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 최은영
나는 그대로 있는데 내가 기억하던 것들이 먼저 사라지면 그게 진짜 외로움 같다.
기억하고 있으면 내 안에 살아있는 거라 위로해 봐도 마찬가지다.
이 책에서 화자에게 용산이 그렇다.
이런 외로움을 견디기 위해
자신을 타인처럼 여겨야 한다.
그러면 담담해질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본능적으로 외로운 사람은 외로운 사람을 알아본다.
하지만 만남으로 해결되지 않고
두려워하며 부끄러워하다
결국은 멀어진다.
“나도 모르는 거 아니야. 난 희원 씨가
세상 탓하면서 해소되지도 않을 억울함 느끼는 것 바라지 않아.
어린 여자라는 이유로 무례하게 대하는 사람들. 그냥 무시해 버렸으면 좋겠어.
상처의 원인을 헤집으면서 스스로를 더 괴롭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라고 끝내 말하지 못한다.
작가는 이런 추억이 희미하지만 빛이 되어
나를 이끌어준다고 말하고 싶었던 걸까?
하지만 우리는 추억만으로 살 수 없다.
내 안에서만 기억되는 건 의미 없다.
의미는 누군가에게 전달될 때 생긴다.
글을 쓰고 읽는다는 건 생판 모르는 남과 이어질 수 있는 일이다.
외로움은 누군가와 이어질 때 덜하다.
글을 쓴다는 건 내 마음이 누군가에게 이어지기를 바라고 쓰는 것 같다.
투명망토를 두르고 세상에서 혼자 사라지지 말고
내 언어가 누군가의 마음을 설명해 주기를 간절히 바라며 쓰는 것.
그게 작가가 말하는 빛 아닐까?
작가가 쓰고 싶은 글은
한번 읽고 나면 읽기 전의 자신으로 되돌아갈 수 없는 글이고,
당신의 느낌과 생각을 언어로 변화시켜 누군가와 이어질 수 있는 글이라 말한다.
하지만 정말로 글을 써야 하는 사람들은 모두 떠나고 쓸 줄 모르는 당신만 남아 글을 쓰고 있다고 생각한다.
쓸 줄 모르는 나는
읽고 쓰는 것만으로 어느 정도 내 몫을 했다고 생각하고,
부정의를 비판하는 것만으로 자신이 정의롭다고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다.
“살아진다. 그러다 보면 사라진다”
“있는 일을 없는 일로 두는 것. 모른 척하는 것”
그래서 부끄럽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난 부끄럽다.
그래서 이 책에서 글쓰기는 나를 의심하고,
나에게 순응하지 않는 것이라 말하는 것 같다.
그냥 살면 사라진다.
이 책에서 작가가 진짜 말하고자 한 것은
추억이나 기억이 아니라 부끄러움 같다.
부끄러움이 나를 한발 더 가보게 한다.
멈춰 있지 않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