으며 당도한 나무 그늘은 그나마 살만하다. 수많은 사람과 자동차의 틈사이로 울러퍼지는 속삭임, 멍해진 눈동자는 갈필을 못잡고 마음이 외치는 집으로 집으로 향할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