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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청년 박재관 Apr 09. 2023

청년은 청춘을 빼앗기고, 노인은 청춘을 강요받는다

세대 게임, ‘세대 프레임’을 넘어서 - 전상진 지음

아직도 빨갱이냐 태극기부대냐로 싸우는 이념전쟁이 한창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싸가지 없는 어린것들과 꼰대 같은 노인네로 싸우는 세대전쟁도 만만치 않다. 거기에 김치녀와 한남까지 대한민국은 여기저기 아우성이다. 왜 이 모양일까?


“통상 음모론은 쿠이보노, 즉 이익을 본 자가 범인이라는 원칙을 따른다. 어떤 세대가 이익을 보고 다른 세대가 손해를 입었다면, 전자는 가해자고 후자는 피해자다.” 세대전쟁을 하면 누가 이익을 볼까 노인들일까? 청년들일까? 아니면 그걸 부추기는 누군가일까? 그걸 깨달을 때 프레임을 넘어설 수 있다고 말한다.


“세대는 차이를 만들거나 유사성을 찾는 데 유용한 정체성의 근거이자 도구다.”

쉽고 빠르게 우리 편과 상대편을 갈라내어, 지지자를 만들거나 책임을 전가할 대상을 내세울 수 있는 도구라고 말한다. 여기서 핵심은 ‘도구'이다. 어떤 목적을 위해 누군가 세대 프레임을 씌우고, 우리는 그 안에서 허우적 거린다.


“세대는 ‘나이'와 ‘경험'으로 만들어진다.” 이 추상적인 기준이야 말로 거의 모든 것을 지칭하지만 아무것도 지칭하지 않는 마술을 보여주며 정치인과 대중매체에 인기가 높은 이유라고 말한다. 정치적 의도를 가진 자에게 자기 입맛대로 취사 선택할 수 있다니 이 얼마나 놀라운 마술인가?


“청년은 청춘을 빼앗기고 노인은 청춘을 강요받는다.” 노인을 혐오하고 청춘을 찬양하는 것은 결국 적극적인 상품 소비를 통해서 매력을 유지하라는 자본주의의 명령이라고 말한다. 세대라는 프레임 하나로 정치적 목적에다 경제적 목적까지 더해 써먹을 수 있다.


“청년의 절망과 고통의 원인을 ‘고임금, 정규직 기성세대’의 ‘기득권’에서 찾는다.” 이렇게 청년문제를 기성세대의 책임으로 돌리게 되면 기업들은 책임에서 해방되고 오히려 정규직 기득권 노동자들에게 높은 임금을 부담해야 하는 피해자로 둔갑한다고 말한다. 이 얼마나 기업입장에선 신박한 책임회피 방법인가?


‘쌀 국가 재난'에서 이철승은 사회악으로 대기업 귀족 노조와 기성세대 즉 기득권을 꼽았다. 진짜 사회악은 과연 이들이 맞을까?


결국 세대게임(전쟁)은 책임회피를 위해, 정치적 경제적 이득을 위해, 갈라치고 혐오를 조장하는 누군가의 프레임이라고 작가는 주장하고 있다.


편을 가르고, 어느 한편에 서서 다른 편을 이상한 부류로 간주함으로 당혹감과 불편함을 감소시키는 것은 인간에게 내장된 심리사회적인 방어기제고, 이를 심리학자들은 ‘인지부조화'라고 말한다. 이를 깨기 위해서는 정보편식과 사람편식을 하면 안 된다고 말한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자기랑 맞는 사람만 만나고 싶은 것은 사람이라면 당연한 일인데, 편식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어쩌면 본능에 어긋난다. 평범한 사람이 가능한 방법은 너무 매몰되지 말고, 여지를 남겨두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제발 서로를 너무 미워하지 말고, 너무 심한 상처는 주지 않도록 조심하자.


그리고 우리를 나누고 갈라치기 하는 것에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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