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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청년 Dec 23. 2019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강원국의 말과 글로 행복하기' 강연을 다녀와서

2019년 11월 26일 화요일 오후 7시 동작도서관

강연을 들은 후에 [강원국의 글쓰기]라는 책을 읽었다. 강연과 책 내용이 거의 겹치는데, 난 책 보다 강연이 더 좋았다. 말하는 사람의 눈빛과 호흡, 그리고 표정에서 나오는 입체감은 책이 따라오기 어렵다.




강원국 작가는 김어준 유튜브 방송에서 처음 보고 그 소탈함과 유머에 ‘이 사람 참 매력적이네'라고 생각했었다. 그 후에 [대통령의 글쓰기]라는 책을 재밌게 읽었는데 동작도서관에서 강연을 해서 가게 되었다.


강연은 너무 좋았다. 확실히 이해하는 데는 글보다 말이 더 힘이 있다. 글로는 어려운 게, 말로 들을 때는 쉬운 경우가 많다. 책을 읽고 이해가 잘 안 되면 와이프에게 말로 설명해보는데 이런 내 말을 들어주는 와이프가 정말 고맙다.


이렇게 직접적으로 와 닿는 건 말이지만 글은 오래 남는다. 어떤 한 주제에 대해서 8시간 말할 수 있으면 책 한 권이 나온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주제가 아직 없다. 그래서 책을 못 쓰는 거였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가장 잘 들어맞는 게 글쓰기다. 일단 시작하기 어렵다. 그래서 먼저 무조건 쓰라고 한다. 하지만 그걸로는 동기 부여가 안된다. 남에게 내 글을 보인다는 게 부끄럽고, 글을 이거밖에 못쓴다고 조롱 할거 같아 두렵다. 태생이 관종인 사람이 아니고서는 이걸 넘어서기 어렵다. 그런 면에서 난 관종이고 뻔뻔하다.


책을 읽는데 남는 것도 별로 없고 기억나는 것도 없어서 독서모임에 가입했다. 자기가 읽은 책을 소개해야 하는데 계속 어버버 거렸다. 준비된 생각이 말로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서평을 쓰기 시작했다. 말은 한번 내뱉으면 끝이지만 글은 고치면 된다. 말은 두서없이 왔다 갔다 했지만 글은 순서를 바꾸고 잘못 쓴 건 고치면 되고, 중언부언 한건 빼면 된다. 다만 그만큼 시간을 투여해야 한다. 이런 면에선 난 말보다 글이 편하다.


강연 내용 중에 기억나는 건 “글은 기억과 상상력으로 쓰는 거다."라는 말이다. 내가 서평을 쓸 때 쓰던 방법은 책에서 괜찮았던 문구를 바탕으로 요약하며 코멘트하는 거였는데 머리를 한방 맞은 기분이었다. 온전히 내 기억에 의존해야 상상력도 나오고 내 감정과 내 글이 되는 거다.


두 번째는 “질문으로 써라." 서평의 핵심은 작가가 이 책에서 말하려고 하는 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하면 된다. 책의 내용보다 중요한 건 이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이다. 글을 쓰는 과정은 여러 질문에 대해 답을 하는 과정이라는 말에 동감한다. 그런데 평소에 어떤 주제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이 있어야 질문도 할 수 있다.


세 번째는 “통찰이 있어야 한다." 글을 쓴다는 건 남에게 내 생각을 전달하는 것이지 자기만족이 아니다. 보여주지 않는 글은 의미가 없다.  남의 생각이 아닌 내 생각을 전달하려면 필요한 게 통찰이다. 통찰이란 어떤 이슈에 대한 핵심이나 본질 또는 맥락이다.


서평을 꾸준히 써왔지만 피드백이 별로 없어 내가 잘 쓰는 건지 어떤지 알 수가 없다. 와이프에게 보여주면 너무 딱딱해서 이해도 잘 안되고 재미없다고 한다. 그래서 요새  왜 쓰는가에 대해 숙고 중이었다. 글을 쓴다는 건 생각을 한다는 것이고, 내 생각을 정리한다는 것인데 이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지난 글에서 고민하다 ‘실천하기 위해'라고 썼는데 무언가 뒤끝이 남았다. 솔직하지 못한 기분이랄까?


글을 읽는다는 것은 정보와 재미, 또는 슬픔이나 기쁨 같은 감정, 그리고 통찰을 얻는 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생각한다는 것이고, 생각을 통해 통찰을 얻는 것이고, 그 통찰을 남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쓰다 보니 이것이 글을 쓰는 이유이자 본질 아닌가?


글을 쓰는 이유는 나의 통찰을 남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p18

결과적으로 잘 보여주는 사람은 더 잘 쓰고, 안 보여주는 사람은 갈수록 못 쓴다. 보여주지 않는 글은 의미가 없다.


p67

창의란 곧 자기 생각을 표현할 줄 아는 것이다. 내 생각과 남의 생각을 섞을 줄 아는 것이다. 남의 생각에 자기 의견을 붙일 줄 아는 것이다. 창의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겨자씨에서 살이 붙는 게 창의성이다. 우리는 누구나 작은 겨자씨 하나씩은 갖고 있다.


p110

내 생각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쓰고 말하는 것밖에 없다. 내 말과 글이 내 생각이고, 곧 나다. 나는 글을 쓰면서 이것이 정말 내 생각인지 확인해본다.


p136

글의 설득력과 논리는 순서에서 나온다. 물론 순서를 세울 내용물이 먼저다. 그러나 순서를 알면 내용물을 채우기가 쉽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다. 순서를 안다는 것은 목차가 나온 것이고, 목차가 있으면 내용물을 하나씩 채워나갈 수 있다. 틀만 있으면 내용은 채워진다. 쇠틀만 있으면 밀가루 반죽이 붕어빵도 되고, 잉어빵도 되고, 국화빵도 된다. 쇠틀에 달렸다.


p269

읽기는 소유다. 남의 것을 내 것으로 만드는 일이다. 쓰기는 공유다. 내 것을 나눠주는 일이다. 남의 글을 읽은 대가로 그 빚을 갚기 위해 내 시간을 쓰는 일이다.


p285

글 쓰는 사람은 태생이 '관종'이다. 이들은 글을 들고 독자 앞에 나선다. 보여주기 위해 글을 쓴다. '나는 이것을 알고 있고 이렇게 생각하고 느꼈고 깨달았다'라고 얘기한다. 자신을 드러낸다. 이것이 나라고 외치는 것이 글쓰기다.


p288

독자는 세 가지를 원한다. 재미와 효용과 감동이다. 재미와 효용은 기본이고, 감동은 그 결과이자 덤으로 주어지는 산물이다. 최상의 글은 이 세 가지를 충족해준다.

재미는 필요조건이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에서 나온다. 그 대신 지식이나 설명이 아니라 이야기로 접근해야 한다. 효용은 충분조건이다. '어떻게, 왜'로 얻어갈 거리를 줘야 한다. '어떻게'로 노하우를, '왜'로 깨우침과 지적 포만감을 안겨줘야 한다. 재미가 없으면 읽지 않고, 재미있게 읽었는데 얻어가는 게 없으면 화를 낸다. 재미있게 읽었는데 기대 이상의 소득이 있으면 수지맞았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횡재했다고 느꼈을 때 독자는 감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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