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 오스카 와일드
독특하다.
처음엔 하루끼 소설을 읽는 것 같았는데
나중엔 데미안을 읽는 것 같았다.
아름다움을 최고 가치로 둔다.
아름다움은 감각에서 나온다.
“감각으로 영혼을 치유하고, 영혼으로 감각을 치유한다.”
이게 비법이라고 말한다.
오스카는 헨리경을 통해 도리언 그레이에게
새로운 쾌락주의란 무엇인가를 가르치는 것 같았다.
새로운 쾌락주의라 칭한 것은
이전 에피쿠로스의 정신적인 쾌락주의와
구별하기 위해서일까?
두려움과 공포가 그 바탕인
도덕과 신앙, 그리고 선함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며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을 찬양한다.
이런 아름다움은 바로 예술로 표현된다.
예술가는 아름다움을 작품으로 표현하고,
자신은 추해진다.
도리언은 반대로
자신의 추함과 악함을 자신의 초상화에 투영하고
자신은 아름다워진다.
하지만 영향을 받는 사람은
영향을 주는 사람을 넘어설 수 없다.
현실에서 청출어람은 어렵다.
자신의 그릇보다
더 커다란 것을 받게 되면
넘쳐 깨져버린다.
좋은 관계란 서로 좋은 영향을 주고받는 사이라고 생각했다.
“좋은 영향이라는 건 없는 거예요. 영향이란 게 모두 부도덕한 것이지"
사실 영향을 줄 정도면 엄청난 거다.
사람은 웬만해선 설득되지 않는다.
잘 영향받지 않는다.
종교나 정치 같은 맹목적인 믿음이 없으면 영향을 받지 않는다.
영향을 받는 사람 입장에선 영향이란 자기 생각이 아닌 거다.
그렇게 생각하니 섬뜩해졌다.
좋은 관계란 영향을 주고받는 게 아니라
그저 지켜봐 주는 정도인지 모른다.
인생의 목적 또는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를
“자신의 본성을 완벽하게 실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나의 본성은 무엇일까?
욕망대로 사는 것.
하지만 욕망 저편에 두려움이 언제나 도사리고 있다.
야마구치 슈는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에서 인생의 목적을 '나답게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생은 어쩌면 ‘나답게 사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해 나가는 과정일 뿐이다.
쾌락주의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예술이다.
“훌륭한 예술가들은 자신이 만든 작품 안에서 존재하는 법이거든요.
그러니까 결과적으로 볼 때 매력 없는 인간이 되는 거요.
반대로 이류 시인들은 매력이 넘쳐요.”
훌륭한 예술작품은 훌륭한 인간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찌질한 인간에게서 나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왠지 설득력이 있다.
내 작품과 나는 다르다.
내 글과 나도 다르다.
“자책을 할 때 사람들은 일종의 쾌락을 느끼게 된다.”
“죄를 면제해 주는 것은 사제가 아니라 고백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용서를 구하는 편지를 쓰기만 해도 용서를 받은 것 같다.
글에 내 죄와 죄책감이 투영되어
나 자신은 깨끗해지는 것과 같다.
나의 죄가 그림에 투영되는 설정도 여기서 나온 것이 아닐까?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쾌락은 자연의 것이지만
그 비밀은 반복에 있다는 것이다.
쾌락은 순간에 있지 않고, 반복에 있다.
쾌락이 순간에 있을 때 그 끝은 ‘환멸'이다.
이것이 이 소설의 반전이고, 작가의 통찰인 것 같다.
도리언은 그걸 몰랐다.
“로맨스란 반복을 통해 이어지는 것이고
반복은 욕망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거야.”
“아 어떤 일이든 자주 반복하면 쾌락이 되는 거요.
그게 인생의 중요한 비밀 중에 하나죠.”
사랑도 반복에서 나오고,
쾌락도 반복에서 나오고,
예술도 반복에서 나오고,
인생도 반복에서 나온다.
그게 인생의 비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