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돌아가는 그 품이 왠지 낯설다면?
"15살 때 시집와서 한 번도 떠나 본 적이 없수다."
주름이 가득 찬 저 노인처럼, 지박령 마냥 한 곳에서만 사는 사람들.
요새는 이런 사례가 정말 드물다.
너무나도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이잖아?
모두가 살아가며 반 필연적으로 겪는 몇 번의 이사.
처음 겪는 장소에 터를 잡고 몸을 누이는 건 스트레스다.
적응하는 데 사용하는 에너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사람도 공간도 모두 익숙해져 가지만,
지나온 과거가 그리운 건 어쩔 수 없다.
새로 알게 된 사람들과 모여서 같이 시간을 보내고 웃고 떠들 때,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공감되고 재미진 이야깃거리는 과거 얘기다.
왜 꼭 잡담의 종착역은 추억팔이가 되는가?
그때 그 시절의 과자, 게임, 노래, 만화, 학교생활 등등.
신나게 공감하며 기분 좋게 회상하면서도,
함께하던 당시의 사람들과 공간은 동일하지 않다.
"꼭 그런 친구가 있었지, 맞아 맞아."
나는 재모라는 친구를 생각하고 상대방은 철수를 떠올린다.
"떡볶이 한 컵에 500원이었는데, 그치?"
나는 학교 앞 포장마차를 생각하고 상대방은 문구점 옆 분식집을 떠올린다.
"우리 때는 버즈랑 SG워너비가 양대산맥이었지."
나는 미용실 위층 오락실 동전 노래방을 생각하고 상대방은 등하굣길 듣던 아이리버 mp3를 떠올린다.
이런 류의 대화의 끝에서 오묘하게 느껴지는 서로의 모습은 괴리감이 있다.
봉곡중학교 교복을 입고 폴로 가방을 멘 채로 올려다보니,
처음 보는 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25번 버스를 타고 있는 스포츠머리 형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갑자기 낯선 느낌이 드는 동시에 이 대화는 씁쓸하게 종료된다.
결국 추억팔이는 매개체일 뿐이고,
실제로 그리운 것들은 그 매개체 안에 봉인된 구체화된 기억과 경험.
우리는 그 사실을 애써 간과하기 마련이다.
그럼 그 구체화된 장소와 사람들을 직접 만나면 속이 시원할까?
글쎄, 내 경험을 들려줄게.
여기 내가 있다.
이국의 땅에서 치즈버거와 피자로 속이 메스껍다.
오랜만에 한국을 방문했다.
그리운 한국음식들을 맞이 할 생각에 두근거린다.
기름진 밥상만 보다가 가득 찬 80첩 밥상을 볼 생각에 설렌다.
드디어 한 숟갈 뜨는 순간이다.
응? 맛이 다르다.
물어보니 레시피가 싹 다 바뀌었단다.
없어진 음식도 많고, 상해서 버린 음식도 있고, 신메뉴도 많단다.
오랜만에 보는 친구도 나와 온도가 다르다.
난 가슴도 뜨겁고, 내 앞에 밥상도 싹 바뀐 상황이지만,
그 친구에게 나는 잠깐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난, 비슷한 밥상 위에 깍두기 일 뿐이었다.
곁들여 먹던 돼지국밥이 없어진 탓에, 날 맛있게 먹는 법을 까먹었나 보다.
억지로 먹고 웃음 짓는 친구의 표정을 보는데 괜스레 미안하다.
끊임없이 바뀌는 밥상 위의 음식들 속에서
맛있는 조합을 발견하기에는 조금의 시간이 필요하다.
아무리 맛있게 먹던 음식도 갑자기 너무 오랜만에 먹으면 체할 수 있다.
불시에 코앞에 들이밀고 맛있게 먹어주길 바랬었던 건 내 욕심이었다.
바보같이 혼자 실망할 필요는 없다.
나의 맛을 정확히 아는 이들은,
무슨 음식이 있든 간에 맛있는 조합을 쉽게 찾아낼 수 있으니까.
시간은 흐른다.
그리움과 과거와 추억.
그 모든 것은 시간이 흘러 이미 현상된 사진들이고,
이제는 그 사진 속에 들어갈 수 없다.
조금은 빛바랜 시진들이지만, 사진첩에 고이 모셔두자.
친구들과 같이 새로운 음식 후딱 먹고 나서,
상 한번 쓰윽 닦고 사진첩 꺼내봐라.
그때 찍힌 사진들 한 장 한 장 테이블에 올려놓고 소소한 화포를 풀면 된다.
우리가 그 사진 속에 들어갈 순 없어도
머리를 맞대고 같이 한 장씩 넘기며 잡담하는 모습도 퍽 아름답다.
헤어지기 전에 너무 아쉬워할 필요도 없다.
고개를 들고 주위를 보면 말이다,
지금 그 순간도 사진이 찍히고 있는 걸 볼 수 있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