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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청년 Sep 10. 2018

책은 도끼다.

박웅현 인문학 강독회

독서모임에서 ‘여덟 단어’라는 책을 소개받아서 알게 된 작가. 도서관에 갔다가 눈에 띄어 읽게 됐다. 광고디렉터라 그런가 예민한 감성이 느껴진다.


저자가 책을 읽는 이유는 얼어붙은 감성에 도끼질을 해주기 때문이다. 내가 볼 땐 책이 도끼처럼 날카롭기보다는 저자의 마음이 평범해 보이는 문장에도 베일만큼 열려 있는 거다. 저자는 책을 읽는 목표가 온몸이 촉수인 사람이 되는 것이다.


같은 것을 봐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엄청난 감동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 그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감수성이 부족해서, 나이가 들어 세파에 찌들어서, 아니다 잘 알지 못해서 일 수 있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의식하지 않으면 사람의 눈은 보지 못한다.


최인훈의 ‘광장’을 보면 “몸은 길을 안다”는 문장이 나온다. 어려서는 채소를 안 좋아하지만 나이 들어서는 나물을 좋아하게 되는데 그게 몸이 길을 안다는 증거라고 한다.  마루야마 겐지는 "육체와 사는 동안 육체에 집중하겠다"고 했다. "영혼에 집중하는 건 육체와 헤어진 다음에 하겠다"고 한다.


인간이 존재하는 이유는?
먹고살기 위해서다
이건 우스개 소리가 아니다.
영혼보다 육체가 먼저다.
몸은 자기에게 좋은 것을 본능적으로 안다.


김훈은 ‘칼의 노래’에서 “보편적 죽음이 개별적 죽음을 설명하거나 위로하지 못한다”라고 했다.
"왜군이 올 때는 군인으로 오지만 죽을 때는 개인으로 죽는다."


오스카 와일드는 “예술이 생활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이 예술을 모방한다."라고 했다. 그렇게 보니 그전에 쓸모없게 보이는 예술이 위대해 보인다.


날씨 좋은 지중해에서는 삶이 여행과 같은 것이라는 철학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한다.
“우리 일생이 한갓 여행에 불과하다는 것을. 여행길에서 우리는 이별 연습을 한다.
삶은 이별의 연습이다.”


여행이 이별하는 연습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일상에서의 일탈이 그냥 기분 좋을 뿐.
이별도 많이 하면 무뎌지듯이
여행도 많이 하면 무뎌지고
삶도 무뎌질까? 좋게 말하면 덤덤해지려나.


“영원히 회귀되지 않는 일회적인 것들은 무게를 가질 수 없어요.”
언젠가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은 무거울 수 없다. 영원히 회귀되는 것에 비해 일회적인 것들이 더 가치 있는 게 아닌가? 삶이 가치 있는 이유도 한번뿐이기 때문이 아닌가? 삶이 영원히 회귀하는 것이라면, 원이 아니라 나선이었으면 좋겠다.


“개들은 매일 아침 똑같은 밥의 연속이지만 한 번도 지겨워하지 않는다. 행복은 영원회귀에서 온다.”
내 생각에 행복은 작은 것에 감사하면 오는 것이다.
욕심을 버리면 오는 것이다.
마음먹기에 따라 오는 것이다.
호르몬이 분비되면 오는 것이다.


“말짱한 영혼은 가짜다.”
영원회귀할 수 없는 인간이 말짱하기는 어렵다. 지중해 철학처럼 삶은 여행 같은 것이므로 큰 미련을 갖지 말고 책과 더불어 몸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삶을 살자고 작가는 말하는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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