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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청년 Dec 15. 2017

그렌델

존 가드너 - 다시 쓴 베어울프의 전설

그렌델은 고대 영어로 쓰인 최초의 영웅서사시 베어울프를 다시 쓴 작품이다. 존 가드너는 괴물 그렌델을 주인공 삼아 새로운 시점으로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그렌델은 동물이되 동물이 아니며, 인간이되 인간이 아닌, 경계에 있는 자이자, 가장자리를 걷는 자이다.


그렌델은 황소와 싸운 후 부상을 입고 쓰러져 있는데 흐로드가르왕 일행이 발견하고 포위한다.

어미가 그렌델을 구한다. "세상이 나에게 저항해요. 나도 세상에 저항해요" 그렌델이 사람들을 잡아먹기 시작한 건 세상에 대한 반작용이다.


눈먼 하프 연주자이자 시인인 세이퍼는 노래로 세상을 다시 만든다. 그렌델은 그 노래가 모두 거짓인걸 알지만 "세이퍼는 세상을 바꿔놓았고 과거를 그 두껍고도 비틀어진 뿌리까지 송두리째 들어내어 변화시켰다." 노래가 곧 역사고 역사는 노래하는 자에 의해 다시 만들어진다.


인간을 관찰하다 절망과  허무, 외로움을 느낀 그렌델이 용을 찾아 떠난다. 용은 인간에 대해서 이렇게 묘사한다. 

"계산을 하고, 측정을 하고, 이론을 만드는 자"

"하찮은 사실들만 가지고도 여기에서 달까지 왕복하는 일람표를 만들 수도 있어. 고립된 단순한 사실들, 그리고 그것들을 '그리고'와 '그러나'라는 단어로 연결시키는 또 다른 사실들.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본질인 거야"


용은 시간에 대해서 이렇게 얘기한다.

"자연에 대한 다양한 논의들 중에서도 우리는 범위의 차이를 기억해야만 해. 특히 시간이 자아내는 변수에 대해서 말이야."

"일초 동안에 아무 변화가 없다는 사실은 천년 동안의 변화에 대해 아무것도 설명해 주지 못하지."


용은 신에 대해서 이렇게 되묻는다.

"무슨 신이? 어디에 있는 신이? 신이라 함은 생명력을 의미하는 건가? 과정이라는 원칙? 우연의 역사로서의 신?"


용에게 인간은 하찮고, 시간은 무한하고, 신은 의미가 없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의미를 찾으려면

"내가 해주고 싶은 충고는 말이지. 가치 있는 걸 찾아서 그걸 지키라는 거야"


왕의 죽은 동생 아들 흐로돌프와 그를 추종하고 혁명을 꾀하는 늙은이와의 대화에선

혁명과 국가에 대해 이렇게 얘기한다.

"제도와 도덕을 완전히 폐허로 만드는 것은 하나의 창조 행위라 할 수 있습니다. 실로 종교적인 행위인 거지요. 살인과 폭력은 혁명의 생명이자 영혼입니다."

"국가는 폭력 기관이란 말입니다. 합법적 폭력이라 불러주면 반기는 독점적인 폭력 기관이란 말입니다."

반박할 수 없다. 이상적인 혁명도 국가도 아직은 없었다.


늙은 신부(사제)가 그렌델을 신으로 착각하여 대화하는 장면에서 신들의 왕에 대해서 얘기해보라고 하자

"신들의 왕이란 곧 궁극적 한계를 뜻합니다."

"그분의 존재는 궁극적 부조리를 의미합니다."

"신의 본성에 대해서도 그 어떤 이유를 찾을 수 없습니다. 본성 자체가 합리성의 근거이기 때문입니다."

"악의 본성은 두 개의 명제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사물은 사라진다'라는 것이고 하나는 '선택은 불가능하다'라는 것입니다."

그렌델은 늙은 신부를 조롱하며 물어본 것이지만 그는 자기 말에 스스로 감동한다.


다른 사람과 소통하지 못하면 경계에 있는 존재가 된다. 선을 긋고 자기를 다른 사람과 구별한다. 세상에 저항함으로써 의미를 찾는다.


"인간의 마음에서 나온 어떤 행동은 그와 똑같은 반작용을 일으켜야 한다. 그것이 세이퍼의 고귀한 지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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