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 40도의 추위 조차 그리운 그곳, 야쿠츠크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
이제는 모르는 사람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유명해진 '에어비앤비'의 카피 문구다.
퇴사 여행을 준비하며
"내 인생에서 여행의 시작점은 어디였을까?"를 떠올려 보니 '야쿠츠크'가 떠올랐다.
야쿠츠크는 대학 4학년 1학기 때 교환학생 프로그램으로 갔던 러시아 극동부에 위치한 사하 공화국의 수도다.
새로운 곳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던 나는 러시아어를 전공했다.
물론 지금은 어디 가서 "저, 러시아어 전공했어요!"라는 말을 극도로 아낀다.
언어를 전공한 사람은 모두 알겠지만
언어라는 것은 꾸준히 공부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게다가 러시아어를 쓰거나 말해본 경험이 거의 10년 이상 지나다 보니 러시아어를 거의 기억하지 못하는 나로선 선뜻 말하기가 꺼려지는 것.
특히나 언어를 전공했다고 하면 사람들은 모두 약속이라고 한 듯
"러시아어 해봐 주세요!"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한다.
이건 문예창작을 전공한 사람에게 "시 하나 지어주세요!"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건 어디까지나 사적인 생각이다.)
어찌 됐든! 야쿠츠크는 내 인생의 첫 해외여행(?) 지였다.
인생의 첫 해외 경험이 러시아라니 정말 근사하지 않은가?
물론 여행이 아닌 학업을 위한 곳이었지만, 처음으로 국경을 넘어 만날 세상이 너무나도 궁금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 야쿠츠크를 가는 방법은 블라디보스토크를 경유해 가는 방법뿐이었다.
블라디보스토크까지는 2시간 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8시간 대기 후 3시간 반을 더 가면 되었다.
블라디보스토크이라는 러시아 도시를 가는 데까지 2시간 반 남짓인데 러시아에서 다른 러시아 도시로 이동하는 게 더 오래 걸리다니... 정말 넓은 세상으로 가게 되는구나 실감이 됐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처음 만난 러시아인들은 상상 이상으로 불친절했다.
이 때문에 여전히 러시아인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30Kg이 훌쩍 넘는 무거운 짐을 끙끙대며 옮기고 있는 우리에게 사람들은
" бы́стро(빨리)"를 연신 외쳐댔다.
이게 바로 인종차별인 건가, 아님 원래 이렇게 성격이 나쁜 건가. 서러움이 폭발했다.
공항에서 꼬박 8시간을 대기한 후 야쿠츠크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게 되었고,
드디어 한 학기를 살게 될 그곳 야쿠츠크에 도달할 수 있었다.
가을학기에 갔기 때문에 겨울이 오기 전 야쿠츠크의 가을을 경험할 수 있었는데
9월, 10월은 우리나라 기후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다 영하 10도, 20도, 40도 이하로 떨어진다.
영하 40도라니 상상조차 하기 힘든 추위 아닌가?
영하 40도가 되면 머리카락이 하얗게 얼어붙고 안개가 자욱해져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멋이라곤 부릴 수 없고, 생존을 위한 옷차림이 필수인 곳.
사실 교환학생이라는 신분으로 갔기에 '여행' 이 아닌 '삶'이 전부인 곳이었지만
이 또한 다른 의미의 '여행'이 아녔을까.
물론, 내겐 선택의 기회가 없어 '학점이수'를 위해 가야만 하는 도시였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이 곳을 가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내 인생은 정말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때부터였다. 새로운 곳과 넓은 곳에 대한 열망이 시작된 것이.
또 확신한다.
내 인생 중 가장 행복했던 시절은
야쿠츠크에서 공부했던 그때라고.
죽기 전에 다시 가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