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로드(THE ROAD) - 코맥 매카시
지옥이 있다면 코맥 매카시가 이 책에서 그려낸 세상과 비슷하지 않을까?
알 수 없는 이유로 세상에는 동물도 식물도 물도 없다. 몇몇 살아 있는 사람들은 서로를 약탈하고 잡아먹는다.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를 의지하며 남쪽 바닷가로 수많은 고난을 헤쳐 나가며 걸어간다. 하지만 그곳에 왜 가야 하는지, 그곳에 가면 무엇이 있는지 알 수없다.
아무 희망도 보이지 않는 암울한 디스토피아 세상 속에서 작가가 말하고 싶은 메시지는 뭘까?
신은 없다.
처음 세상의 종말이 다가왔을 때는 오히려 신을 찾는 사람이 많아졌을 거다. 대게 사람들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이 닥치면 처음엔 부정하고 외면하다가, 조금씩 받아들이게 되면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신에게 기댄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신도 믿지 못한다.
“열렬하게 신을 말하던 사람들이 이 길에는 이제 없다. 그들은 사라졌고 나는 남았다.”
와이프는 자살했다.
아이까지 있는데, 사랑하는 남편도 있는데, 사람들은 미래에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자살할까? 아니면 가장 극적인 자유의지나 자존심의 표현일까? 도스토예프스키는 ‘악령’이라는 작품에서 스스로 신이 되기 위한 방법으로서 자살을 얘기한다. 희망 없이 열심히 살 수는 없는 걸까? 꼭 희망이 있어야만 극한 상황을 견딜 수 있는 걸까?
“나한테는 새 애인이 생겼어. 그 애인은 당신이 주지 못하는 걸 줘.”
“죽음은 애인이 아냐"
“나한테 유일한 희망은 영원한 무야.”
작가는 이 책에서 우리에게 허무주의에 빠지지 않는 방법을 알려주려고 하는 것 같았다.
유령이라도 만들어라.
아내는 남편에게 자기는 죽으면서 옆에 유령이라도 만들라고 조언한다. 그래서 처음엔 아이가 유령인 줄 알았다. 사람에게는 자신의 사랑을 쏟을 다른 사람이 필요하다.
“옆에 아무도 없는 사람은 유령 같은 거라도 대충 만들어서 데리고 다니는 게 좋아. 거기 숨을 불어넣어 살려내서 사랑의 말로 다독이면서 끌고 다녀.”
남쪽으로 가라.
아무런 목적과 방향 없이 헤매다가는 죽기 딱 좋다. 눈앞에 목표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 목표를 달성하면 다시 다른 목표를 바로 만들어야 한다. 쉴틈을 주면 안 된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들에게 불을 운반하라는 임무를 준거 같다.
머물지 마라.
위기의 순간 충분한 식량과 물이 있는 벙커를 발견했는데 거기에 오래 머물지 않고 떠난다. 왜 그냥 그곳에 머물지 않지? 최소한 거의 음식이 떨어질 때까지는 있어야 하지 않나? 바깥에서 새로운 음식을 찾기가 더 힘든 것 아닌가? 하지만 머무는 순간 나태해지고, 안주하게 된다. 그러면 더 위험하다고 작가는 말하고 싶은 것 같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남쪽 바다에 다다르지만 아버지는 죽고, 아들은 새로운 가족을 만난다. 이 엔딩에서 많은 사람들은 희망을 보고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난 그들에게 펼쳐질 또 다른 지옥을 보았다. 작가는 허무주의에 빠지지 않는 방법으로 희망을 말했을지도 모르지만 희망은 양날의 검일 수 있다. 현실을 극복하게 도와줄 수도 있지만 악화시킬 수도 있다. 사이비 종교나 다단계에 빠져 현실을 외면하는 많은 사람들을 보면 그렇다.
인생은 죽음이라는 정해진 종착지로 걸어가는 여정이지만, 사람은 그 안에서 꼭 어떤 의미를 찾고 싶고, 멋지게 후회 없는 삶을 살다가, 편안하게 사랑하는 사람 품에서 죽고 싶게 마련이다. 하지만 진실은 인생에 별다른 의미는 없고, 죽음은 그다지 아름답지 않을 수 있는 확률이 훨씬 높다.
진실이 그렇다 하더라도 꼭 허무주의에 빠지는 건 아니다. 희망이 없어도 삶을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면 되는 거 아닌가? 희망이 없으면 지금 최선을 다해 즐겁게 살 수 없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