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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청년 Nov 18. 2019

진실은 하나가 아니다.

만들어진 진실 - 헥터 맥도널드

사실과 진실의 차이에 대해 아들에게 설명해 준 적이 있는데, ‘사실’이라는 건 ‘네가 네 친구를 때렸어' 이게 사실이고, ‘진실’이라는 건 ‘네 친구가 엄마 욕을 했어. 그래서 때렸어' 이게 진실이라고 설명해 준 적이 있다. 이것이 정확한 비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진실은 사실에 맥락이 더해진 거라고 어렴풋이 알고 있었나 보다.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건 ‘진실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라는 거다. 유명한 비유로 장님들이 코끼리를 만질 때 다리, 코, 꼬리를 만지는 장님에 따라 코끼리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다. 이건 인식의 한계 때문에 어쩔 수가 없는 거다. 그래서 이 책에선 ‘부분적 진실’이니 ‘경합적 진실’이니 하는 표현을 쓴다. 중요한 건 내가 알고 있는 진실이 전부가 아니라는 거다.


그래서 진실을 바라볼 때 사실보다 맥락이 중요하다.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힘들게 등산 갔을 때 마시는 막걸리나, 땀 뻘뻘  흘리는 운동하고 나서 먹는 맥주는 너무 맛있다. 딸 수학 성적이 60점인데 너무 잘했다고 칭찬했다. 왜냐 그전에는 40점 맞았었기 때문이다. 맥락이 의미를 규정한다.


진실에 있어 맥락이 중요하기 때문에 진실을 오도하고 싶은 사람은 맥락을 빼고 자기가 의도하는 목적에 부합하는 사실만을 적절히 배치하는 경우가 많다. 텍사스주 보건국에서 발표한 내용을 보자.


임신 이력은 유방암 발병에 영향을 끼칩니다. 출산할 경우 향후 유방암에 걸릴 가능성이 줄어듭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낙태할 경우에는 유방암 발병률이 줄어드는 효과를 볼 수 없습니다.


위 내용에 거짓은 없다. 하지만 낙태할 경우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더 높아질 거라는 인상을 줄 수 있다. 과학적으로 낙태와 유방암 사이에는 아무 인과관계가 없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사실’보다는 ‘스토리'를 좋아한다. 어릴 때 할머니가 해주는 이야기들을 안 좋아한 사람이 있을까? 글을 잘 전달하려면 사실이나 정보의 나열이 아니라 맥락을 가지고 스토리를 짜야하는데 난 그걸 잘 몰랐다. 사람들에게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스토리'였다.


스토리에는 필요한 세 가지 요소가 있다고 한다. 첫 번째 ‘변화과정'이 꼭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변화가 없으면 스토리도 없기 때문이다. 두 번째 그 ‘변화'를 촉발하는 ‘촉발제'가 있어야 하고, 세 번째 이런 변화를 설명하는 ‘인과관계' 있어야 한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스토리는 전체 그림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편집된 진실인 거다.


이 책의 저자인 ‘헥터 맥도널드’는 비즈니스 스토리텔링 전문가이자, 전략적 커뮤니케이션 컨설턴트이다. 회사의 의도에 따라 직원들에게 회사의 비전을 잘 설명하고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이럴 때 하는 일이 스토리를 만들고 진실을 편집하는 것이다. 회사에 유리한 내용은 강조하고 불리한 사실들은 언급하지 않는 건 회사 입장에선 당연하다. 이 사람은 일선에서 이런 일을 하다 보니 그 위험성을 너무 잘 안다. 그래서 그런 사례들을 이 책을 통해 경고한다.


진실의 편집 작업은 지금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 중요한 건 현실인식을 왜곡시키는 잘못된 오도자들이나 스토리들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려면 사실만 보면 안 되고 맥락을 함께 봐야 한다. 또한 하나의 진실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항상 염두에 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잘못된 신념에 빠질 수 있고, 잘못된 신념만큼 무서운 것도 없다.


나도 그렇지만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이분법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게 이해하기 쉽기 때문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거, 보고 싶은 거,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면 확증편향에 빠지기 쉽다. 만약 최근에 어떤 이슈에 대해 이게 옳은 건가? 맞는 건가? 고민한 적이 별로 없었다면 그럴 확률이 높은 거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좋은 사람만 있는 게 아니고 나쁜 사람만 있는 게 아니다. 사람은 항상 동시에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다. 어렵겠지만 성급히 판단하지 말자. 세상엔 내가 모르는 맥락이 너무 많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은 이렇게 말했다.

선이나 악은 없다.
생각이 그렇게 만들 뿐이다.

    



p56

우리는 내 신념과 모순되는 아이디어나 데이터는 무의식적으로 외면한다. 그러면 아주 중요한 이슈에 대해서도 지독하게 선택적인 밑그림만 남게 될 가능성이 크다. 너무나 많은 이슈에서 우리는 여러 경합하는 진실 중 이용 가능한 아주 적은 진실만 듣게 된다.


p87

스파게티의 면발 하나하나는 모두 경합하는 진실과 같다. 그중에 어느 가닥을 뽑기로 선택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역사 인식이 결정된다. 그리고 그 인식이 현재 나의 행동을 좌우한다.


중요한 것은 지정학적 역사나 기업의 역사만이 아니다. 누구나 연애의 역사 혹은 싸움의 역사를 재해석해보려고 노력해봤을 것이다. 내가 과거에 일어난 일이라고 이해하는 내용이 나의 현재와 미래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나의 역사가 ‘나’라는 개인의 정체성을 만든다. 내 역사가 나의 사고방식을 결정짓는다.


p162

확실한 진실이 없기 때문에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이들 스토리가 그려주는 편집된 진실뿐이다. 우리는 부시 행정부나 민영화, 음모론을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어느 한쪽의 이야기에 귀를 더 기울일 수도 있다. 우리의 사고방식이나 세계관에 따라 어느 버전의 이야기를 믿을지가 이미 정해져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두 스토리는 모두 진실이며, 양쪽이 제시하는 팩트들도 진실이다. 그 팩트들이 어떻게 일련의 인과관계로 연결되어 최종 메시지를 만들어내느냐, 그게 바로 스토리텔링이다.


p176

스토리를 가장 잘 활용하는 경우는 무언가를 ‘증명'하려고 할 때가 아니라 이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줄 때다. 진실한 스토리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왼손잡이의 수명에 관한 스토리는 숫자가 어떻게 잘못 해석될 수 있는지 ‘가능성'을 보여주지만, 그 이상의 확실한 무언가를 증명하지는 않는다.


나는 스토리텔러다. 스토리는 내 글에 힘을 불어넣고 정보를 제공한다. 하지만 나는 일화를 오직 개별 데이터로만, 예시로만 사용하려고 노력한다. 결코 주장의 근거로는 사용하지 않는다.


스토리의 힘은 대단하다. 때로는 정당화될 수 없을 때조차 손쉽게 사람들을 설득해낸다. 스토리에 이런 힘이 생기는 것은 스토리가 우리로 하여금 복잡한 세상을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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