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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청년 Jan 13. 2019

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하루키의 [여자 없는 남자들]은 총 7편의 단편 소설집이다. 첫 번째 [드라이브 마이카]에는 아내가 암으로 죽고 아내와 잔 남자와 친구가 되는 배우에 대한 얘기다. 두 번째 [예스터데이]는 오랫동안 사귀었던 여자 친구에게 자신의 절친과 사귀라고 한다. 세 번째 [독립기관]에서는 독신 생활을 즐기던 50대 남자가 열여섯 살 어린 유부녀와 사귀다가 차이고 스스로 곡기를 끊고 죽는다. 다섯 번째 [기노]에서는 스포츠용품 세일즈맨이었던 남자가 어느 날 출장에서 하루 일찍 돌아와 보니 자기와 가장 친했던 직장 동료와 와이프가 자고 있는 걸 보고 뛰쳐나온 얘기다. 일곱 번째 [여자 없는 남자들]은 어느 날 새벽에 전화가 왔는데 자기 와이프가 자살했다고 전하는 남편의 전화를 받는다.


이 소설의 남자들은 일반적이지 않다. 자기 와이프와 잔 남자와 친구가 된다는 상상이라도 할 수 있을까? 원래 목적은 약점을 알아내기 위해서였다고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한다. 와이프가 외도하는 걸 알고 있지만 말하지도 못한다. 오랫동안 사귀었던 여자 친구에게 자기 절친과 사귀어보라고 한다. 어차피 다른 남자랑 사귈 바에야 네가 낫겠다는 게 이유다. 자신의 와이프가 자살했는데 옛 애인에게 그 소식을 알려주려고 전화한다.


이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아마 사랑하기 때문일 거다. 이해할 수 없지만 이해해 보려고 노력한다. 쿨한 척한다. 그래서 아마 마음이 썩어가나 보다. 그렇게 자기 마음을 숨기며 연기를 한다.


사람들은 그닥 마음을 뺏기지 않았는데도 잔다. 또는 호기심과 탐구심 그리고 가능성 때문에 잔다고 한다. 그건 병 같은 거라고 한다.


모든 여자는 거짓말을 하기 위한 독립기관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독립기관이기 때문에 양심에 상처를 받지 않는다고 한다. 독립기관이 자기의 의지와 상관없이 저지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색다른 의견이다.


마음이 어두워지는 이유는 “상처 받아야 할 때 충분히 상처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짜 아픔을 느껴야 할 때 결정적인 감정을 억눌렀기 때문이다. 진실과 정면으로 맞서기 두려워 회피할 때 알맹이 없이 텅 빈 마음을 떠안게 된다.” 마음의 상처는 그래서 어두움에 끌린다.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되는 것은 아주 간단하다. 한 여자를 깊이 사랑하고 그 후 그녀가 어딘가로 사라지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한번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되어버리면 그 고독의 빛은 당신 몸 깊숙이 배어든다. 그리고 때로 한 여자를 잃는다는 것은 모든 여자를 잃는 것이기도 하다.


결국은 솔직함의 문제다. 강신주가 그랬다. 솔직하면 일시불로 갚는 것이고 솔직하지 못하면 할부로 갚는 것이다라고. 고통이 올 때 어떤 걸 선택할 것인가? 그 선택이 바로 나다.


[드라이브 마이카]

p44

세상에는 크게 두 종류의 술꾼이 있다. 하나는 자신에게 뭔가를 보태기 위해 술을 마셔야 하는 사람들이고, 또 하나는 자신에게서 뭔가를 지우기 위해 술을 마셔야 하는 사람들이다.


p51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일지라도, 타인의 마음을 속속들이 들여다본다는 건 불가능한 얘깁니다. 그런 걸 바란다면 자기만 더 괴로워질 뿐이겠죠. 하지만 나 자신의 마음이라면, 노력하면 노력한 만큼 분명하게 들여다보일 겁니다. 그러니까 결국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나 자신의 마음과 솔직하게 타협하는 것 아닐까요? 진정으로 타인을 들여다보고 싶다면 나 자신을 깊숙이 정면으로 응시하는 수밖에 없어요.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독립기관]

p130

“재치라고 하니 말인데, 프랑수아 트뤼포의 옛날 영화에 이런 장면이 있어요. 여자가 남자에게 말합니다 ‘세상에는 예의 바른 사람과 재치 있는 사람이 있어. 물론 둘 다 훌륭한 자질이지만, 대부분의 경우 예의보다 재치가 이기지' 이 영화 본 적 있어요?”


p141 - 142

“이 의사에게 닥친 끔찍한 운명은 장소와 시대만 바꾸면 그대로 내 운명이 될 수도 있다고, 만일 내가 어떤 이유로든 -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 지금의 생활에서 어느 날 갑자기 끌어내려져 모든 특권을 박탈당하고 그저 번호뿐인 존재로 전락한다면, 나는 대체 무엇이라 할 수 있을까.”


p166

모든 여자는 거짓말을 하기 위한 특별한 독립기관을 태생적으로 갖추고 있다, 는 것이 도카이의 개인적인 의견이었다. 어떤 거짓말을 언제 어떻게 하느냐는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하지만 모든 여자는 어느 시점에 반드시 그것도 중요한 일로 거짓말을 한다. 중요하지 않은 일로도 물론 거짓말을 하지만 그건 제쳐두고, 아무튼 가장 중요한 대목에서 거짓말을 서슴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때 대부분의 여자들은 얼굴빛 하나, 목소리 하나 바뀌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건 그녀가 아니라 그녀 몸의 독립기관이 제멋대로 저지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로 그녀들의 아름다운 양심이 상처 받거나, 그녀들의 평안한 잠이 방해받거나 하는 일은 - 특수한 예외를 별도로 친다면 - 일어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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