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푸른청년 Dec 10. 2019

김광식의 철학카페를 다녀와서

영화 기생충과 아도르노의 [미니마 모랄리아] 작은 도덕에 대하여

2019년 11월 21일 화요일 저녁 7시

합정역 루치아 카페


김광식, 서울대 기초교육원 교수, 서울대 철학과 졸업 / 아도르노, 독일 프랑크푸르트 학파 철학자




어릴 때 허세로 철학 책들을 읽긴 했지만 이해는 못했다. 나이 들어서 관심은 있지만 너무 관념적인 거 같아 못 본채 했고, 오히려 철학보다는 과학에 관심이 더 갔다. 그러던 참에 철학과 교수님이 얘기하는 철학이야기는 어떨까 궁금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이과 출신인 나에게 문과계열인 철학은 정말 다른 세계인가 보다. 다루는 용어들부터 딴 세상이다. 책을 다 읽고 참여하고 싶었는데 너무 어려워서 반 읽고 포기했다.


시작은 신해철의 ‘머니’라는 음악을 들려주고, 영화 기생충 줄거리를 얘기했다. 다음으로 작은 도덕의 개념과 정의에 대해서 얘기했고, [미니마 모랄리아]에서 발췌한 내용을 읽으며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 관점에서 영화 기생충을 해석했다.


 

작은 도덕은 개인적 영역을 뜻하는 것이고 큰 도덕은 사회적 영역을 뜻하는 것이라 이해했다. 이 책을 영화 기생충과 엮은 이유는 송강호와 박사장을 이런 관점에서 설명하려는 시도 같다. 송강호나 박사장 가족들의 개인적 잘못은 그리 크지 않다. 다만 부자와 가난한 가족의 계급적 차이라는 사회 구조적 문제가 살인이라는 큰 도덕적 사건으로 나타난 것이다.


나누었던 얘기 중에 두 가지가 생각나는데 첫 번째는 "거짓된 삶 속에 올바른 삶은 존재하지 않는다"이다. 이 책에서 가장 유명한 문구라고 하는데 전문용어로는 '근본악 테제'라고 한다. 아도르노가 독특한 점은 잘못된 사회 속에서는 아무리 개인이 올바른 삶을 추구하더라도 잘못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봉사하는 꼴 밖에 안된다고 주장한다.


진보적 지식인의 비판도 결국 영화 매트릭스의 네오와 같은 역할이다. 네오는 정반합에서 '반'을 의미하고 철학용어로는 '안티테제'라고 한다. 시스템이 프로그램의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일부러 버그를 의도한 거다.


두 번째는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이다. 원래 주인은 명령을 하는 사람이고 노예는 명령을 받는 사람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주인은 노예 없이 못 살고, 노예는 주인 없어도 산다. 결국 주인과 노예의 관계가 역전된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남편과 부인의 관계를 생각해 보면 이해하기 쉽다.


"제법 오랫동안 결혼 생활을 한 부인치고 남편의 작은 약점들을 쑥덕거리면서 남편을 물 먹이지 않는 사람은 별로 없다"


하지만 관계가 역전됐다고 해서 구조가 바뀐 건 아니다. 페미니스트 남편들은 우리 부부관계는 평등하다고 주장할 수 있다. 아도르노는 "사회의 해방 없이 해방은 없다"라고 말한다. 남편이 아무리 잘해줘도 개인적으로 평등하다고 해도 사회구조적인 시스템의 해방 없이 진정한 여성 해방은 없다.


아도르노의 철학적 주장들은 일반적인 생각들을 뒤집는다. 부조리한 시스템에서 개인의 노력은 의미가 없다. 그건 너무 절망스러워서 부정하고 싶다. 영화 매트릭스의 네오도 자신이 아키텍처가 의도한 버그라는 말을 듣고 충격에 빠졌다. 참가자들의 토론 중에도 여전히 그런 역설들을 인정하지 못하는 모습이고 나도 그랬다. 특히 조국 사태에 대한 의견들이 그랬다. 


난 이런 아도르노의 철학적 인식에서 절망을 생각하기보다는 구조를 바꾸라는 말로 이해하고 싶다. 잘못된 부조리나 시스템을 비판만 하는 건 별 의미 없다. 구조를 바꾸고 판을 깨는 수밖에 없다.


판을 깰 용기가 있는가?
매거진의 이전글 혼란이 곧 기회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