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읽는 북학의 - 박제가, 안대희 엮고 옮김
박제가는 조선 후기 정조 때의 실학자로 내 이름과 비슷하여 더 익숙한 이름이다. ㅎ
국사시간에 저자와 책이름만 알았지 내용은 잘 모르는 게 태반인데 이 책도 그랬다.
북학의란 한마디로 북쪽을 배우자는 논의다.
여기서 북쪽이란 청나라를 의미한다.
청나라의 선진문물을 배워서
국력이 강하고 문화가 발달한 문명의 나라를 만들자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하려는 이유는
서민의 행복하고 윤택한 삶 때문이라고 말한다.
박제가는 이것을 이용후생이란 말로 표현했다.
이용은 일상생활을 편리하게 영위하는 것,
후생은 삶을 풍요롭게 누리는 것,
즉, 입고 먹고 거주하는 기본적 생활을 윤택하고
편리하게 영위하는 민생을 의미한다.
조선 혁신의 일차적 목표는
낙후한 경제의 부흥을 추진하여
개인은 풍요로운 생활을 구가하고,
국가는 부국강병을 실현하는 것이다.
최종목표는 다수 국민이 고도의 문명을 향유하고,
국가는 외국의 침략을 받지 않는 강한 나라가 되는 것이라 말한다.
이용후생과 부국강병은 지금도 목표로 할 만한 가치다.
여기까지만 들어봐도 반대할 이유를 전혀 찾을 수가 없다.
하지만 조선 후기만 해도 굉장히 급진스런 사상으로 배척당했다고 한다.
이때나 지금이나 권력자들은 국민의 삶을 향상시키는 것에 별 관심이 없다.
대런 애쓰모글루와 제임스 로빈슨이 쓴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라는 책에 보면 그 이유가 잘 설명되어 있다.
권력자들에게는 자신의 권력유지가 최우선이기 때문이다.
기술혁신은 반드시 창조적 파괴를 수반하기 때문에 권력자들은 자신의 권력기반이 무너질까 두려워 반대하기 마련이라고 한다.
이 책에서 박제가는 수레와 벽돌제작법에 관하여 가장 공들여 썼다.
왜 이런 기술을 알면서도 안 쓰는지 정말 답답해했다.
조선이 당면한 최대의 문제가 빈곤이라 선언하고
산업과 경제 부흥을 위해서는 “중국과 통상하는 길밖에 없다”라고 방안을 제시한다.
하지만 그 당시 조선 사대부는 중국과 통상하는 것을 꺼려했다.
이러한 사대부는 국가에서 만든 것인데,
국법이 사대부에게 적용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권력자는 법 위에 있고 싶게 마련이다.
법은 보통 백성에게만 유효하다.(이러면 나라가 망한다)
이러니 사대부가 되기 위해 그 당시 과거에 10만 명이 넘게 지원했다고 하니 깜짝 놀랄만한 일이다.
지금 수능 지원자가 40만 명 정도 되니 인구대비로만 봐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과거에 매달렸는지 짐작 가능하다.
박제가는 조선의 제도 중에서 과거제도를 가장 시급히 개혁할 것으로 보았고,
주자의 학문이 성행하는 순수한 나라에서
풍수설이 부처나 노자의 종교보다 성행한다고 걱정했다.
이 책에서 정말 흥미롭게 읽은 부분은
박제가가 비판한 이 당시 풍습들에 대한 묘사다.
“여성의 차림새가 몽골의 여인, 원나라와 똑같다”
“돼지고기나 양고기보다 소고기를 많이 먹었다”
“현재 토착말에는 신라말이 많다.”
“자기의 품질이 떨어졌다.”
“비단을 안 입었다.”
외국 패션을 따라 하고,
돼지고기보다 소고기를 많이 먹고,
고려말도 아닌 신라말이 많았고,
조선 백자가 유명해서 도자기 품질이 좋을 줄 알았는데 아니고,
아무리 일반 백성과 양반의 풍습이 달랐다고 하더라도 기존 내가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달라 신기했다.
모든 사람이 여진족의 청나라를 증오할 때
청나라를 배워야 한다고 주장하고,
“유생을 도태시켜 상업에 종사시키자,
상업을 진흥시키고 소비를 진작시키자”라고 말한
박제가의 주장이 그때는 혁명 같은 급진적인 주장처럼 들렸겠지만 지금 보면 너무 당연한 말들이다.
아마도 그 당시 권력자들인 사대부를
놀고먹는 자로, 나라의 큰 좀벌레라고 비판했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우리말을 버리고 중국말을 써도 문제없다는 주장은 너무 나아간 것 같다.
“우리나라는 중국과 가깝게 접경하고 있고 글자의 소리가 중국의 글자 소리와 대략 같다. 그러므로 온 나라 사람이 본래 사용하는 말을 버린다고 해도 안 될 이치가 없다. 이렇게 본래 사용하는 말을 버린 다음에야 오랑캐라는 모욕적인 글자로 불리는 신세를 면할 수 있고”
내가 생각하는 이 책의 옥의 티다.
그래도 분명한 것은
한 나라의 민생과 부국강병을 위해서는
잘 사는 나라들과 통상을 해야 하고
신기술을 받아들여야 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자기만의 생각에 갇혀있기 쉬우니
남의 말을 잘 들을 줄 알아야 한다.
나이가 들수록 더 그렇다.
“현명한 사람은 자기를 기만하지 않고,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를 피폐케 하지 않는다.”
현명한 사람은 자신을 속이지 않고,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을 스스로 망가뜨리지 않는다.
현명한 사람은 자신이 옳다고 확신하지 않고,
지혜로운 사람은 남의 말을 잘 듣는다.
현명한 나라는 자기 국민을 속이지 않고,
지혜로운 나라는 자기 국민을 궁핍하게 하지 않는다.
현명한 나라는 자기 권력자를 잘 견제하고,
지혜로운 나라는 다른 나라와 잘 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