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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청년 Apr 17. 2022

사랑한다면 비난을 멈춰라

밤으로의 긴 여로 - 유진 오닐

작가 유진 오닐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하는데 가족 간의 서로에 대한 비난이 너무 신랄해서 불편할 정도다.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유명한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라는 첫 문장이 생각났다. 서로에 대한 비난은 더 큰 상처를 낳는다.


많이 접해보지 못한 희곡이라 더 낯설다. 4막으로 이루어진 하룻밤 사이의 일인데 이들의 지나온 인생이 모두 담겨있다.


아버지 티론은 무능력한 아들 제이미를 비난한다. 둘째 아들 에드먼드를 물들였고, 유진을 죽게 했고, 결국 엄마 메리가 마약에 빠진 것도 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큰 아들 제이미는 아버지를 땅 사는 것만 관심 있는 구두쇠라고 비난하고, 엄마가 약 하는 것을 비난하고, 에드먼드에게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열등감 때문에 깎아내린다.


엄마 메리는 티론이 사람을 좋아하지 않아 외롭고, 티론이 자기를 불러 유진을 나두고 가서 결국 죽게 되었다고 티론을 원망한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막장 드라마인가 생각했는데, 겉으로 말은 안 했지만 ‘이런 비슷한 생각들을 한 적이 있었지’라는 자책감과  ‘나는 이 정도까지는 아니야’라는 안도감이 교차해서 불편했던 거 같다.


엄마 메리는 ‘사람은 운명을 거역할 수 없다’고 말한다. 사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하지 못한 것을 운명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은 편하다. 하지만 이 때문에 진정한 자신을 잃고 만다는 건 다른 문제다. 운명이 있다면 그게 곧 자신이다.


메리는 또 이렇게 말한다. ‘과거는 바로 현재고 미래다. 우리는 그게 아니라고 하면서 애써 빠져나가려고 하지만 인생은 그걸 용납하지 않는다.’ 아마도 과거의 행동들이 쌓여서 현재를 낳고, 현재의 행동들이 쌓여서 미래를 만들기 때문에 운명을 거역할 수 없다고 말한 거 아닐까?


지금 발생하고 있는 문제는 어느 날 갑자기 발생한 게 아니라 과거에 한 나의 행동 때문이다. 이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면 미래도 마찬가지다. 이 사슬을 끊는 유일한 방법은 지금 잘 행동하는 수밖에 없다. 지금 바로 가족에 대한 비난을 멈추고, 서로를 이해하고 소통하는 수밖에 없다. 과거에 얽매여 있으면 미래도 마찬가지다.


‘청소년을 위한 비폭력 대화’라는 책에서 김미경 작가는 ‘사실을 말해도 비난은 하지 말라’고 한다. 뚱뚱한 아이가 떡볶이를 많이 먹는다고 해서 ‘그렇게 많이 먹으니까 뚱뚱하지’라고 말하지 말고, 그냥 ‘떡볶이를 많이 먹네’라고 말하라고 한다. 어려운 일이다.


가족이니까 남보다 더 미리 판단하고 비난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동안 얼마나 많이 내 아이들에게, 내 가족에게 그렇게 말했는지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둘째 아들 에드먼드는 ‘짙은 안개 속에 숨어 그곳에서 헤맨다. 고의적으로요. 그게 사람을 죽이죠. 고의적으로 그런다는 건 우리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가서 우리한테서 벗어나, 우리가 살아 있다는 걸 잊으려는 거죠. 그러니까 마치, 우리를 사랑하지만 동시에 증오하는 것처럼요.’라고 말한다.


서로 비난하면, 자기만의 벽을 치고, 각자가 안개속을 헤매게 된다. 그것도 고의적으로. 바로 그 점이 사람을 죽고 싶을 만큼 괴롭게 한다. 가족이니까 남보다 더 비난한다는 건 변명이다. 그건 남보다 못한 가족이다.


사람이니까 사랑하지만 동시에 증오할 수 있다. 엄마 메리는 ‘당신이  여전히 날 사랑하고 있다는 거 알아요. 그 모든 일들에도 불구하고 나도 당신을 사랑해요. 그 모든 일들에도 불구하고’라고 말한다. 이 말이 이 가족의 유일한 희망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한다면 지금 바로 비난을 멈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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