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푸른청년 Nov 24. 2019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최장집, 이정우, 최영기, 장하준, 임동원, 도정일, 김우창

민주화 20년, 한국 사회를 돌아보다

지식인 7인의 성찰과 전망




제목은 거창하지만 우리나라의 내로라하는 석학들도 언제나 그렇듯이 신박한 답을 제시하지는 못한다. 이 책은 6월 민주항쟁 20주년을 기념하여 2007년 6월부터 11월까지 '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와 '프레시안'이 공동으로 진행한 연속기획 강연을 묶어낸 책이다.


'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는 인터넷한겨레 재직 시절 개발자로 프로젝트에 참여했었는데 여기서 그 이름을 들으니 반갑다.


2007년은 노무현 대통령 임기말이고 부동산 정책 실패와 이라크 파병 등으로 보수와 진보 모두에게 욕을 먹고 있던 때이다. 아마 우리나라 대통령 역사상 보수와 진보 양쪽으로부터 가장 많은 욕을 먹은 사람일 거다. 최장집 교수는 노무현 대통령을 시장 포퓰리즘이라고 평가한다. ‘반정치’, ‘반정당’적이고 시장이 문제들을 해결해준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때보다 지금은 긍정적인 평가가 많아졌지만 이 챕터를 읽으면서 마음이 아팠다. 난 노무현 대통령을 인간적인 현실주의자라고 생각한다. 인간적인 정치는 약점이 많아서 모두에게 욕먹나 보다.


이정우 교수는 1997년 외환위기부터 우리 경제는 신자유주의 시장만능주의의 길로 들어섰다고 말한다. 시장만능주의는 양극화라는 필연적인 결과를 낳는데 그렇기 때문에 영화 기생충이 세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다. 송강호가 더 나쁜 놈인가, 박사장이 더 나쁜 놈인가의 문제는 중요치 않다. 돈을 잘 버는 사람과 못 버는 사람의 계급적 차이가 너무 커져서 결국은 살인이라는 갈등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북유럽형 사민주의가 아닌가 하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북유럽과 우리나라는 너무 많은 환경적인 차이가 있다. [나라는 부유한데 왜 국민은 불행할까]라는 책에서 복지사회는 무엇보다 중산층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복지사회를 위해서는 기업과 노사의 협력관계가 더 중요한 거 같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대립적 노사관계이다. 북유럽은 정치가 노조 기반의 정당정치인데 노조 조직률이 70%나 되기 때문에 정당이 노조의 이익을 대변한다. 우리나라는 11%다. 그래서 우리나라 정당은 계급이나 정책이 아니라 지역이나 이념적 이익을 대변한다. 북유럽 노조 조직률이 그렇게 높은 이유는 실업자 보험 권한을 노조가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장하준 교수는 재벌과 사회적 소유를 통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재벌을 인정해주고 그 대가로 복지를 요구하자는 거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오히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만 벌어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사회적 소유의 성공적인 예로 싱가포르를 들고 있는데 인구가 너무 적은 도시국가이기 때문에 가능한 얘기라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시장에만 너무 맡기지 말고 국가의 적절한 관리가 필요한 건 맞다고 본다. 하지만 그건 공평하고 합리적인 공무원들이나 시스템이 있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이제 10년 넘게 지난 시점인데 우리의 외부 환경은 더욱 복잡해졌다. 미국과 중국이 싸우고 있고, 우리는 일본과 분쟁 중이다. 북한과의 전쟁 위험성은 많이 낮아졌지만 여전히 가장 강력한 불안요소다. 우리는 북한을 붕괴시킬 마음이 없는데 북한은 미국과 남한이 북침 하거나 흡수 통일하리라는 공포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임동원 전 국정원장이 말한다. 우리는 오히려 6.25라는 트라우마 때문에 그 사실을 잘 모른다. 이것이 북한이 왜 그동안 그런 행동들은 해왔는지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핵심 같다. 통일만이 유일한 살길이라 생각했는데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다. 통일보다 먼저 항구적인 평화체제 구축이 앞으로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기반 요소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자유로운 민간과 경제교류가 우선되어야 한다. 문제는 미국과 중국이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북한과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다른 무엇보다 이게 우선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국과 북한 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그 이면에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다툼이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이 문제가 꼬여있기만 한건 아니다. 이런 혼란 상황이 오히려 문제를 해결하는데 더 많은 기회일 수 있다. 그 중간에서 외줄타기를 잘한다면 말이다. 지금처럼 대통령과 외교라인이 중요한 시기는 없었다.


복지국가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직 때가 아니다라고 생각할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복지국가는 집 걱정, 교육 걱정 안 하는 세상이다. 거기에 더해 노후 걱정까지 안 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이런 세상을 주장하면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일까? 인간 발전은 경쟁을 통한 자본의 논리에 의해서만 가능한 걸까? 그런 면에서 북유럽의 사민주의가 어떻게 변하고 발전하는지를 잘 살펴봐야 한다.


이 두 가지를 해내려면 먼저 우리 국민이 연대하고 목소리를 모아야 하는데 분열되고 서로 다른 주장만 하고 있는 거 같아 안타깝다. 그런데 모두 자기가 주장하는 게 국익을 위하는 길이라고 악을 쓴다. 국민 스스로가 과연 누구를 위한 국익인지 하나하나 따져보고 현명하게 판단하는 수밖에 없다. 세상을 바꾸는 단 하나의 방법은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는 거밖에 없다. 




p33

민주주의는 정치와 권력을 통해서, 정당을 수단으로 해서 사회 구성원의 삶의 조건을 개선하는 정치 체제이고 정당은 이를 실현하는 정치의 중심 기제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시장 포퓰리즘은 반정치, 반정당의 태도를 가지고 있죠. 시장이 이 문제를 다 해결해준다는 생각입니다.

(노 대통령은 개헌 이슈를 제기할 때, 한국에서는 선거가 너무 많아 선거를 줄이면 예산 절약 효과를 갖는다고 말할 바 있죠. 이는 시장 포퓰리즘의 관점에서 민주주의를 접근하는 대표적 사례)


p79

결국 경제 위기는 동아시아 각국 정부의 정책 실패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OECD, IMF, 서방 정부와 은행, 기업 등의 부추김을 받아 급격하게 금융 규제를 해제한 것이 화근이었죠. 특히 한국은 OECD 가입에 너무 신경을 쓴 나머지 OECD 가입 조건인 금융시장을 개방한 게 위기를 초래한 원인이라고 웨이드는 해석합니다.


p96

세계에서 기업별 노조를 가진 나라는 일본, 한국 정도인데, 일본은 협조적 노사 관계를 갖고 있으니 기업별 교섭을 해도 별 문제가 없으나 우리는 대립적 노사 관계를 갖고 있어서 임금 교섭에 엄청난 비용을 치르고 있습니다. 과거 독재 시절 노조를 무력화시키는 데 기업별 노조가 유리할 것이라는 판단으로 이런 특이한 제도를 도입했으나, 민주화 이후에는 오히려 이 제도가 우리나라 경쟁력을 저해하는 족쇄가 되고 있는 셈입니다.

(임금교섭 수준을 산업별 수준으로 올리는 게 바람직한데, 문제는 사용자 측이 이를 반대. 이들은 산업별 교섭을 하게 되면 노동자들이 지금보다 더 과격한 요구를 할 것으로 보고 극구 반대)


p234

반목하는 집단들이 서로 자신의 영역에서는 시장논리를 제약해 자신들을 보호해줄 것을 요구하면서 상대방에게는 시장논리를 최대한 적용해서 상대의 힘을 약화시키고 싶어 합니다. 자본가들은 시장논리를 수정해 경영권 방어 장치를 만들어달라고 요구하면서, 농산물 시장 개방을 반대하는 농민들이나 노동자의 권인 보호를 원하는 노조에게는 시장 원리를 해친다면서 비난하고 있습니다.

반대쪽에서는 일반 국민들이 자기 생계가 걸린 문제에서는 시장 원리 확대를 반대하면서 보호무역을 지속해달라, 정부의 규제를 지속해달라고 요구하면서, 금융자본가들이 시장 원리에 따라 재벌 총수들을 압박하는 것은 좋아하고 더 하라고 합니다. 그 결과는 서로 힘을 약화시켜 공멸하는 것이죠.


p264

경제 민주화에서 작업장 민주주의가 중요하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생산 수단의 사회적 소유, 저는 완전 사회주의적 소유, 즉 생산 수단에 대한 전체 사회의 소유는 결국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믿지만, 많은 부분에서 사회적 소유는 별 문제가 없습니다. 싱가포르는 우리나라에서 자유경제주의의 본보기로 만날 얘기하고 있지만, 싱가포르 토지가 모두 국가 소유고 주택의 85퍼센트를 정부가 공급하며 국민소득의 30퍼센트를 공기업이 생산합니다. 그런 식으로 상당히 많은 부분이 생산 수단의 사회적 소유가 이뤄져 있어도 자본주의가 굴러갑니다.


p343

‘문화'는 백 가지 모양과 아흔아홉 개의 목소리를 가진 괴물과도 같습니다. 문화야말로 ‘스핑크스'죠. 괴물의 특성은 ‘정의할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그러나 정의할 수 없는 것을 정의하는 것이 인간의 버릇입니다. 신은 정의하지 않고 인간은 정의합니다. 인간이 무언가를 계획하면 신이 웃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정의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일 듯합니다. “인간이 정의하면 신은 웃는다."


p405

역사에 대하여 마르크스가 한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세계 역사상 중요한 사실과 인물은 두 번 일어난다. 처음에 그것은 비극으로, 두 번째는 희극으로.”

역사는 새로 시작되는 게 아니라 언제나 과거에 이루어진 것 속에서 만들어집니다. 그리하여 “모든 죽은 세대의 전통이 악몽처럼 살아 있는 세대의 사람들의 머리를 짓누른다. 그리하여 사람과 사물들을 혁명적으로 쇄신하고 지금껏 존재하지 않았던 것을 창조하는 그러한 혁명적 위기의 시점에 과거의 정신을 불러내어 그들 자신에 봉사하게 하고 그 이름과 싸움의 구호와 의상을 빌려 이 오래된 가장과 빌려온 언어로 세계사의 새로운 장을 연출한다.”


p431

사람은 다른 사람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발달합니다. 이러한 인간의 사회적 조건이 저절로 교육의 효과를 발휘하고 동시에 삶의 충족감을 높입니다. 보통 사람이 원하는 것은 체제화된 교육도 아니고 무작정의 개인 능력의 발달도 아닙니다. 그것들은 행복이나 삶의 보람의 한 구성 요소일 뿐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진실은 하나가 아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