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가스 먹다가 만난 동네 #4
어머니는 외대 앞에서 약국을 하셨다. 지금은 다른 곳으로 이전을 하셨지만, 어렸을 땐 어머니 약국에 따라가 창고 같은 좁은 공간에서 방학 숙제를 했던 기억이 있다. 되게 오래된 건물이었고 이상한 손님들도 많았다고 한다. 대낮부터 술 먹고 주정 부리는 할아버지 같은, 진상들이 특히나 많아 어머니가 마음고생하셨다는 이야기를 외할머니께 들었던 적이 몇 번 있다. 어머니가 약국을 옮기시면서 자연스럽게 이 동네를 잊고 지내다, 돈가스 집을 찾아 다시 외대 앞 역까지 찾아오는 데 거의 15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것 같다.
오랜만에 찾은 외대 앞, 아직도 철길 건널목이 있다. 기차가 다가옴을 알리는 종소리와 역무원의 호루라기 신호에 따라 어머니 손을 잡고 길을 건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역 앞에는 과일 가게와 장난감 가게, 비디오 가게가 있었고 가끔은 장난감 가게에 앞에 서서 구경을 하거나, 주말이 되면 비디오 가게에서 어머니와 함께 저녁에 같이 볼 영화를 골라 집으로 향했다.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다시 이 동네를 보고 있자니 잊고 살았던 옛날 기억들이 조금씩 떠오른다.
오늘 찾은 돈가스 집은 돼랑이 우랑이. 신기하게도 어머니가 운영하셨던 약국 맞은편에 있었다. 1층에서는 정육점을 운영하고 있고, 2층에 돈가스 집이 있다. 가격대는 만원 안팎이고 사장님께서 직접 손질한 고기로 돈가스를 튀긴다고 한다. 방문했던 시간대는 오후 다섯 시쯤, 수업이 끝난 외대 학생들이 주 손님들이었다.
치즈카츠세트를 시켰다. 일반적인 블록 카츠가 아닌 롤까스 형태다. 꽤나 단단한 육질로 이루어진 돈가스 안에 고소한 치즈가 가득 들어있다. 젓가락으로 한 조각을 집어 들면 양 옆으로 치즈가 흘러내리는 점이 아쉽긴 해도 쉽게 굳지 않아 맛있게 먹었다. 칼칼한 미니우동 국물 한입 마셔주며 식사를 이어갔다. 고소한 샐러드드레싱은 좋았지만 양배추는 두껍고 뻣뻣한 편이라 손이 잘 가지 않았던. 멀리서 찾아와서 먹을 정도는 아니었고 근처라면 생각날 때 한 번씩 들려 먹기 좋을 것 같다.
안타깝게도 어머니 약국이 있던 건물은 오피스텔 건물로 재건축되었다. 네이버 로드뷰로 찾아보니 벌써 몇 년이 지난 듯하다. 시간이 흐르면서 건물이 부서지고 새로 지어지는 건 도시가 발전하면서 이루어지는 당연한 흐름이라 생각하지만 오랜만에 추억 여행을 떠나러 온 나에게는 아쉬움이 크게 남았다.
다만 한 가지 반가웠던 점은 다 사라진 줄만 알았던 동네에서 어머니와 돈가스를 함께 먹던 호프집이 여전히 운영 중이었던 것. 혹시나 모를 생각에 철길 건널목을 건너 어릴 적 기억을 더듬어 찾아간 그 자리 그대로 가게가 있었다. 가게는 리모델링을 거친 듯 꽤나 세련된 대학가 앞 술집 모습이었지만 내가 기억하던 그 이름이 적힌 간판을 본 순간 가슴이 크게 뛰었다. 일정 때문에 발걸음을 옮겨야 했지만 여기는 늦기 전에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록을 하나씩 남겨야겠다. 사진이든 글이든 어떤 형태로든. 평범하다고 생각했던 일상도 어쩌면 먼 훗날 소중했던 날로 기억될지 모르니까. 어렸을 땐 아침 일찍 엄마를 따라 약국에 왔던 게 그렇게 싫어 투정 부렸는데, 그 기억이 15년 지나 다시 이렇게 소중하게 느껴질 줄이야. 오늘이 특별한 것 없는 하루였어도 사진 한 장 남겨야겠다.
돈까스 찾아 삼만리
이 세상 돈까스가 없어지는 그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