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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청년 Mar 03. 2019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

이 소설은 기억에 관한 소설이다. 우리의 기억은 정확하지 않으며 나에게 유리하게끔 변형되어 내가 기억하고 싶은 것만 간직한다.


아내와는 이혼하고, 직장에서 은퇴하여 평온한 생활을 하고 있던 중에 500파운드의 돈과 일기장을 유산으로 남긴다는 편지를 받는다.


그런데 유산을 남긴 사람이 지금은 기억도 희미해진 어릴 적 여자 친구 베로니카의 엄마다. 그리고 일기장은 오래전에 자살한 절친 에이드리언의 일기장이다.


왜 단 한번 봤을 뿐인 베로니카의 엄마가 나에게 유산을 남겼고, 자살한 에이드리언의 일기장을 가지고 있다가 나에게 남겼을까?


어렵게 베로니카에게 연락했다. 에이드리언의 일기장을 돌려달라고 하지만 거부당한다. 계속해서 스토킹 하듯이 괴롭히자 만나준다. 몇 장의 복사본과 내가 보낸 편지를 주었지만 그걸로는 이해가 안 된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아직도 전혀 감을 못 잡는구나. 그렇지? 넌 늘 그랬어. 앞으로도 그럴 거고"


이 소설은 남자의 소심함과 찌질함에 대한 인과응보다. 베로니카와 자고 싶지만 진도가 더 이상 안 나가는 것에 대해 불안함을 느끼고 결국엔 헤어지게 된다. 그런데 헤어진 뒤에야 잤다고 기억한다. 다르게 생각해보면 한번 자고 차 버린 것이 될 수도 있는데.


헤어진 뒤에 에이드리언이 베로니카와 사귀어도 되냐고 편지가 온다. 자신은 쿨하게 만나라고 답장을 썼다고 기억하지만 사실은 입에 담을 수 없는 욕과 저주를 퍼붓는다.


그렇게 기억과 사실은  많이 다르다.


이 소설은 역사를 기억에 빗대어서 말한다.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는 역사도 추정일 뿐이다.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입니다.”

“역사는 승자들의 거짓말이 아니다. 살아남은 자의 회고에 가깝다.”


마지막 결말이 충격적이었던 이유는 읽는 독자 역시 기억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심코 넘겨 보았던 텍스트들이 뒤통수를 친다. 어떤 행동이나 사건들이 미스터리 한 이유는 대부분 주의 깊게 눈여겨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에이드리언은 어릴 때 자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카뮈는 자살이 단 하나의 진실한 철학적 문제라고 했어.
단 하나의 진실한 문제. 다른 모든 게 걸린 근본적인 문제인 거지


p26

사실 책임을 전가한다는 건 결국 회피가 아닐까요? 우린 한 개인을 탓하고 싶어 하죠. 그래야 모두 사면을 받을 테니까.


p34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입니다.

파트리크 라그랑주. 프랑스인입니다.


p60

사람들이 자신의 말을 경청하게 하려면 언성을 높이는 게 아니라 낮추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었다.


p141

어쩌면 이것이 젊은 사람과 나이 든 사람의 차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젊은 시절에는 자신의 미래를 꾸며내고 나이가 들면 다른 사람들의 과거를 꾸며내는 것


p194

바로 뇌는 고정 배역을 맡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만사는 감소의 문제요. 뺄셈과 나눗셈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무섭게 뇌가, 기억이 우리의 뒤통수를 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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