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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청년 Jul 25. 2021

정치는 우리에게 관심이 있다. 우리는?

처음 읽는 정치 철학사 - 그레임 개러드, 제임스 버나드 머피 지음

정치란 무엇인가? 기독교 신학자 아우구스티누스는 ‘정치는 인간의 죄악성을 다스리기 위한 필요악'이라고 했다. 유대교 신학자인 마이모니데스는 ‘정치철학이란 결국 통치술에 대한 실용적인 학문'이라고 했다.  마키아벨리는 ‘정치는 폭력의 경제'라고 말했다.


내가 생각하는 정치는 권력을 어떻게 쓰느냐 가지고 서로가 아웅다웅하는 거와 가깝다.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에서 행해지고 있는 대의 민주주의는 결코 저절로 얻어진 것이 아니다. 세계의 역사 속에서 진화하고 발전해온 결과물이다.


개인주의와 정치혐오의 시대에 어디선가 한 번쯤은 들어본 역사적 인물 30인의 정치철학적 주장들을 살펴보는 것은 나름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 이런 사람이 이런 주장을 했어? 이런 주장들이 오늘날 이런 영향을 주었구나 하고 깨닫는 과정은 즐거웠다.


저자는 ‘우리는 정치에 무관심할 수 있지만, 정치는 우리에게 관심이 있다'라는 말로 정치에 관심을 가질 것을 촉구한다. 코로나 팬데믹과 기후재앙은 우리에게 더 이상 정치적 무관심을 방치해서는 안된다고 경고하는 듯하다.


특히 앞으로 미래에는 ‘소비자가 시민을 대신하고, 관료가 정치인을 대신하면서 시장과 규제기관이 결합한 무언가가 통치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은 약간의 공포감마저 들었다. 자본주의 발전은 시민을 수동적인 소비자로 만들었다.


카를 마르크스는 자본가는 실업을 좋아하고, 경쟁을 싫어한다고 말했다. 실업자가 많아야 임금을 조금만 주어도 되고, 경쟁은 가격을 낮추어 이윤을 좀먹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마르크스를 고맙게 생각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가 경고하지 않았다면 자본주의는 그 탐욕으로 인해 자멸했을지도 모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공직자를 임명하는 방식 중 가장 민주적인 방식은 추첨이라고 말했다. 선거는 결국 가장 뛰어난 인물을 뽑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귀족정 방식이라는 것이다. 어느 일본 기업에서 승진시킬 때 이름 적은 쪽지를 선풍기에 날려 가장 멀리 날아간 사람을 승진시켰다는 에피소드가 생각났는데 중요한 건 이것이 코미디가 아니라 오히려 아무 문제없이 잘 돌아간다는 사실이다. 사실 오늘날의 대의 민주주의는 과두정, 귀족정에 가깝다. 국회의원의 구성이 부자와 엘리트만으로 채워져서는 안 되고 다양해야 한다는 건 분명해 보인다.


정치철학자로서 가장 유명한 마키아벨리는 ‘최악보다는 차악을 고르는 것이 윤리적으로 옳은 선택'이라고 말했다. 이 문제는 지금도 우리가 항상 겪게 되는 딜레마다. 일반적으로 과정이나 의도를 결과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윤리 문제에 있어서는 의도보다 결과가 중요하다고 '철학자와 늑대'라는 책에서 마크 롤랜즈는 말했다. 그 의견에 동감했는데 왜냐면 의도는 욕망이나 본능에 의해 너무나 쉽게 변질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은 미국 중심의 세상인데 그 기반이 되는 사상은 존 로크의 국가는 개인의 사유재산을 지키기 위해 합의한 것이라는 '야경 국가론'이다. 장 자크 루소의 국민이 정치적 합당성의 원천이라는 '국민주권설'은 프랑스혁명의 사상적 토대가 되었고, 칸트는 인간은 동물과는 달리 이성적인 존재이므로 인간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대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인간을 지구에서 가장 높은 위치로 만들었다.


미국 헌법을 주도한 매디슨은 공직을 나누어 놓으면 자기 욕심 때문에 서로 경쟁할 거라는 삼권분립을 만들었고, 신자유주의의 아버지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민주주의 국가더라도 정치적 목적으로 경제에 개입하면 전체주의 국가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런 역사적인 인물들의 정치철학적 주장들이 시민들에게 설득력 있게 힘을 얻으면서 오늘날의 대의 민주주의와 수정 자본주의가 탄생했다. 모두가 평등하게 가난하기보다는 부의 불평등이 사회 최빈층의 안녕을 증진할 때만 동의할 것이라는 하버드대 정치철학 교수 존 롤스의 주장은 일견 합리적이고 타당해 보인다.


정치는 한정된 재화를 어떻게 분배하느냐의 문제라는 작가 채사장의 정의도 생각난다. 아직도 우리나라는 경제 발전이 먼저냐 분배가 먼저냐 가지고 싸우고 있다. 이런 사안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을까? 지금은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 서로를 물고 뜯고만 있는 거 같은데 말이다.


알렉시 드 토크빌은 미국이 민주주의를 이룩한 중요한 핵심이 기독교 가르침보다는 기독교 공동체 참여를 통해 형성된 마음의 습관 때문이라고 말했다.  동의한다. 민주주의는 참여를 통해서만 배울 수 있다. 내 자유를 위해서 남의 자유를 인정하고, 내 권리를 위해서 남의 권리를 인정하며, 남의 의무뿐만이 아니라 나에게도 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걸 깨닫는 건 머리만으론 안된다.


- 이 책은 다산북스 서평이벤트로 받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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