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까스 먹다가 만난 동네 #2
눈이 펑펑 내리던 날에 찾은 수원 행궁동. 눈이 소복이 쌓인 지붕들과 1층짜리 낮은 건물들에서 느껴지는 고즈넉함 덕분에 마음이 편안해지는 동네였다.
약속 시간보다 한 시간 먼저 와서 성벽을 따라 산책을 했다. 눈사람을 만들던 가족들, 강아지와 산책 나온 행인들, 다들 각자의 방식 따라 함박눈을 즐기고 있었다. 모두가 여유롭고 행복해 보인다. 눈을 괴롭히는 화려한 네온사인들은 어디 하나 없고, 아늑한 조명들이 흘러나오는 가게들이 나란히 이어지는 동네.
오늘은 하쿠라는 돈가스 집에 들렀다. 낮과 밤이 공존하는 가게다. 낮에는 돈가스 메뉴를, 저녁에는 술과 함께할 수 있는 메뉴들을 준비하고 있다. 가게 규모가 큰 편은 아니고 어두운 주광색 조명 아래 ㄷ자 원목 테이블에 둘러앉아 소소하게 음식을 즐기기 좋은 분위기다.
특로스카츠를 시켰고, 사장님께서 서비스로 안심 두 조각을 더 주셨다. 튀김옷은 원래 베타믹스를 섞어 사용하다가 얼마 전부터 밀계빵으로 바꿨다고 한다. 튀김옷이 살짝 떨어지긴 했어도 크게 거슬릴 정도는 아니었고, 개인적으로는 베타믹스 베이스로 한 튀김옷은 선호하지 않아 오히려 좋았다.
등심 고기 텍스쳐는 살짝 거칠었고, 오버쿡이었다. 육즙이 빨리 빠지면서 튀김옷이 젖기도 한 게 오늘 먹었던 등심은 아쉬웠다. 등심보단 맛보라고 주셨던 히레가 좋았던. 핑크 빛깔 싹 도는 살코기를 레몬 소금에 콕 찍어 먹는다. 딱히 흠잡을 데 없는, 부드러움과 바삭함의 밸런스가 잘 잡혀있는 안심 카츠였다.
조용히, 편안하게 음식을 즐기기 좋은 곳이다. 동행했던 분과 돈가스 관련된 시시콜콜한 얘기들을 주고받으며 식사를 이어갔다. (요즘은 어디 돈가스 집이 새로 오픈했고, 어디가 맛있었다는, 보통 친구와 만나서 떠드는 근황 얘기보단 진짜 돈가스를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정보를 나누는 대화였다.) 돈가스를 다 먹고 나니 어느새 눈은 그쳤고, 밖은 어두워졌다.
돈가스를 찾아 새롭게 알게 된 동네, 행궁동이었다. 머무른 건 잠깐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 따뜻해지던 곳. 왜 사람들이 행궁동을 찾는지 조금은 이해가 갔다.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여유를 찾을 수 있던 동네였다.
매번 마감의 연속에서 살던 나에게 누구 하나 재촉하는 사람이 없다. 있는 그대로, 흘러가는 대로 여유를 충분히 즐기기 좋은 것 같다. 좋은 기억 덕분에 다시 찾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돈까스 찾아 삼만리
이 세상 돈까스가 없어지는 그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