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푸른청년 May 14. 2022

말하고 듣는 인간에게

책, 이게 뭐라고 - 읽고 쓰는 인간 장강명 지음

이 책은 말하는데 스스로 서툴다고 생각한 작가 장강명이 책 관련 팟캐스트를 가수 요조와 함께 진행하면서 겪은 일들을 바탕으로, 읽고 쓰는 인간에 대한 에세이다.


작가에 따르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 읽고 쓰는 인간과 말하고 듣는 인간이다.


글은 기록으로 남기 때문에 읽고 쓰는 인간은 일관성을 중시한다. 그로 인해 약간 무겁고, 쌀쌀맞은 진지충이 된다고 한다. 그럴듯하다.


말은 상황에 좌우되기 때문에 듣고 말하는 인간은 맥락과 교감에 주의를 기울인다. 그로 인해 다정하고 매력적인 인간이 된다고 한다. 부럽다.


장강명은 이 두 인간을 가르는 중요한 선이 ‘시간을 견디는 것이 무엇이 중요한가?’라는 질문이라고 말하는데, 이런 큰 의미를 따지는 사람은 별로 없고 내 생각엔 그냥 취향 차이다. 물론 내 글이 시간을 견디고 살아남는다면 정말 좋겠지만 그건 셀럽들에게나 해당되는 얘기 아닐까.


그런데 이렇게 의미를 묻고 따지는 게 ‘읽고 쓰는 인간’들의 운명 같은 거라고 말할 때는 빵 터졌다. 그래서 내가 그랬나?


우리가 의미를 따지는 이유는 가치관이라던지 세계관이라는 것과 관련이 깊다. 작가는 가치가 모여 시스템을 만들고, 우리는 이 시스템을 내면화한 존재들이라면 이 시스템을 제외하고 우리 내면에 남는 것은 무엇인지 묻는다. 아마 그것이 내 ‘자아’이고 ‘의식’이고 ‘자유의지’ 일지 모른다.


말하고 듣는 인간과 읽고 쓰는 인간을 예의와 윤리의 다른 점으로 설명하는 부분은 귀에 쏙 들어올 만큼 탁월했다.


예의는 맥락에 좌우되며 상대적이고, 윤리는 보편성과 일관성을 지향한다. 예의는 감성의 영역에 있으며, 보편적이지 않다. 팟캐스트 진행자로서 예의가, 정직한 서평이라는 윤리에 앞선다고 판단하는 것에 동감한다.


실생활에서는 윤리보다 예의가 앞선다. 글보다 말이 먼저다. 말에는 예의가 있어야 하고, 글에는 윤리가 있어야 한다.


왜 읽고 쓰는가?라는 질문에 작가는 방송용 대답은 ‘타인과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이고 솔직한 마음은 ‘재밌으니까’, ‘그러지 않을 수가 없으니까’라고 말한다.


작가는 에세이를 쓰면 치유되는 느낌이지만, 소설을 쓸 때는 세계에 맞서는 느낌이라고 말한다. 작가의 사명은 세상과 불화하는 데 있고, 시비를 거는 데 있다고 말한다. 자신을 감당할 수 있겠냐고, 이 존재가 무슨 의미인지 맞혀보라고 묻는 것이 고전의 힘이라고 말한다.


이런 면에서 작가는 조지 오웰을 존경하는데 오웰은 ‘누가’보다 ‘어떻게’를 향했고, 작가라면 진영논리에 빠져 실체를 보지 못하거나 보고도 눈 감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작가가 생각하는 독서는 무조건적인 지지, 열광, 숭배의 정반대에 있는 행위이고 책이란 비판, 숙고, 성찰의 도구라고 말한다. 이렇게 말하면 ‘재미’랑은 너무 동떨어져 무거워 보이는데 책은 읽을수록 내 신념을 해체하고, 믿음을 되돌아보게 하는 점이 재미라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독서와 책은 생각의 도구다. ‘남의 생각’인 책을 토대로 ‘나의 생각’을 하게 되고,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관점을 넓히게 된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좋은 말은 숙성된 생각에서 나오고, 숙성된 생각은 좋은 글을 읽고, 자기 생각을 쓰는 것에서 나오는 거면 좋겠다.


다시 말해서 좋은  하고 잘 듣 위해서,  읽고 좋은  쓰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사랑한다면 비난을 멈춰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