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푸른청년 박재관 Apr 02. 2023

지금 네가 절대 진짜 너일 리가 없다

랩걸 - 호프 자런

랩걸은 여성 식물학자의 고군분투 일대기라 말할 수 있다.


이 책에선 어떻게 석사 박사를 거쳐 교수가 되고, 어떻게 해야 연구비를 받으며 연구를 지속할 수 있는지에 대한 미국 시스템을 엿볼 수 있다.


이 책에선 식물에 대한 사랑과 과학이란 이런 것이고, 여성 과학자가 받는 차별 같은 소재가 곁들여져 있다. 하지만 내가 주목한 것은 주인공 옆에서 평생을 독신으로 살며 헌신하는 빌이라는 한 남자의 지고지순한 사랑이다.


“살아 있지 않은 무기물에서 당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우주에서 식물이 유일하다. 뇌에 포도당을 계속적으로 공급하지 못하면 우리는 죽는다.”

주인공이 식물을 연구하게 된 이유 같다. 어찌 보면 식물은 우주에서 가장 중요하다.


“모든 팽나무의 씨를 강화하는 광물질이 바로 오팔이라는 확실한 지식은, 누군가에게 전화하기 전까지는 나만 알고 있는 진실이었다.”

과학 연구라는 것은 인간 최초로 어떤 것을 밝히는 것이고, 그것이 주는 자부심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잘 들어. 어차피 학생들하고 친구가 될 수는 없어. 그러니 그런 희망은 지금 당장 버려”

“같이 일하는 사람들하고는 절대 친구가 될 수 없다는 건 알지?”

학생들과의 관계, 동료들과의 관계가 어려울 때마다 빌은 호프에게 현실을 자각시켜 준다. 우리가 힘든 이유는 친구가 될 수 없는 관계에서도 친구처럼 지내기를 바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자식도 마찬가지다. 친구가 될 수 없는데 친구 같은 관계를 바라면 안 된다.


“이제는 좋은 날이라는 것이 죽지 않고 살아서 지나가는 것으로 기준이 바뀌었다”

이 책에서 말하는 가장 핵심 같다. 좋은 날이라는 것은 엄청나게 기쁜 어떤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 그 자체가 좋은 날인지도 모른다.


그럴 수 있는 원동력은 믿음이다.

“우리는 일을 멈추지 않았고, 문을 두드리는 것도 멈추지 않았고, 언젠가는 그 문들이 열리기 시작할 수밖에 없다고 믿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사랑과 공부는 한순간도 절대 낭비가 아니라는 점에서 비슷하다


성차별은 이런 믿음을 자꾸 의심하게 만든다.

“성차별은 굉장히 단순하다. 지금 네가 절대 진짜 너일 리가 없다는 말을 끊임없이 듣고, 그 경험이 축적되어 나를 짓누르는 무거운 짐이 되는 것이 바로 성차별이다.”


큰 좌절에 대처하는 두 가지 방법에 대해서 이렇게 말해준다.

“하나는 잠시 멈추고, 숨을 크게 쉰 다음, 마음을 가다듬고 집에 가서 그날 저녁은 다른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낸 후 날이 밝으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즉시 그 문제에 다시 몸을 던져 머리를 물속에 집어넣고 바닥까지 다이빙을 해서 그 전날보다 한 시간 더 일하면서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찾아내기 위해 애를 쓰는 것이다.”

“첫 번째 방법이 적절함에 이를 수 있는 길이라면, 두 번째 방법은 중요한 발견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결국 두 방법 다 다시 하는 것이다. 좀 쉬었다. 다시 하느냐. 바로 다시 하느냐


자기가 원래 되어야 하는 것이 되는 데는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린단다.

위 말은 위로가 된다. 진짜 자기가 되어야 하는 것이 되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니, 될 때까지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다시 하는 수밖에 없다.


“마지 피어시(미국의 소설가 페미니스트)가 말했듯 삶과 사랑은 버터와 같아서, 둘 다 보존이 되질 않기 때문에 날마다 새로 만들어야 한다.

반복되는 삶과 사랑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남들의 충고를 너무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도 없다.


“나는 동료들의 충고를 듣지 않고, 나도 그들에게 충고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다음 두 문장을 되뇐다. 이 일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해야만 할 때를 빼고.

작가가 터득한 인생 비법들이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그건 작가 혼자 온전히 이룩한 것이 아니다.


주인공이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옆에서 조용히 궂은일을 도맡아 하며 별 대가도 없이 평생동안 곁을 지킨 빌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주인공은 없었다. 빌은 지금의 호프가 자기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게 해 준 밑바탕이자 뼈를 갈아 넣은 희생과 무조건적인 사랑의 표상 같았다. 나만 그렇게 느꼈을까?


어떻게 보면 호프의 성공기가 아니라 빌의 희생기 같았다. 이런!

작가의 이전글 이것은 동시에 저것이고, 저것은 동시에 이것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