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푸른청년 Dec 23. 2018

철학이 필요한 시간

강신주

강신주에 대한 호불호가 많다고 들었다. 아마 조금 유명한 사람들은 대부분 그럴 것이다. 책에는 자기에게 맞는 타이밍이 있는 거 같다. 아무리 좋은 책도 언제 읽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 책은 48개 고전에 대한 저자의 통찰력이 담겨있다. 지금 내 나이가 철학이 필요한 시간인가 보다.


삶이 무의미 해지고 권태기를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가면을 쓰고 살아왔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가면을 쓰는 가장 큰 이유는 내 욕망이 아니라 남의 욕망에 의해 살아왔기 때문이다. 어릴 때는 부모의 욕망, 결혼해서는 와이프와 애들의 욕망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내 삶이 가면으로 느껴지는 법이다.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려면 솔직하고 당당해져야 한다. 하지만 현실에선 솔직하기가 너무 어렵다. 사회가, 회사가, 가족이 솔직하지 않기를 강요한다. 돈과 시간이 나를 얽매고 있어 당당하기도 어렵다. “지금 노예의 굴종과 비겁을 감내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노예로 살기를 결정한 셈”이라고 니체는 말했다. 어쩌면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삶이 편한지도 모른다. 솔직하면 일시불로 고통을 겪어내야 하고 그걸 넘기면 할부로 고통을 겪어내야 한다고 한다. 고통을 핑계로 노예로 살아온 건 아닌가? 넘기며 살아서 나이가 들면 할부가 쌓이나 보다.


자유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 그걸 망각하는 경우가 많다. 어떻게 보면 선택의 자유가 아니라 책임질 자유다. 혹시 책임지기 싫어서 노예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랑에는 이유가 없다. 알기 때문에 사랑하는 게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알려고 한다. 의미가 있고 마주침이 오는 게 아니라 마주침이 있고 의미가 오는 것이다. 필연성보다는 우발성이 먼저다.


남을 이해한다는 건 어렵다. 그들 각자의 우주와 세계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 나를 이해하기도 어렵다. 나도 하나의 우주와 같기 때문이다. 우주는 물리학처럼 숫자로 이해하기 어렵다. 확률로써 이해해야 한다. 내 마음도 확률로 이해해야 한다. 100%의 믿음과 사랑이 아니라 60% 정도 믿는 거고, 80% 정도 사랑하는 거다.


자본주의는 돈을 목적으로 인간을 수단화시킨다. 유행은 소비자들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산업자본이 만든다. 사람들이 갑자기 롱 패딩을 좋아해서 유행하는 게 아니고 산업자본이 광고를 통해 유행시킨 것이다. 산업자본은 시간의 차이를 이용해 돈을 벌고, 상업자본은 공간의 차이를 이용해 돈을 번다. 노동자는 월급을 받아 상품을 구입할 때만 잠깐 자유롭다고 느낀다. 대중문화란 결국에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에게 자신이 만든 상품을 구입하게 만드는 유혹의 기술이다.


철학적인 삶의 반대말은 습관적인 삶이라고 한다. 인간의 삶은 역동적이며 가변적일 수밖에 없다. 기계적이고 습관적으로 살면 그 인생은 희극이 된다.


지금 노예의 굴종과 비겁을 감내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노예로 살기를 결정한 셈이고, 지금 주인의 당당함과 자유를 쟁취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주인으로 살기를 결정한 셈이다. “지금 인생을 다시 한번 완전히 똑같이 살아도 좋다는 마음으로 살아라"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p26


“당신이 욕망하는 것이 진실로 당신이 소망하는 것인가?” 지금 내가 욕망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실은 과거 타자가 욕망했던 것, 혹은 금지일 수 있기 때문이다. - 라캉 -p31


철학자 니체는 마투라나보다 앞서 이것을 관점주의라고 표현했다. 결국 존재하는 관찰자들의 수만큼 다양한 세계들이 존재하는 법이다.(...) 그것은 우리가 모든 인간들, 혹은 모든 생명체들이 동의할 수 있는 하나의 객관적인 세계, 즉 ‘유일한 진짜 세계'를 가질 수 없다는 점이다. -p94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는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자유가 있다는 것을 인정했을 때에만 가능한 일이다. 자유가 없다면 책임도 있을 수 없다.(...) 결국 재판은 범죄 행위에 대해 피의자가 어느 정도 자유로웠는지를 따지는 행위인 셈이다. -p121


베르그송은 우주의 모든 것이 창조적 진화라는 역동적인 과정에 있다고 보았던 철학자였다. 당연히 인간의 삶도 유동적이고 가변적이며 역동적일 수밖에 없다. 이런 그의 눈에 세관원의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행동은 스스로 자신의 삶이 가진 자유스러운 활동성을 부정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유연하고 생동하는 자신의 삶을 망각하고 기계적이고 습관적인 행동을 했기 때문에, 세관은 웃음을 자아내는 것이다. -p219


상업자본은 공간의 차이, 다시 말해서 가격의 차이가 나는 서로 다른 두 공간에서 이윤을 획득한다. (...) 반면 산업자본은 상업자본과는 달리 시간의 차이를 이용해서 이윤을 남기려고 한다. (...) 상업자본이 이미 존재하는 공간적 차이를 이용할 수 있을 뿐이지만, 산업자본은 스스로 유행을 만들어서 시간적 차이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유행은 소비자들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산업자본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p230


“의미가 마주침에 선행하는가? 아니면 의미는 마주침 뒤에 오는가?” 플라톤 이후 아리스토텔레스, 아퀴나스, 라이프니츠, 칸트, 헤겔 등은 의미란 미리 정해져 있고, 우리는 그것을 발견하기만 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지금은 우발성이 필연성의 논리를 압도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p298
작가의 이전글 회색 인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