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 막스 베버
이 책을 읽고 싶었던 이유는 자본주의에 대해서 알고 싶어서였는데 읽고 나니 개신교에 대해서 공부한 느낌이었다. 책은 논문이라 그런지 어려워서 진도가 잘 안 나갔다.
이 책은 결국 개신교의 철학적 윤리가 자본주의 정신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인데,
왠지 서구가 다른 곳에 비해 발전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개신교에서 찾는 느낌이었다.
과연 개신교 때문에 자본주의가 서구에서 발전할 수밖에 없었을까?
우선 종교개혁이 루터교로부터 출발해서 칼뱅주의, 그리고 청도교로 이어지는 흐름에 대해 알게 됐다.
그리고 기존 가톨릭의 지위를 끌어내리게 된 결정적인 이론이 이미 구원받을 사람들을 하느님이 창세전에 결정했다는 <예정론>이라는 것이었다.
가톨릭은 교회를 통해서 신부에게 세례를 받고 고해성사를 함으로써만 구원을 받을 수가 있다고 했다.
그래서 면죄부도 돈 받고 파는 등 교회의 비리와 부패가 넘쳐났다.
그런데 이 당시 개신교를 통해 퍼지기 시작한 예정론에 따르면 교회나 신부와 상관없이 구원이 이미 결정되어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 당시 이 이론의 여파가 얼마나 충격적이었을지 상상이 됐다.
결국 예정론이 나오게 된 계기가 그 당시 가톨릭 교회나 신부의 권위를 끌어내리기 위해 종교개혁을 주창한 개신교 목사들의 이론적 배경이 된 것 같았다.
하지만 예정론의 치명적인 문제점이 있는데, 이미 다 결정되어 있으므로, 현세의 선행이나 믿음이 아무 소용없다는 숙명론에 빠질 수 있다.
따라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 직업 노동을 통해 부를 쌓는 것이 구원의 징표라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부를 쌓는 것이 구원의 징표이자 의무이고 윤리이자 목적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청교도들의 금욕주의나 경건주의가 자본이 소비에 쓰이지 않고 생산에 쓰이게 하여, 자본 축적이 가능했고, 이것이 자본주의 출발점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것은 개신교 목사들이 어떤 자본주의 정신을 의도했다기보다는 이미 막강한 부를 소유하고 있는 가톨릭에 대항하기 위해, 그만한 경제적 힘을 갖추기 위해, 개신교 목사들이 숙고 끝에 만들어낸 해답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 주장하는 자본주의 정신은 무엇일까?
저자는 벤저민 프랭클린의 말로 자본주의 정신을 설명한다.
프랭클린은 독실한 청교도 집안에서 자랐다고 한다.
“시간이 돈이라는 것을 명심하라.
신용이 돈이라는 것을 명심하라.
돈은 번식력과 증식력이라는 본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라.
돈은 돈을 낳을 수 있고, 그렇게 새끼를 친 것들은 한층 더 많은 새끼들을 낳으며, 이러한 과정은 계속된다.”
문제는 자본주의 정신을 하나의 처세술이 아니라 윤리로 승격시켰다는 것이다.
“벤저민 프랭클린의 경우에는 인간에게 있어서 영리 활동은 이제 더 이상 삶의 물질적인 욕구들을 충족시키고자 하는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삶의 목적이었다.”
부는 구원의 징표이니 부의 추구 자체가 목적이고 의무가 되었다.
윤리가 되었다는 것은 그렇게 안 하면 죄가 되고 지옥에 간다는 뜻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특히 우리나라 개신교들이 왜 그렇게 돈에 대해 집착하고 반 정치적, 반국가적인지에 대한 힌트를 얻게 되었다.
개신교는 오직 하느님의 영광만 중요하고 다른 피조물의 신격화를 엄격하게 금지한다.
대부분의 종교가 그렇지만 인본주의가 아니라 신본주의다.
인간들 사이의 선행이나 악행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은 이미 결정되어 있으며 신의 뜻일 뿐이다.
이게 마치 회개만 하면 모든 것이 용서되는 면죄부처럼 작용하는 것 같다.
거기에 더해 구원의 징표인 부의 추구에만 전력을 다하면 된다.
인간들의 나쁜 짓은 신의 입장에서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저자의 주장처럼 자본주의가 개신교에서 나왔다면
자본주의의 잔혹한 비인간성도 개신교에서 나온 것 아닐까?
그리고 이 모든 시작은 예정설에서 나왔고, 숙명론을 해결하기 위한 구원의 징표로 부를 추구하면서 비롯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날 환경문제와 기후위기 그리고 빈곤과 빈부격차 같은 전 지구적인 문제들은 자본주의가 가장 큰 원인일 수 있다.
서구의 합리주의는 자본주의의 다른 이름인 것 같다.
이 책에 따르면 자본주의의 다른 이름은 개신교다.
아직 이 책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자본주의가 개신교에서 출발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난 이 책을 통해 개신교와 자본주의가 비인간적이라는 공통점을 가졌다고 느꼈다.
초기 개신교 역사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이 읽어보시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