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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청년 Sep 26. 2020

인생은 여행?

여행의 이유 - 김영하 산문

여행하는데 별다른 이유가 있으랴마는 김영하가 썰을 풀면 무언가 있어 보인다. 여행 가기 전에 설렘은 거의 항상, 가보니 별거 없네라는 재확인의 과정과 지인들과의 대화에서 나도 거기 가봤다는 자랑으로 써먹을 데가 많았던 나로서는 여행에 어떤 의미를 부여한다는 자체가 어색하다.


그래도 틈만 나면 여행을 가려고 하는 걸로 봐서 낯선 풍경에서 느껴지는 새로움과 김영하 작가가 말했듯이 과거의 후회와 미래의 불안으로부터 잠깐이나마 벗어나서 오직 현재만을 생각해도 된다는 여유가 주는 만족이 큰 거 같다.


내가 생각하는 김영하 작가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 두 가지는 첫째, 여행이라는 것이 근본적으로 원래 의도한 방향과는 다른 결과를 가져오게 마련이라는 것이고 둘째, 여행하는 동안은 현재만 생각하고,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련,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은 멀어지는 바로 초월하는 순간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여행의 의외성에 대한 설명으로 중국 여행에 관한 에피소드로 시작한다. 중국에 집필하러 가기 위해 아침에 출국했는데 입국 심사장에서야 중국은 비자가 필요하다는 걸 알고 추방되어 저녁에 집에 돌아왔다는 웃지 못할 사건을 맛깔나고 덤덤하게 표현하는 김영하식 유머에 빵 터진다.


작년인가 사고 많이 치는 중학생 아들과의 소통을 목적으로 제주도로 2박 3일, 둘만 자전거 일주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280킬로미터 정도 되는 해안도로를 3일 안에 주파해야 하는 힘든 일정이었는데 자존심 상하게도 중학생 아들을 따라가지 못해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펜션에 도착하면 씻고 자기 바빠서 애초 목적인 이야기는 거의 하지 못했다. 아 이런 게 김영하 작가가 말하는 애초 의도와 달라지는 여행의 결과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중에 아들이 이 여행을 어떻게 기억할지 궁금하다. 지금 물어보면 이제 아빠랑 다시 안 가겠다고 한다.


인간은 수렵생활을 거치며 끝없이 이동해왔고 그건 본능이라고 주장하며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이 인류를 ‘호모 비아토르’ 여행하는 인간으로 정의했다고 말하는 건 약간 오버스럽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는 여행 본능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정당화하며 동감한다.


보통 자기를 표현할 때 ‘평범한 회사원'이라고 소개하는 사람이 많은데 김영하는 ‘이 세상에 평범한 회사원이란 없다'라고 일갈한다. 모든 인간은 다 다르고, 어딘가 이상하다는 것이다. 토드 로즈의 [평균의 종말]에서도 비슷한 얘기가 나오는데 세상에 평균적 인간이란 없다.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의 소설 [그림자를 판 사나이]의 예에서는 그림자는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무엇인가이고 이것이 없는 사람은 사람들이 받아들여 주지 않아 사회 속에 정착할 수 없어 방랑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또 생각으로 먹고사는 사람은 장소에 구애받지 않기 때문에 방랑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결국 여행할 수밖에 없는 인간은 어딘가 이상해서,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생각으로 먹고살아 방랑하고 떠돌 수밖에 없게 된다. 운명이라는 건가?


인간은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확인하는 것을 넘어, 타인의 인정이 있어야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을 만큼 인정 욕구가 강하다고 한다. 김영하는 여행을 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어 처음 떠날 때와는 다른 나가 되어 돌아온다고 한다. 초심을 찾는다는 것인가?


왜 여행을 꿈꾸는가? 김영하는 새로운 소설을 찾는 것과 비슷한 거라고 말한다. 나에게 있어서는 그동안 힘들고 고생했다고 주는 보상과 같은 것이다. 어떤 철학적 의미나 이유를 크게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이 여행을 통한 인생의 큰 전환점이 없어서 일 수도 있겠다.


어쨌든 여행하는 동안은 과거에 대한 미련이나 후회,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안이나 걱정을 한 수 접고 오직 현재만 생각하게 된다는 김영하의 통찰에 초월의 경험까지는 아니지만 많이 동감한다. 인생을 여행에 많이 비교하는데 거기엔 다 이유가 있었다. 시작과 끝이 있고, 의도치 않게 흘러가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인생에 있어 중요한 건, 모두가 알지만 자꾸 까먹는데, 과거나 미래가 아니라 오직 현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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