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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청년 Dec 30. 2018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자전적 에세이

무라카미 하루키 책을 읽은 건 [1Q84]가 처음이고 [기사단장 죽이기]가 두 번째인 거 같다. 하루키 소설의 초현실적인 면이나 우울함이 왠지 모르게 좋다. 환상과 현실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게 나에겐 묘한 설득력이 있다. 무엇보다 그의 글에 대한 태도가 좋다. 그는 매일 새벽에 일어나서 글을 쓰고 달리기를 한다. 일반인이 범접하기 어려운 천재의 모습이 아니라 수양하며 구도하는 듯한 그의 자세가 좋다.


이 책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는 30여 년에 걸친 자신의 글쓰기에 대해 솔직하고 담담히 써 내려간다. 하루키가 소설을 쓰게 된 계기는 어느 날 놀러 간 야구장에서다. 외국인 타자가 2루타를 친 순간 불현듯 소설을 쓸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이런 순간은 그의 소설과 닮아 있다. 사람에게는 이유를 설명할 순 없지만 그렇게 하고 싶은 순간이 있다.


이 책의 문체는 배려가 담겨있는 듯하다. 조심스럽다. 작가가 자신을 안 좋아하는 사람을 의식하고 있는 듯하다. 그게 글에서 느껴진다.


소설이나 음악 등 예술에는 '오리지낼리티'가 있어야 한다고 작가는 말한다. 하지만 '오리지낼리티'는 동시대 사람들에게 혹독한 평가를 받기 쉽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자신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것에 대해 본능적인 공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나만의 '오리지낼리티'가 있다는 것은 그런 비판들을 감수해야 할 만한 일인 것이다.


'시간을 갈아넣는다'라는 얘기가 있다. 열정은 시간과 비례한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시간은 자신감의 원천이다. 잠깐 스쳐 지나가는 게 아니라면 길게 할 수 있어야 한다. 시나 단편과는 달리 소설은 천재가 설 자리가 적다. 한편은 천재일 수 있지만 두 편, 세편은 어렵다.


사람에게는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 그것도 꾸준히 할 수 있어야 한다. 100년의 시간 뒤에도 살아남는 게 진짜다. 그만한 시간이 거기에 들어간 거라 본다.


하루키는 소설에서 환상과 운명과 이데아를 말하지만 그는 현실에서 자신만의 것과 노력과 시간을 얘기한다. 그의 환상은 그래서 좀 다르다.




2 소설가가 된 무렵

p40 - 41

아무리 거기에 올바른 슬로건이 있고 아름다운 메시지가 있어도 그 올바름이나 아름다움을 뒷받침해줄 만한 영혼의 힘, 모럴의 힘이 없다면 모든 것은 공허한 말의 나열에 지나지 않습니다. 내가 그때 몸으로 배운 것은, 그리고 지금도 확신하는 것은, 그런 것입니다. 말에는 확실한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힘은 올바른 것이 아니어서는 안 됩니다. 적어도 공정한 것이 아니어서는 안 됩니다. 말이 본래의 의미를 잃고 제멋대로 왜곡되어서는 안 됩니다.


p45 - 46

나는 그때 아무런 맥락도 없이, 아무런 근거도 없이 문득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 나도 소설을 쓸 수 있을지 모른다'라고.

그때의 감각을 나는 아직도 확실하게 기억합니다. 하늘에서 뭔가가 하늘하늘 천천히 내려왔고 그것을 두 손으로 멋지게 받아낸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

그것은 뭐라고 해야 할까. 일종의 계시 같은 것이었습니다. 영어에 epiphany라는 말이 있습니다. 일본어로 번역하면 ‘본질의 돌연한 현현' ‘직감적인 진실 파악'이라는 어려운 단어입니다. 알기 쉽게 말하자면, ‘어느 날 돌연 뭔가가 눈앞에 쓱 나타나고 그것에 의해 모든 일의 양상이 확 바뀐다'라는 느낌입니다.


3 문학상에 대해서

p82

자신의 창작을 진지하게 추구하면서 동시에 그 나름의 객관성을 갖고 신인 작가의 작품을 평가할 수 있는 사람도 물론 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머릿속의 스위치를 능숙하게 전환할 수 있는 것이겠지요.

(...) 그 같은 사람들을 향해 외경과 감사의 마음을 품고 있지만, 유감스럽게도 나 자신은 그건 도저히 안 될 것 같습니다. 나는 뭔가를 생각하고 비판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시간을 많이 들여도 자주 잘못된 판단을 내리기 때문입니다.  


4 오리지낼리티에 대해서

p95와

하지만 많은 실제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동시대적으로 존재하는 오리지널 한 표현 형태에 감응하고 그것을 현재 진행형으로 정당하게 평가한다는 것은 용이한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동시대 사람들의 눈에는 불쾌하고 부자연스럽고 비상식적인 - 경우에 따라서는 반사회적인 - 양상을 띤 것처럼 보이는 일이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혹은 그저 단순히 어리석은 것으로 비칠지도 모릅니다. 어떤 경우든 그것은 종종 경악과 동시에 쇼크와 반발을 불러일으킵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본능적으로 혐오하고, 특히 기성의 표현 형태에 푹 잠겨 그 속에서 지반을 구축해온 기성 권력에게는 타기 해야 할 대상이 됩니다. 자칫 잘못하면 자신들이 다져둔 지반을 그것이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p110

만일 당신이 뭔가 자유롭게 표현하기를 원한다면 ‘나는 무엇을 추구하는가'라는 것보다 오히려 ‘뭔가를 추구하지 않는 나 자신은 원래 어떤 것인가'를 그런 본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보는 게 좋을지도 모릅니다. ‘나는 무엇을 추구하는가'라는 문제를 정면에서 곧이곧대로 파고들면 얘기는 불가피하게 무거워집니다. 그리고 많은 경우, 이야기가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자유로움은 멀어져 가고 풋워크는 둔해집니다. 풋워크가 둔해지면 문장은 힘을 잃어버립니다. 힘이 없는 문장은 사람을 - 혹은 자기 자신까지도 - 끌어 들일 수 없습니다.


6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든다 - 장편 소설 쓰기

p167

그래서 나는 내 작품이 간행되고 그것이 설령 혹독한 - 생각도 못할 만큼 혹독한 - 비판을 받는다고 해도 ‘뭐 어쩔 수 없지 하고 넘어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할 만큼은 했다'는 실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전 작업에도 양생에도 진득하게 시간을 들였고, 망치질에도 충분히 시간을 들였다는. 그래서 아무리 혹독한 비판을 받아도 그것 때문에 위축되거나 자신감을 잃는 일은 일단 없습니다. 물론 약간 불쾌해지는 정도의 일은 가끔 있지만, 그리 대단한 건 아닙니다. ‘시간에 의해 쟁취해낸 것은 시간이 증명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세상에는 시간에 의해서가 아니면 증명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7 한없이 개인적이고 피지컬 한 업

p187

그 문구는 지금도 나에게 일종의 만트라 주문처럼 남아 있습니다. ‘이건 내 인생에서 아무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라는 것.

딱히 ‘달리는 것 자체가 선이다'라는 것은 아닙니다. 달리기는 그냥 달리기일 뿐입니다. 선일 것도 선이 아닐 것도 없습니다.

(...)

단지 나 개인에 관해서 말하자면 달린다는 행위가 나름대로 큰 의미가 있다는 얘기입니다.라고 할까, 그것이 나에게, 혹은 내가 하려는 것에 어떤 형태로든 필요한 행위라는 내추럴한 인식이 늘 변함없이 내 안에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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