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독서모임 성장기, 연작 에세이 2편
어릴 때는 책을 좀 읽었다고 생각했다. 그 시절 부모님들은 청계천 서점 골목에서 한국문학전집, 세계문학전집 같은 걸 사는 게 유행이었던 거 같다. 우리 집도 그랬다. 가끔 책을 들쳐보다가 야한 문장이 나오면 화들짝 놀라며 탐독하곤 했다. <15 소년 표류기>, <해저 2만 리> 같은 소설이 기억난다. 하지만 가장 좋아했던 건 <수호지>였다. 양산박에서 108명의 도둑들이 펼지는 무용담이 재밌었고, 나중엔 관군이 되어 공을 세우지만 질투와 모략에 한 명씩 죽는 장면에선 눈물이 났다.
중학교 때는 단짝 친구와 서로 경쟁하듯이 추리소설 모으기를 했다. 셜록홈스, 루팡 같은 책을 거쳐 <애거서 크리스티>에 빠져 빨간색 문고판 50 몇 권인가 전집 모으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나중엔 헌책방에 몽땅 팔아서 쏠쏠했다. 약간 허세도 있었던 거 같다. <데미안>, <소크라테스의 변명> 같은 책을 읽고 잘 이해도 못하면서 우쭐했던 기억이 난다.
대학교 때는 동아리들에서 성경과 사회과학 서적들을 처음 접하게 되었는데 신념과 확신이 있으면 어떤 질문이 와도 답할 수 있다는 걸 느꼈다. 난 선천적으로 의심이 많아서인지 그게 잘 안됐다.
직장인이 되고 결혼을 하고 애를 낳으면서 마음은 있는데 책과 가까워지지 않았다. 한 달에 한 권 읽기도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읽어도 남는 게 없었다. 분명 책은 읽은 거 같은데 주인공 이름이 누구인지 스토리가 어땠는지, 심지어 인상 깊었던 문구도 아무 생각이 안 났다. 읽은 기억과 좋았다 나빴다 하는 인상만 있고 백지와 같았다.
이래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나이 먹고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어떤 모임에 나간다는 건 무척 힘든 일이다. 가기 며칠 전부터 온갖 핑계가 떠오른다. 갑자기 몸이 안 좋고, 책도 안 읽었고, 없던 약속들이 생기고, ‘그래 다음에 가지 뭐’하고 만다.
몇 번의 위기를 넘기고 나면, 가서 분위기나 어떤지 보고 오자고 마음을 다잡는다. 모임 전날이면 설렘과 긴장에 잠도 잘 안 온다.
히즈라네 고양이 카페에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낯선 눈빛들과 친절히 반겨주는 몸짓 속에서 어색하게 앉는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아무 기억이 없다. 다만 무슨 사람들이 이렇게 말을 잘하지, 무슨 책들을 이렇게 많이 읽는 거 같지, 책을 손에 들고 들쳐보지도 않으면서 술술 책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지 놀라웠다.
내가 읽은 책에 대해 얘기하는 데 난 왜 이리 버벅되는지 모르겠다. 몇몇 문장을 생각했는데 단어가 연결이 안 된다. 이럴 바에는 써가서 읽는 게 낫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말 잘하는 사람들을 보니 질문을 던지며 관심을 집중시키고, 여유롭게 자기의 경험을 빗대어 책의 핵심을 흥미롭게, 책이 보고 싶도록 설명하는 거 같았다.
그래 나는 초보다. 독서모임에 처음 와본, 한 달에 책 한 권 읽기도 힘든 초보다. 말 잘못하는 게 당연하다. 일단 책 읽고 인상 깊었던 문구나 감상을 써보자. 그리고 어떻게 하면 잘 설명할 수 있을지 머릿속으로 그려보자.
그래도 사람들이 내가 버벅거릴 때도 잘 들어주는 거 같다. 서투르지만 애쓰는 걸 보듬어 주는 거 같다. 열심히 하다 보면 좀 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었다. 그래 꾸준히 나가보자. 잘 못해도 괜찮다. 나는 초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