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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청년 Mar 13. 2021

사색하는 능력을 상실한 시대

피로사회 - 한병철

많은 사람들이 독서를 자기 계발의 도구로, 하나의 스펙 쌓기로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책 읽기는 얼마 가지 못한다. 쉽게 피로해지기 때문이다.


저자는 21세기 사회를 성과사회로 규정하고, 무한정으로 ‘할 수 있다'는 긍정성이 자기 착취를 불러오고, 남에 의한 착취가 아니라, 자신에 의한 착취라는 이런 자발성이 인체의 면역반응을 불러오지 않아 우울증 같은 신경성 질환이 온다고 말한다.


이런 성과사회가 오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결국 자본주의의 생산성 향상 때문인데, 긍정성을 빙자한 자기 착취 아니면 이제 더 이상 생산성을 향상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저자는 ‘무위'를 제시한다. 저자가 말하는 무위란 ‘필경사 바틀비’에서 얘기하는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상황에 대해서 분노하고, 노자가 말하는 ‘공’에 도달하려고 하는 능동적인 것이다.


저자는 한나 아렌트의 영웅적 행동주의를 비판한다. 사유야 말로 가장 활동적이고, 사색적 능력의 상실이 히스테리와 신경증을 낳았다고 주장한다. 사실 생각에 비해 행동이 따라주지 못한다고 생각한 나에겐 신선한 충격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빨리빨리'란 신앙과도 같은 말이다. 저자는 우리에게 “어떤 자극에 즉시 반응하지 않고 속도를 늦추고 중단하는 본능을 발휘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라고 말한다.


이 책의 첫 문장은 “시대마다 그 시대에 고유한 질병이 있다.”로 시작된다. 자본주의가 촉발하는 성과사회가 우울증 같은 신경성 질환의 원인이라고 말하는 것이리라.


한참 자존감이라는 단어가 하나의 화두처럼 유행하던 때가 있다. 이것도 성과를 위한 자기 착취의 다른 이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울증은 미래에 대한 불안과 깊은 허무주의와 연관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사색적 능력의 상실 때문이라는 주장에 깊이 동감한다.


sns와 유튜브 같은 미디어들이 점점 우리에게서 사유하는 능력을 빼앗아 가는지도 모른다. 책도 읽기만 해서는 안되고, 깊이 사유하고 적용해야 의미가 있다. 저자가 행동주의를 비판하는 것도 사유가 선행되지 않는 행동을 말하는 것이리라.


성과사회의 피로는 사람들을 개별화시키고 고립화시키는 피로라고 한다. 그래서 무위를 바탕으로 한 오순절 모임 같은 공동체가 필요하다고 작가는 말한다. 독서모임도 충분히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


성과사회는 도핑 사회로 발전할 거라 한다. 도핑 사회는 성능 없는 성과를 가능하게 한다고 한다. 도핑 사회는 자기 착취를 넘어 내 능력 이상을 약물로 단기간에 뽑아내고 버려지는 사회를 말하는 것이리라. 분노는 어떤 상황을 중단시키고 새로운 상황이 시작되도록 만들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한다.


이럴 때야 말로 분노할 때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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