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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청년 Jul 04. 2021

왜 인간만이 자유의지를 말할까?

제5 도살장 - 커트 보니것

이 소설은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일어났던 연합군의 독일 드레스덴 폭격을 다루고 있다. 드레스덴 폭격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전쟁 막바지로 독일의 패망이 이미 기정 사실화된 시점에 민간, 군사시설 가리지 않고 도시 전체를 폭격하여 이 책에 따르면 민간인 포함 13만 명이 죽었다는 점이다.


작가 커트 보니것은 이 전쟁에 참전했다가 독일군에게 포로로 잡혔고 드레스덴 폭격을 직접 겪었다. 일설에 따르면 이때 살아남은 미군 포로 7명 중 하나였다고 한다. 아마 이때 충격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었을 거 같다. 전쟁 후 24년이 지나고 베트남 전쟁으로 반전 시위가 극에 다다르던 1969년에 이 소설이 나왔다.


작가는 소설의 서두에 전쟁 이야기를 재밌게 쓰지 않겠다고 했다. 대부분의 전쟁 이야기는 존 웨인의 서부영화 같은 영웅담이다. 주인공 빌리는 군종사병으로 참전했다가 낙오되어 독일군에게 붙잡혀 드레스덴으로 이송되는 무력한 군인일 뿐이다. 제5 도살장은 원래 가축을 도살하던 5번째 건물인데 전쟁통에 포로들을 수용하게 되었다.


소설에서 빌리는 시간에서 풀려났다고 말한다. 시간에서 풀려났다는 건 시간의 구속에서 풀려났다는 의미 같다. 채사장에 따르면 사람은 현재에 살지 못하고, 과거나 미래에 얽매여 사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여기서는 과거, 현재, 미래를 동시에 바라본다는 초월의 관점인 거 같다.


이 소설에서 시간여행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회상하는 느낌이 강했다. 다만 시간순이 아니라 빌리의 정신상태처럼 왔다 갔다 한다. 빌리는 전쟁통의 폭격 속에서 살아남았고, 비행기 사고에서도 극적으로 살아남았지만 엄청난 정신적 충격으로 과거 속을 헤매며 그것을 정신적으로 극복해 나가는 과정으로 보인다.


빌리는 어느 라디오 방송에 나가 자신이 트랄파마도어 행성의 외계인에게 납치됐었다고 주장한다. 이 행성 사람들은 과거, 현재, 미래를 한 번에 볼 수 있다. 마치 테드 창의 소설 ‘네 인생의 이야기'를 원작으로 한 영화 '컨텍트'의 문어 외계인처럼 말이다. 시간적으로 봐서는 테드 창이 모티브를 이 소설에서 가져왔을 수도 있겠다. 이들이 볼 때는 인간이 말하는 자유의지는 의미가 없으며(왜냐면 과거, 현재, 미래를 이미 다 알고 있으므로), 일어날 일은 일어나기 때문에 좋았던 일만 바라본다고 한다.


이 소설의 시작과 끝이 ‘지지배배뱃’ 으로 같고, ‘뭐 그런 거지'가 반복되는 이유는 트랄파마도어 행성 사람들이 보기에 당연하다. 그들이 보기에 이 세상은 니체가 말했던 영원회귀처럼 끝없이 반복되는 것이고, 그래서 지금 이 순간, 좋았던 순간만이 가장 중요하다.


빌리는 아마 전쟁 속에서, 비행기 사고 속에서 인간의 자유의지라는 것이 얼마나 의미 없는지를 깨달았을 것이다. 이 소설이 반전소설인 이유가 이 지점인 듯하다. 드레스덴 폭격처럼 민간인이 13만 명이나 죽는 일이 일어나게 만드는 전쟁 속에서 인간의 자유의지는 말살된다. 이런 트라우마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트랄파마도어 행성 사람들처럼 외계인이라도 등장시켜 합리화시킬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 그런 합리화를 원하는 건지 묻고 있는 거 같다.


대부분의 전쟁은 자본 또는 종교가 그 이유인 경우가 많다.


자본주의는 가난한 자신을 미워하라고 종용한다. “가난하다는 것은 창피한 일이 아니지만, 차라리 창피한 게 나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위엄을 잃은 가난한 사람들의 무리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서로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똑똑해서 부자가 되고, 모자라서 가난한 사람이 된 줄 알지만 사실은 많은 부분이 운 때문인데, 가난한 사람은 자신을 미워하게 되고 운명이라 여기며, 이런 시스템은 더 고착화된다. 여기에도 자유의지는 없다.


수도사들이 돈을 위해 소년들을 십자군으로 모집해 노예로 팔았다는 얘기는 충격적이었다. 종교와 관련되어 있을 때 사람들은 특히 더 잔인해진다. “기독교인이 그렇게 쉽게 잔인해질 수 있는 이유. 적어도 문제 가운데 일부는 신약의 이야기가 너무 엉성한 탓이라고 결론은 내렸다.”, “그리스도 이야기의 약점은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그리스도가 사실은 우주 최강의 존재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모든 건 신의 뜻인 기독교에도 자유의지는 없다.


이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인 전쟁과 자본주의와 종교에 인간의 자유의지는 없다. 그런데도 이 우주에서 인간만이 자유의지를 말한다. 도대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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