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독서모임 성장기, 연작 에세이 3편
독서모임에 가입하고 처음 했던 일은 책을 읽고 온라인에 간단한 감상을 남기는 것이었다. 이것도 나름 의미가 있으나 정기모임 때 책을 잘 소개하는 데는 역부족이라고 느꼈다.
그렇다면 서평을 써보자 생각했으나 막막했다. 초등학교 때 이후로 일기도 독후감도 써본 기억이 없다. 다만 방학 숙제로 일기를 몰아 쓸 때 시집을 베꼈던 기억은 있다.
일단 인상 깊었던 구문이 있는 페이지를 접었다. 책을 다 읽으면 페이지 접힌 곳들을 다시 보며 옮겨적고 문구마다 간단한 코멘트를 적었다. 당시 구로가산 독서모임은 오프라인 중심이어서 그런지 온라인에 글을 올리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서평을 블로그에 올릴까 하다가 당시 새로운 글쓰기 플랫폼이라고 선전하던 브런치라는 서비스를 알게 되었다. 서평을 10개쯤 올렸을 때 우쭐한 마음에 와이프에게 읽어보라고 했더니 대뜸 하는 한마디 '재미없다.'
충격을 받았지만 그래 나는 서평을 다른 사람 재밌으라고 쓰는 게 아니야, 내가 읽은 책을 정리하고, 감상을 남기는 도구일 뿐이라고 스스로 정신 승리했다. 하지만 그 이후에 책 제목을 좀 그럴싸하게 바꿔도 보고, 서두에 내 이야기도 집어넣어 보고, 문구에 대한 코멘트 위주에서 내 생각 위주로 이런저런 시도를 하고 있는 나를 본다. '고맙다. 와이프.'
기억력의 한계로 어느 문구 때문에 이 페이지를 접었는지 생각 안 날 때가 있다. 뭐였지 이리저리 넘기다 보면 다른 페이지를 적을 때도 있다. '제길' 지금은 페이지를 접지 않고 포스트잇지를 붙인다. 내 기억은 언제나 나를 배신한다.
이런 저질의 기억력은 때론 도움이 된다. 책을 읽은 지 시간이 좀 흐른 후에 서평을 쓰다 보니, 마치 새로운 책을 읽는 듯한 기분이고, 책을 두 번 읽은 듯한 느낌이 들어 왠지 뿌듯하다. 가끔 누가 뒤늦게 브런치에 좋아요를 눌러주면 다시 보는데 그럴 때마다 새롭다.
서평을 쓰면서 재미를 느끼는 것은 완성본이 아닌 미완의 초본들이다. 구글 문서에 인상 깊은 문구들을 적고 나면 그 밑에 코멘트를 다는데 떠오르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양심의 검열을 거치지 않고 쏟아낸다. 괜히 작가에게 딴지 거는 이때가 비로소 생각을 하고, 사유 비슷한 걸 하는 느낌이 든다. 이런 질문들에 대해 내 나름의 답을 해나가는 과정이 즐겁다.
초본은 재밌지만 그게 서평이 되지는 않는다. 일단 첫 문장을 써야 하는데 그게 어렵다. 그럴 땐 작가가 이 책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이나 핵심이 무언지 몇 줄로 정리해본다. 물론 그래도 못 쓰는 경우가 있지만 그렇게 정리하다 보면 풀리는 경우가 많다.
이런 과정들을 거치다 보니 서평 하나 쓰는데 2주 정도의 주말 오전 시간을 보낸다. 그래서 써야 하는 서평이 많이 밀려 있다. 한 달 전쯤에 읽은 책들을 지금 쓰는 거 같다. 그러면 어떤가, 안 써지면 안 써진 대로 꾸준히만 쓰면 되지 않나. 서평은 바로 쓰는 거보다 좀 묵혔다가 쓰는 게 좋은 거 같다. 생각이라는 것은 바로 쏟아내는 것보다 숙성시켜야 맛이 난다.
아쉬움은 쓰는 만큼 실천이 안 따른다는 점이다. 가끔 아들이 ‘책만 많이 읽으면 뭐해’라고 내뱉는 말에 가슴이 찔린다. 항상 고민이다. 유시민의 ‘청춘의 독서’에서 약간의 위로를 얻었다. "알면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보이나니, 그때에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