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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청년 Jan 30. 2022

사람이 사람을 기억하는 일

밝은 밤 - 최은영

이 소설은 외할머니에게 듣는 증조모에 관한 얘기다. 증조모, 외할머니, 엄마, 딸로 이어지는 4대에 걸친 여성의 이야기다.


증조모는 개성에서 백정의 딸로 태어나 차별과 설움을 딛고 6.25 전쟁을 겪으며 새비 아줌마와 평생에 걸친 우정을 쌓는다. 외할머니는 결혼에 실패하고, 딸과의 연도 끊긴 채 강원도 희령에서 외롭게 홀로 산다. 엄마는 남편의 무심함과 구속에 자유를 꿈꾸지만 암에 걸렸다. 딸은 남편의 불륜 때문에 이혼하고 희령에 있는 연구소로 자원해서 내려온다.


주인공이 희령에서 외할머니를 우연히 만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전작 ‘쇼코의 미소'에서는 별다른 이유도 없이 멀어지는 관계에 대해 말했다면, ‘내게 무해한 사람'에서는 사람 사이의 관계 속에서 고통받지 않기 위해 적당히 거리를 두는 사람들에 대해 말했다.


첫 장편 소설인 ‘밝은 밤'에서는 ‘사람이 사람을 기억하는 일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묻고 있다. 아니 그게 관계 회복의 출발점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외할머니와 엄마는 왜 모녀의 연을 끊었을까? 소설 속에서 자세히 묘사하고 있지는 않지만 외할머니 남편과의 관계 때문인 거 같다. 북한에 본처가 있다는 사실을 숨기고 결혼해서 애까지 낳았는데 본처가 남한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떠나버린다. 남편과의 트라우마가 외할머니를 모질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외할머니는 증조모 얘기를 왜 주인공 지연한테 했을까? 아마도 증조모와 새비 아주머니의 우정 속에 아픔과 고통을 견뎌 낼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걸 이혼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지연한테 말해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자신이 살아온 배경을 손녀에게 이야기해 줌으로써 연이 끊긴 딸과의 관계 회복을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왜 사람은 너무 잘해주는 사람에게 막 대할까? 너무 편해서 아무리 내가 막 말해도 다 받아주니까, 불편한 사람에게는 그렇게 못하면서 편한 사람이니 선을 넘어도 되는 게 아닌데, 우리의 미성숙함이 거리를 만드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자기가 말하면 무조건 달려와 주는 친구를 원하면서도, 너무 가까워서 나를 귀찮게 하는 친구는 또 왜 싫을까? 멀면 외롭고, 가까우면 귀찮고, 자기가 필요할 때만 친구를 원하는 사람은 얼마나 이중적인가? 친구와의 적당한 거리는 어디까지 일까? 분명한 건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해야 거리가 가까워진다.


가까워진 거리만큼 상처주고 멀어지고 다시 회복하기까지는 너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어떤 때는 상대가 죽고 나서야 후회한다.


앞으로 남은 인생은 헤어짐의 연속이라는 말이 마음을 후벼 팠다. 저번 달에만 장례식이 4건이나 있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잘 헤어지는 것일까? 어쩔 수 없으니 무덤덤하게 그냥 받아들이면 되는 것인가? 아니면 마음 가는 대로 슬퍼하면 위로가 될까? 헤어짐을 미리 준비하는 게 좋을까? 미리 준비하는 게 가능하기는 할까? 누군가 ‘계획은 하되 걱정하지 말라’는 말이 생각난다. 걱정만 하는 건 아무 소용없다.


이상한 일이야. 누군가에게는 아픈 상처를 준 사람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정말 좋은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게.” 내가 그렇게 미워하던 사람도 누군가에게는 좋은 사람일 수 있다고 생각하면, 또 모든 것이 달라 보인다. 그러니 너무 많은 시간이 흐르기 전에 최대한 빨리 이야기하자.


사람이 사람을 기억하는 일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내가 기억하는 동안은 의미가 있겠지만, 내가 죽고 나면 아무 소용이 없다. 내가 기억하는 사람에 대해 얘기하면, 누군가에게 또 전해지면, 그때 의미가 지속된다. 외할머니가 증조모 이야기를 손녀에게 했을 때, 그때 어떤 소용이 생긴다. 그렇게 가족을 통해 친구를 통해 전해질 만한 이야기를 나는 살아내고 있을까?


제목 ‘밝은 밤’은 어두운 밤일수록 작은 불빛 하나도 밝게 느껴지는 걸 의미하는 건 아닐까? 우리 모두에게는 긴 어둠을 헤쳐나갈 작은 불빛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 또 내가 그런 불빛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런 삶이 이야기로 전해질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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