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고 굵게, 혹은 오랜 시간 동안 필수품처럼 여겨지던 많은 친구들이 있다.
워크맨, MP3 플레이어, 비디오, 카세트테이프, LP판, 플로피디스크 등등..
시간은 참 빨리 흐른다.
그리고 기술의 발달이 낳은 새로운 자식들이 많아졌다.
그들이 흙을 헤집고, 또 밟고 일어설 때마다 자연스럽게 땅에 묻힌 그리운 친구들.
다 지나고 난 지금에야 그립고 기억 저편에 남아있는 추억일 뿐이지만,
그 친구가 먹여주고 재워주던 사람들은 다들 막막함을 경험했다.
MP3로 먹고살던 회사들.. 비디오를 빌려주던 대여점.. 등등
지금은 다들 새로운 친구들과 더불어 살고 있을 터.
오늘은 좀 뜬금없는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잡지라는 이름의 그녀.
글도 참 좋아하고, 직관적인 그림과 여러 콘텐츠들을 좋아하던 나로서는 참 끌리는 친구가 아닐 수 없었다.
여러 과학잡지, 연예잡지, 그리고 만화잡지들과 함께 커온 나로서는 참 친숙한 친구다.
십수 년이 흘렀을까?
군인이 되었고, 그녀는 반가웠다.
군인이라는 직업의 특정상, 핸드폰이 터지지 않는 곳에서 근무를 하게 될 때도 많이 있고,
또 무언가를 특별히 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야 하는 빈도가 보다 잦다.
잡지는 눈도 즐겁고 읽을거리도 풍부해서 데이트 시간이 길어져도 그렇게 지루하지가 않다.
그러다 문득, 한국의 최신 트렌드를 담고 있는 여러 장르의 잡지를 몇 개 소장하고 싶어 져서 잡지 생각이 났다.
근데 이렇게 구하기가 힘들 줄이야..!
그녀한테 오랜만에 연락을 해보고 싶은데 생각보다 연락하기 쉽지 않더라.
어떻게 먹고 사는지, 어떻게 먹고살지 참 궁금하다.
어떻게 지냈니?
화려했던 과거가 있었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그녀는 문화, 경제, 스포츠 등 수많은 주제의 상징이었다.
그녀의 독보적인 화려함과 발칙하리만큼 다양한 주제들을 아우르는 내적 포용력은
다른 읽을거리들과는 확연히 다른 매력을 선사했다.
푸석푸석한 피부를 들이대는 따분한 다른 읽을거리들과는 다르게,
매끈한 감촉과 선명한 볼거리들을 제공하는 그녀는 확실히 세련됐다.
무엇보다 무작정 읽기만 하는 전통적 데이트 방식에서 벗어나서, 보는 재미, 심지어 향기까지 선사하는 그녀는
많은 독자들의 손을 잡고 당당히 독자적인 노선을 걷기에 충분한 자격을 갖고 있었다.
그녀는 분명 화려한 과거를 갖고 있었다. 분명 그러했다.
손을 놓지 않을 것만 같던 팔불출 독자들도, 눈길을 떼지 않을 것 같던 수많은 호의적인 독자들도,
이제는 예전 같지 않다.
무엇이 잘못된 걸까.
끊임없이 독창적인 콘텐츠 들과 구미가 당기는 주제들로 그들을 충족시키려 노력한 것은 변함이 없었다.
타성에 젖어 매너리즘에 빠진 적도 없었고, 넘치는 자신감으로 무리수를 던진 적도 없었다.
그저 시대가 바뀌었을 뿐이다.
그녀의 시시한 경쟁자들이 디지털 저널리즘이라는 폭풍을 맞이할 때 에도,
그 고유의 특유성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노선을 걷고 있었고, 또 잘 헤쳐 나갈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자신을 쥐고 있던 손아귀에는 스마트폰이 들려있다.
고개를 숙인 채 시선을 고정하고 길을 걷는 독자들은 그녀가 가는 길을 봐줄 여유가 없었나 보다.
스마트폰은 강하다.
뉴스, 게임, 웹툰, 동영상, 음악과 더불어, 검색하면 뭐든지 찾을 수 있다.
제 아무리 매력 있는 데이트 코스를 뽐내는 그녀도, 결국 시간이란 조건에 종속되어 있었고, 그 시간을 충족시킬 수 있는 수많은 콘텐츠 들을 앞세워 눈과 귀를 동시에 희롱할 수 있는 스마트폰 앞에서는 비집고 들어갈 틈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 것 같다.
그녀가 제아무리 스마트폰과 비교될 수 없는 매력을 갖고 있다고 발버둥을 쳐 보아도,
독자들은 편리함과 자극성 앞에서 좀체 고민도 하지 않는다.
운동해야 살이 빠지고, 골고루 먹어야 건강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실생활은 그렇지 않다.
스마트폰의 무수한 다양성과 편의성을 애써 무시하고 잡지의 우수성만을 내세우는 것은 소귀에 경 읽기 격이라는 소리다.
야속하지만 현실이다.
그녀는 아직까지 꿋꿋이 자신의 손을 붙잡고 있는 독자들에게 감사하는 동시에,
등 돌린 독자와 더불어 새로운 독자들까지도 유혹시키려는 욕심을 부려본다.
성형수술 감행이다.
스마트폰과 노트북이 그저 지나가는 변화가 아니라, 새 시대의 주축인 게 기정사실인 이상, 그 플랫폼을 받아들이는 게 현명한 처사인 건 분명해 보인다.
다행히 오늘날 그녀는 아직 긍정적이다.
웹페이지라는 옷을 새로 사 입어 보고, 앱이라는 이름의 생소한 시술도 해 본다.
페이스북 페이지라는 가혹한 성형수술도 감행하는 동시에,
디지털 세계에서 뽐낼만한 새로운 자태도 고려해 본다.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부정당하는 느낌도 들고, 이게 과연 최선책인가 하는 의문도 들지만,
끝까지 자존심은 버리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생각보다 강하다.
힘들 것 같던 성형수술을 감행하는 대범함과 동시에
출판 형식의 고유의 매력을 고수하는 자긍심을 가지고 있다.
이제 다른 길로 나아가려고 한다.
새로운 모습과 예전의 매력을 동시에 겸비한 그녀는,
자신의 새 모습에 익숙해질 독자들과, 출판 형식의 매력을 잘 알아줄 독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분명히 매끄러운 종이 형식의 그녀의 매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시각적으로나, 촉각적으로, 동시에 청각적인 면까지.
디지털 형식의 보고 읽는 방식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장점들이 많이 있다.
한눈에 파악이 가능하게끔 하는 다양한 편집 양식과, 무수히 많은 형식의 레이아웃은
디지털 쪽 측면에서는 침범하기 어려운 종이만의 고유의 영역이다.
위기는 곧 기회라고 했던가, 혹은 시작이 반이라고 했던가.
여느 읽을거리와는 확연히 다른 매력이 있었던 것처럼,
디지털 매체 안에서도 확연히 다른 그녀만의 방식을 찾을 수 있을까.
대답이 긍정적이라면 이것은 단연 기회이고 반은 성공적이다.
잡지라는 이름의 그녀가 디지털이라는 새 옷을 입을 때,
그 옷에 걸맞은 방식의 데이트 코스를 찾는 것이 관건이다.
마치 예전의 그녀가 획기적인 콘텐츠들과 단편성과 개별성을 타파시킨 화려한 방식들,
그와 더불어 선명한 사진들과 독특한 콘텐츠로 승부수를 두었던 것처럼,
분명 디지털 매체 속에서의 잡지만의 획기적인 양식과 독창적인 구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수동적인 독자들과는 다르게 그녀는 능동적이다.
종이냐, 디지털이냐 하는 고리타분한 문제가 아니다.
분명 각각의 고유성에 부합하는 매력이 있다.
그리고 그 각각의 매력을 한껏 차려입고 거리에 나서는 그녀가 있다.
그녀의 경쟁자는 많아졌지만 좌절하지 않고 나아가는 그 당당한 걸음걸이의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