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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은 우연과 확률로 움직인다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 - 뱅하민 라바투트

by 푸른청년

이 책은 천재 과학자와 수학자들의 위대한 과학적 발견의 순간들을 작가의 상상력으로 보여주는 특이한 소설이다. 또한 이런 위대한 발견 뒤에는 항상 엄청난 위험성이 공존한다는 걸 보여준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갈등하고 고민하다가 광기에 이르기 쉽나보다.

이 발견을 알릴 것인가? 숨길 것인가?

하지만 아무도 이 발견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알 수 없다.


블랙홀의 존재를 예언한 슈바르츠 실트는

(블랙홀이라는) 특이점이 두려운 것은 불가지라는 사실 때문이라고 말한다.

불가지는 인간의 지혜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의미한다.

물질이 이런 종류의 괴물(특이점)을 낳는 경향이 있다면 인간정신도 상관관계가 있을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어쩌면 이 우주도 인간도 특이점 때문에 생겨난 건지도 모른다.


사실 인간정신도 많은 영역이 불가지의 영역이다.

하지만 인간이 '이건 불가지의 영역이야'하고 포기했다면 지금의 인간이 이렇게 발전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사물의 본질을 이해하고 싶어 하는 본능이 있다.

혹시 그것 때문에 자신의 목숨이 위험해지더라도 말이다.


사물의 본질에 대한 지식을 얻으려면

같은 현실에 대한 상보적 관점들이 합쳐질 때만

가능하다고 말한다.


상보적이라는 것은 서로 배타적인 개념들이 상호 보완적으로 작용한다는 원리라고 한다.

결국 사물이란 상보적인 존재라는 것 같다.

하나의 관점으로만 설명할 수 없다.


우리가 이해하려는 대상이 복잡할수록

다른 관점을 가지는 것이 더 중요해진다고 말한다.

우리는 많음을 통해 하나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들을 합치고

지금껏 알려지지 않은 것을 보임으로써

모든 것이 실제로는 같은 것의 일부임을 이해하게 해 준다는 것이다.

이것은 불교의 범아일여 사상과도 일맥상통해 보인다.

내가 곧 우주라는 범아일여 사상의 바탕이 바로 원자인 것 같다.

우리는 원자적 차원에서 우주와 하나다.


원자를 묘사할 때 언어는 시와 같은 역할만 할 수 있다고 하이젠베르크는 말한다.

겉으로 보이는 물리적 세계와 달리

보이지 않는 원자의 세계는

은유와 비유를 통해 설명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기존 물리적 세계의 대표자인 아인슈타인은

양자계를 대표하는 하이젠베르크가 주장하는 모호성과 우연성을 거부했다.


이런 모호성과 우연성의 산물이 바로 내 생각엔 파동 같다.

파동은 각각의 입자와 관계를 맺으면서 공간을 이동하며,

동시에 여러 위치에 존재한다고 한다.


빛은 파동이면서 입자다.

어떨 때는 파동으로 보이고, 어떨 때는 입자로 보인다.

즉, 주어진 맥락에서만 유효하고 관계로부터 생겨난다는 것이다.

서로 배타적이고 적대적이며, 그와 동시에 상보적이라고 말한다.

사람도 그렇고, 세상도 그렇다.


난 파동에 주목한다.

입자는 가능성의 공간에 거주하고 그게 파동이라는 것 같다.

그리고 슈뢰딩거의 파동함수는 그 모든 가능성이 겹쳐 있음을 보여준다고 한다.

결국 입자는 여러 가능성이 동시에 존재하는 상태라는 것이다.

가능성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 이게 중요하다.

이것이 만물이 창조되는 방식을 지배하는 원리라고 한다.

즉, 가능성이 동시에 존재하기에 창조가 일어날수 있다.

세상은 여러 가능성이 공존하며 확률로 움직인다.

확률로 움직인다는 것의 의미는 항상 높은 확률만 일어나는게 아니라는 것이다.

낮은 확률도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모든 세상 물질의 바탕이 되는

양자계는 숫자의 집합, 즉 확률의 세계다.

이전에는 모든 결과에 대해 원인이 있었지만

이젠 확률의 스펙트럼만이 존재할 뿐이라고 말한다.


현대 과학은 이 세상이 우연과 확률로 움직인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절망할 필요는 없다.

허무주의에 빠질 필요도 없다.

그것이 이 세상을 이해하길 멈추는 것이다.

모든 것이 인과관계에 따라 움직인다면 그것이 더 절망적인 세상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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