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푸른청년 Jun 12. 2022

우리는 대체로 대부분 별로다

버티는 삶에 관하여 - 허지웅 에세이

이혼한 엄마와 단 둘이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 살아온 허지웅, 돈 문제 때문에 친척들에게 모욕을 당해도 참을 수밖에 없었고, 교수이면서도 자식을 외면한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체념이 그의 성장 배경임을 이 에세이를 통해 알았다.


그는 사람이 자기혐오로도 살 수 있고, 자긴 냉소적인 사람이라고 말하며, 타인이 진심이라고 주장하는 말들을 무시한다고 당당히 말한다. 그는 냉소로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한 것처럼 보인다.


그가 이 에세이에서 가장 혐오하는 건 불관용과 진영논리인 것 같다. 불관용은 자신을 지나치게 긍정하는 데서 출발한다고 말하는데, 진영논리는 자신이 지지하는 그룹을 지나치게 긍정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그는 우리는 대체로 대부분 별로인데 왜 그렇게 자기를 대단한 것처럼 생각하는지 묻는다.


그가 생각하는 좋은 사람이란 자신에게 필요한 것과 필요하지 않은 것을 구분할 줄 알고, 인간관계의 정치를 위해 신뢰를 가장하지 않고, 진영논리에 함몰되지 않아서 천박한 것을 천박하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라고 말한다. 쿨해 보인다.


진영 논리의 양 극단에 있는 사람들은 서로를 절대악으로 상정하고, 그것으로 연명하며 서로 협업하는 사이라고 비판한다. 다수의 사람들이 이들 밥벌이에 놀아나고 있는 꼴이다.


한국에서 사회생활 잘하는 사람이란 병적인 위계질서에 잘 적응한 사람을 말한다. 이런 사람을 길러내고 교육하는 곳이 군대라고 말한다. 특히 남자들은 자기 몸과 정신에 체화되어 있다. 권위에 복종하는 것이 좋은 것이고, 모난 돌은 나쁜 것이다. 꼰대라는 말로 희화화됐지만 권위에 대한 욕망이 사라진 건 아니다.


우리나라를 무한경쟁으로 몰아가고 있는 승자독식의 법칙이 온 사회에 퍼져있다고 말한다. 선거판이 대표적이다. 1%만 이겨도 모든 것을 가져간다. 2등은 소용없다. 51%의 지지를 받았다면 51%만 가져가야 합리적인 것 아닌가?


그런데도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나? 허지웅은 사람들이 자신의 계급적 정체성에 따라 투표하지 않고 가치관에 따라 투표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부자를 좋아하고, 부자의 가치를 좋아한다. 그리고 부자의 권위를 좋아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계급을 의식하지 못하고, 계급에 대해 말하면 빨갱이라는 본능적인 거부감을 보이고 있지만 이미 자본가 계급은 넘사벽이다. 더구나 아름다움과 부가 결합하는 현상도 보인다고 말한다. 이미 재벌들끼리의 혈연관계는 촘촘하다. 그들의 계급적 정체성은 어쩌면 확고한지도 모른다. 그런데 우리는?


연예인들에 대한 대중과 언론의 무차별적인 언어폭력에 대해 강력히 비판한다. 실체가 불분명한 대중이라는 집단은 유리 멘털의 근본주의자들이고, 대중과 공생하는 언론이 가십 화하고, 충동적 심판질을 조장하는 가장 악랄한 집단이라고 말한다.


작가에 따르면 언론은 사회에 위해한 집단이다. 뤼트허르 브레흐만의 ‘휴먼카인드’라는 책에서도 언론이 인간을 이기적으로 만드는 주범이다. 가장 많이 진영논리에 빠져있는 언론이 아닌 척하는 게 더 문제다. 그러니 역설적으로 사회를 위해서 가장 먼저 할 일이 언론을 개혁하는 일이다.


평소 나는 행복과 불행은 관계 속에서 온다고 주장했는데 허지웅은 ‘너와 나의 관계가 주는 만족감의 뿌리가 정말 이 관계로부터 오고 있는 것인가? 그냥 역할에 충실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라고 질문한다. 관계라는 것은 까딱하면 권력관계가 되기 쉽다. 역할이라는 것은 권력관계의 다른 이름인지도 모른다. 권력관계에서는 위에 있는 사람만 만족스럽다.


누가 그랬다. 삶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라고, 허지웅은 삶은 버티는 것이라고 말한다. 버티어 내는 것만이 유일하게 선택 가능하되 가장 어려운 길이라고 말한다. 많이 동감하고 위로 받았다. 우리는 대체로 대부분 별로다. 그러니 세상사에 맞서 버티어내는 것만 해도 훌륭하다. 지금까지 잘 살아왔다. 앞으로도 그렇게 잘 버티며 잘 살아주길 진심으로 바란다.

작가의 이전글 인간은 이기적이라는 노시보 효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