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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청년 박재관 Mar 25. 2023

이것은 동시에 저것이고, 저것은 동시에 이것이다

장자 - 오강남

캐나다 대학에서 종교학을 연구하는 오강남 교수의 장자 해설서이다. 그래서인지 기독교와 서양사상의 관점에서 장자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기존 장자에 대한 인상은 ‘조삼모사’나 ‘호접지몽’ 같은 우화와 아무것도 하지 말고 유유자적하는 삶이라고 생각되는 ‘무위사상' 정도였다.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장자의 사상은 한마디로 ‘이것은 동시에 저것이고, 저것은 동시에 이것이다'로 압축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양자역학을 처음 접했을 때 느낌과 비슷하고 말장난 같기도 하다.


“삶이 있기에 죽음이 있고, 죽음이 있기에 삶이 있다. 됨이 있기에 안 됨이 있고, 안 됨이 있기에 됨이 있다. 옳음이 있기에 그름이 있고, 그름이 있기에 옳음이 있다.”


지금까지는 양과 음, 선과 악, 삶과 죽음 사이 중간 어디쯤에서 왔다 갔다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장자는 실은 이 둘이 한 몸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인간의 관점에선 이것과 저것은 다르고, 옳은 것이 있으면 그른 것이 있다. 하지만 하늘의 관점에서 보면 이것이 저것이고, 이것에도 옳고 그른 것이 있고, 저것에도 옳고 그름이 있다고 한다.


우리는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이해하고 분리하여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게 이해하기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상은 분리되어 있지 않고 혼재되어 있다. 알지만 그렇게 보지 못한다.


그 이유는 세상 속에서 내 관점으로 볼 수밖에 없어서다. 그러나 전체를 보려면 그 바깥에서 봐야 한다. 내 눈으로 보지 말고, 우주의 원리(하늘의 빛)에 비추어 봐야 한다고 말한다.


이 하늘의 관점이 바로 ‘도'이고, 이 하늘의 빛에 비추어 보아야 상대적 대립관계의 경계를 넘어설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 우리는 이제 우주의 원리(도)만 깨우치면 된다. ㅎ


도를 깨우치려면 ‘심재’(心齋) 마음을 비우고, ‘좌망’(坐忘) 명상하듯이 앉아서 내 눈과 귀를 잊고 내 몸을 잊으면, 오상아(吾喪我) 나를 잃어버리는 상태가 되면서 도와 연결될 수 있다고 말한다. 나를 비우고 잊는 것 그게 도의 시작이다.


도를 깨우치면 모든 것을 억지로 하거나 꾸며서 하지 않고, 순리대로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무위의 상태가 된다. 유위는 인간의 원리이고 무위는 자연의 원리라고 보면된다.


“승물유심(乘物遊心) 마음이 사물의 흐름을 타고 자유롭게 노닐도록 하십시오. 탁부득이(託不得已) 양중(養中) 부득이한 일은 그대로 맡겨 두고, 중심을 기르는 데 전념하십시오. 이것이 최고입니다.”


"도의 사람은 양행 하는 사람, 양쪽을 한꺼번에 보는 사람이고, 이것이냐 저것이냐로 가르는 사람이 아니라 이것도 저것도 감싸 안는 사람. 따라서 어느 한쪽으로 딱 부러지는 해답을 제시할 수가 없어 자연히 우물쭈물, 글쎄요를 되풀이하는 모호한 태도를 보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잘 생각해 보자 우리는 속지 말아야 한다. 도를 깨우친 사람은 답답해 보이고 우물쭈물 우유부단해 보인다. 딱 부러지게 답하는 사람, 단정지어 말하는 사람은 가짜다. 내가 도를 깨우쳤다고, 도란 무엇이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면 그것도 가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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