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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청년 Jun 07. 2020

노력하되, 내가 흐려지지 않을 때까지

김수현 글 그림, 애쓰지 않고 편안하게

책 서평 이벤트에 당첨되어 읽게 된 책이다. 김수현 작가는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라는 책으로 유명해졌다고 하고 제목은 어디서 들어봤는 데 읽어보지는 못했다. 내 취향은 아니라서 아마 찾아보지는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기대 이상으로 작가가 나를 다독여 주는 느낌을 받았다.


“뉴스 볼 때 댓글 안보는 데 나만 그러는 거야?”

“네 팀장님 저흰 뉴스 안 보고 댓글만 봐요"

“왜?”

“댓글이 재밌어요. 내용도 다 요약해서 알려주고"

실제 내 회의시간에 있었던 대화 내용이다.


사람들은 다 그런다던데 나만 옛사람이라 '이상한 습관을 고집하는 건가? 나만 이상한 거야?'라는 질문을 가끔 하곤 했다. 작가는 세상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삐그덕 대는 우리에게 위로를 주고 '이렇게 해보면 어때? 이렇게 살면 어때?'하고 담담히 말한다.


타인에게는 상식이 나에게는 무례일 때도 있고,
나에게는 선의가 타인에게는 오지랖일 때도 있다.
이심전심을 기대했지만 실상은 동상이몽인 거다.


오해의 대부분은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으면서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거라고 착각하는 데서 온다. 와이프와 차로 어디 갈 때 가는 길에 대해 종종 다투는 경우가 있는데, '왜 이렇게 가냐고 해서 이렇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면 이해를 못해서 답답해 죽는데, 알고 보면 서로 다른 길을 생각하고 얘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렇게 부딪히고 상처 입는 게 인간이지만 조금 덜 상처 받기 위한 자세가 두 가지가 있다고 작가는 말한다. 설득될 용기, 즉 지금까지 자기가 믿어왔던 거지만 ‘변경 가능'하다는 것과, 상대에게 작은 진실이라도 발견하면 인정해 주자는 거다. 상대의 말을 인정한다고 해서 내 말이 틀린 게 아니라는 거다.


그렇기에 지금의 방식으로 대안을 찾을 수 없는 순간이 온다면,
삶에서 행복을 찾을 수 없다면,
반복되는 충돌이 생겨난다면
설득될 용기를 내자.
우리의 믿음에도 때론 ‘변경 가능'이라는 조항이 필요하다.


상대의 말에서 작은 진실이라도 발견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 네 말이 옳다"라고 인정해주는 것이다.
상대의 말을 인정한다고 해서 내 말이 틀린 게 되어버리거나 내가 가해자가 되는 건 아니다.


사람을 설득하기가 가장 어렵다. 논리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그만큼 설득되는 데도 용기가 필요하다. 자기 믿음이 언제든 틀릴 수 있다는 자세가 없다면 절대적으로 어렵다. 그래서 용기가 필요하다.


사과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싫은 것도 아닌데 어렵다. 시기를 놓쳤다고 생각해서도 그렇고, 해도 받아주지 않을 거라는 두려움 때문이기도 하다. 작가는 강연에서 자신에게 까칠하게 질문했던 청중이 한참 후에 사과한 경험에 빗대어 ‘사과는 늦더라도 옳다’라고 말한다.


사람은 관계를 통해 상처 받기도 하고 위로받기도 한다. 그래서 관계에 있어 균형 또는 중도가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균형이나 중도만큼 애매하고 상대적인 단어도 없다. 관계에 있어 적당한 거리를 어떻게 알 수 있나?


균형이란 더 할 수 있어도 더 하지 않는 것
노력하되, 내가 흐려지지 않을 때까지.
그게 내가 아는 관계의 황금률이다.

라고 작가는 말한다.


그리고 삶은 어떤 의미나 목적이 있어 사는 것이 아니고 살아지는 것, 살아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삶에는 의미도, 목적도, 보상도 필요하다.
하지만, 아무런 답을 찾을  없는 날에는,
살아낸다는 ,
 자체가 의미이며, 목적이자, 보상 아니었을까.


삶의 의미와 목표를 알고 싶었고,
행복하고 싶었다.
그리고 오랜 시간 끝에 찾은 나의 답은 놀랍게도,
사랑이었다.
행복은 성취가 주는 단기적인 만족감이 아니었고,
삶의 목적도 아니었다.
다만, 사랑의 결과였다.


작가의 결론이 결국 사랑으로 마무리되어 조금 아쉽지만 작가도 돌고 돌아 고심 끝에 내린 결론 이리라. 사람은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백범 김구 선생님이 말씀하셨듯이 가까운 사람을 미워하느냐 사랑하느냐에 따라 지옥을 맛보기도 하고 천국을 맛보기도 한다.


자기에게 맞는 관계의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 그게 삶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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