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오스트리아의 수도인 이 도시를 빈으로도 부르고 비엔나로도 부릅니다. 빈은 중부 유럽 동쪽 끝에 위치한 이 나라의 공용어인 독일어를 따른 것이고, 비엔나는 세계 공용어인 영어를 따른 것입니다. 독일어권이든 이탈리어권이든 프랑스어권이든 유럽의 수많은 도시들은 이렇게 모두 영어명도 있을 텐데 우리나라에서 이 도시만큼 두 언어로 부르는 비율이 비슷한 도시는 흔치 않습니다. 베니스와 베네치아가 언뜻 떠오르네요. 언어 구조도 비슷해 보입니다. 하지만 스펠링으로 보면 영어인 Venice와 이탈리어인 Venezia와는 달리 Wien과 Vienna는 엄연히 생김새부터가 다릅니다. 언어의 차이겠지요. 아무튼 이제 저는 서둘러 비엔나로 가야 합니다. 갈 길이 바쁜데 괜한 도시명에 꽂혀 시간을 좀 낭비했습니다.
1995년 4월의 어느 날 밤 저는 베네치아의 산타루치아 기차역에 있었습니다. 베네치아에서 비엔나로 가는 유로나이트 기차에 탑승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유로나이트(EuroNight, EN)는 유럽에서 밤 기차만 전문적으로 운행하는 철도 회사입니다. 당시 전 배낭여행 중이었으므로 서울에서 끊어 간 유레일 패스로 탑승했는데 유럽의 철도는 그 운행 시스템과 각양각색의 기차와 역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도시나 유적지를 관광하는 것 이상으로 놀랍고 재미있었습니다.
여행 중 그날 밤 처음 타 본 유로나이트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쿠셋을 갖춘 침대차도 팬시했지만 밤새 12시간에 걸쳐 비엔나까지 달린 그 기차에서 내릴 때 차장이 아침 식사 쿠폰을 주어서 그랬습니다. 비엔나 중앙역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아침을 먹고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유레일 패스 티켓 값에 포함된 것이었겠지요. 그런데 참 기발하고 재미있지 않습니까? 아마 기차 탑승 중 아침 시간이 되었다면 식당칸에서 먹게 해주었을 것입니다. 덕분에 태어나서 비엔나에 처음 도착해 제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이렇게 예상치 못한 아침을 먹은 것이었습니다. 그 도시의 신선한 아침 공기에 이어서 말입니다. 기분 좋은 비엔나의 첫인상이었습니다.
세계 음악의 수도 아름다운 비엔나의 아침 (출처, Pixabay)
비엔나가 역사에 처음 등장한 것은 로마 시대였습니다. 지금의 비엔나와 반드시 일치하는 도시 위치는 아닐지 몰라도 우리는 그 시대의 그곳을 알고 있습니다. 본 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2000년에 개봉한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였습니다. 극장에서 그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 도입부의 전율감이 지금도 떠오릅니다. 제가 본 영화의 전투 씬 중 최고의 장면이 화면이 열리자마자 쏟아져 나왔습니다. 겨울 전투 씬인데 로마군이 적진을 향해 쏘아대는 불폭탄이 마치 관객석의 제 머리 위로 불벼락처럼 떨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 장면은 2세기 말 당시 로마인과 게르마니아의 야만인들과 국경에서 벌어진 전투였습니다. 당시 전장에 가있던 로마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가 전투를 독려했던 그 로마의 동북부 국경 요새는 다뉴브강에 접한 군사 요충지인 빈도보나(Vindobona)로 추정됩니다. 황제는 그 전투 중 병사해 철인 황제 5명이 이어서 다스렸던 로마의 오현제 시대는 막을 내립니다. 그리고 그가 죽기 전까지 끝까지 사수하고자 했던 그곳 빈도보나는 후에 비엔나로 불리게 됩니다. 그 빈도보나를 둘러싼 지역, 사람들은 그곳을 후에 동쪽에 있는 땅이라 하여 오스트리아(Österreich, Austria)라 불렀습니다.
오스트리아 공용어인 독어로는 외스트라이히라 부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아무도 그렇게 부르지 않습니다. 마치 처음 듣는 국가명 같습니다. 같은 언어 구조인 그 나라의 수도 비엔나와 빈은 둘 다 쓰면서 말입니다. 그보다는 지금은 거의 사용하지 않지만 한자인 오지리(墺地利)라 부른 적이 있었습니다. 오스트레일리아를 호주(濠洲)로 부르듯이 말입니다. 우리나라 초대 이승만 대통령의 부인으로 대한민국 첫 퍼스트레이디인 프란체스카 여사를 당시 호주댁으로 부르기도 했다는데 그녀는 오지리댁으로 불려야 했습니다. 그녀의 모국이 오스트리아니까요. 오스트리아와 오스트레일리아, 전혀 다른 이 두나라를 우리말이 비슷하다 해서 혼돈한 데서 비롯된 일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오스트리아는 우리나라와 일찍이 이렇게 특별한 연이 있는 나라이기도합니다. 그 오지리댁의 고향이자 친정은 비엔나의 근교였습니다.
오스트리아는 서로마 멸망 후 신성로마제국의 지배를 받아오다가 13세기경 그 제국의 어떤 가문의 영유지가 되면서부터 650여 년간인 20세기 초까지(1273~1918) 그들의 지배 하에 놓이게됩니다. 그 가문이 바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합스부르크입니다. 유럽 역사에서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중부 유럽의 강자로 군림하며 유럽 전체를 쥐락펴락 호령했던 가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정략결혼을 통해 그렇게 지배력을 강화해 나갔습니다. 비엔나의 쇤브룬 궁전에서 만난 어린 모차르트를 피해 프랑스의 루이 16세와 결혼한 마리아 테레지아 황후의 딸 앙투와네트도 그런 케이스였습니다. 그 가문은 그런 식으로 오스트리아 = 합스부르크라는 등식을 만들 정도로 오랜 시간 유럽에선 드물게 왕가의 교체 없이 찰떡궁합을 보여주었습니다.
오스트리아의 지배자 합스부르크 가문의 문장
자연스레 그들이 터를 잡고 영주했던 수도 비엔나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종가가 되었습니다. 도시 내에 합스부르크의 위세를 짐작하고도 남을 거대하고 화려한 쇤브룬 궁전이 대대로 그들의 집이었습니다. 그 궁전이 노란색인 것은 합스부르크의 문장의 컬러를 따른 듯합니다. 그 궁전에서 합스부르크는 비엔나를 정치와 권력, 그리고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로 만들었습니다.
비엔나의 심장 쇤부른 궁전과 도시 전경 (출처, Pixabay)
비엔나에 가면 많은 비엔나가 있습니다. 1995년 제가 베네치아에서 밤 기차로 출발해 비엔나에 도착한 그날 아침도 저는 중앙역 레스토랑에서 몇 개의 비엔나를 만났습니다. 비엔나에 도착하자마자 말로만 듣던 그들과 상견례를 한 것입니다. 제가 그날 먹은 조식 메뉴 중에 소시지가 있었습니다. 비엔나소시지입니다. 가늘고 키 작은 소시지들이 줄줄이 사탕처럼 연결된 바로 그 소시지를 본토에서 처음으로 먹은 것입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소시지를 좋아했는데요 진주햄이라는 비닐 포장지에 둘러 쌓인 굵고 긴 둥근 소시지였습니다. 그런데 이후 생김새가 전혀 반대인 소시지가 나왔는데 그것이 비엔나소시지였습니다. 기존 먹던 소시지와는 달리 코팅이 되어있어 터지는 맛이 좋았던 소시지였습니다. 비엔나에서 만들기 시작했다 해서 비엔나소시지입니다.
그곳에서 식사 후 저는 디저트로 커피를 마셨는데 이번에도 비엔나였습니다. 커피 위에 달콤한 생크림이 듬뿍 올라탄 비엔나커피입니다. 커피는 17세기 말부터 유럽에서 유행하여 주요 도시마다 커피하우스들이 우후죽순 생겼는데 예술의 도시 비엔나에 커피하우스가 많이 생긴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바흐가 독일 라이프치히 커피하우스를 알리기 위해 <커피 칸타타>를 만든 바로 그 시기입니다. 비엔나의 첫 커피하우스는 1683년에 문을 연 '블루 보틀(Blue Bottle)'이었는데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블루 보틀 맞습니다. 샌프란시스코의 커피하우스 블루 보틀은 비엔나 커피하우스였던 그 상호를 브랜드화시킨 것입니다. 비엔나에서의 첫 아침, 아침 식사 후 전 이렇게 우아하게 첫 비엔나를 마셨습니다. 그 커피의 달콤하고 진한 여운이 글을 쓰는 지금 저의 침을 고이게 합니다.
그날 아침 그 레스토랑엔 한 가지 비엔나가 더 있었습니다. 바로 그 비엔나커피를 담은 커피잔, 그것도 비엔나였습니다. 비엔나는 독일 드레스덴 근교의 마이센에 이어 유럽에서 두 번째인 1719년 도자기 생산에 성공한 도시이기도 합니다. 차이나가 그러하듯 도자기는 도자기를 굽는 가마가 있는 지역 이름이, 즉 비엔나, 마이센, 세브르, 헤렌드 등이 곧 브랜드가 됩니다. 당시 유럽에선 중국 도자기인 차이나가 워낙 귀하고 비싸 모든 국가에서 도자기 제작에 심혈을 기울였는데 도시 비엔나가 두 번째로 성공한 것입니다. 국가적 사업이었기에 합스부르크 왕가는 로열 비엔나에 합스부르크 가문 문장에 있는 방패의 실루엣을 도자기의 백 스탬프로 새기게 할 정도로 그것을 중하게 여겼습니다. 마리아 테레지아 황후 생전엔 비엔나 도자기의 운영권을 황실에서 그녀가 직접 경영하기도 하였습니다. 국가의 왕이 회사의 사장 역할을 한 것입니다.
예쁜 커피잔을 보면 살짝 뒤집어 보고픈 욕망, 그래서 확인한 비엔나 스탬프, 그렇게 비엔나 커피잔에 담긴 비엔나커피, 생각만 해도 너무 멋지지 않습니까? 물론 제가 그날 마신 커피잔은 현대에 와서 대량으로 찍어낸 제품이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전 비엔나에 도착하자마자 비엔나 3종 세트로 호사를 누리며 비엔나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오로지 비엔나인 비엔나의 아침이었습니다.
매년 새해 첫날 아침이 밝으면 비엔나를 대표하는 오케스트라인 빈필은 마치 새해의 등장을 축하하는 팡파르를 울리듯 비엔나에서 연주회를 갖고 동시에 그 연주 실황을 전 세계에 전송합니다. 그들이 연주한 경쾌하고 아름다운 왈츠와 폴카, 그리고 힘찬 행진곡이 세계 각 도시로 배달되어 전 세계인이 새해를 함께 즐기는 것입니다. 1941년부터 시작된 이 음악회는 1945년 한 해만 거르고 코로나로 시끄러운 올해까지 예외 없이 진행되었습니다. 만약 세계 도시들 중 음악의 수도를 정하는 투표를 한다면 단연코 비엔나가 1위로 선정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비롯한 세계 시민들은 그 도시에서 울려 퍼지는 새해의 첫 음악을 그렇게 열광하며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세계 각 도시에서 많은 신년음악회가 열리지만 '신년음악회 하면 빈필', 이렇게 인정하며 말입니다. 그만한 자격이 있고 권위가 인정되는 비엔나의 오케스트라이고 음악이기에 그럴 것입니다.
전 세계에 새해의 시작을 알리는 빈필 신년음악회, 2022. 1. 1
비엔나는 바로크 음악 이후 출현한 고전주의 음악의 산실입니다.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이 다 이 도시를 무대로 활동했으니까요. 하지만 그들만이 그렇게 했을까요? 고전주의를 잇는 낭만주의의 많은 음악가들과 현대의 음악가들이 그들 마음속에 비엔나를 넣지 않고 음악을 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베토벤은 독일인이지만 35년간 비엔나에서 활동하며 악성으로서 그의 음악적 성공을 그곳에서 이루었습니다. 같은 독일인 브람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그 이전 클래식 음악의 조상과도 같은 바로크 음악의 비발디도 말년엔 그의 고국 이탈리아를 등지고 비엔나에서 활동하였습니다.
설사 그들처럼 비엔나에서 활동은 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음악가란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면 마치 음악의 성지를 순례하듯 그 도시를 찾았을 것입니다. 음악에 문외한인 일반인들도 음악을 떠올리며 그곳을 방문하니까요. 물론 오스트리아 출신인 하이든, 모차르트, 슈베르트, 볼프, 슈페르거, 요한 슈트라우스, 주페, 말러 등의 음악 무대는 당연히 비엔나였습니다. 음악의 수도가 있는 나라의 시민이니 굳이 음악 유학이나 활동을 하러 다른 나라나 도시를 갈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비엔나에 가면 여전히 영화 <아마데우스>에 나왔던 음악의 신동 모차르트와 그의 가족, 그리고 음악을 진정 사랑했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왕족과 귀족들, 그리고 궁정 음악가들이 있을 것만 같습니다. 과거 18, 19세기의 모습 그대로 말입니다. 그래서 여전히 밤마다 어디선가는 그런 고풍스러운 음악회나 무도회가 도시 곳곳에서 열리고 있을 것만 같습니다. 비엔나에서만 느낄 수 있는 음악적 정취입니다. 이것이 환청이고 환상일까요? 모르지요 비엔나를 주 무대로 활동했던 위의 음악가들이 죽어서 음악의 신이 되어 비엔나를 떠나지 않고 그곳 시민들과 함께 어울려 살고 있을지도요. 마치 고대 그리스의 신들이 인간과 함께 어울려 살았듯이 말입니다. 그 음악가들의 묘지는 고스란히 비엔나에 있으니까요. 불운한 말년을 보낸 비발디나 모차르트도 묘지는 없지만 찾지 못한 그들의 유해도 비엔나의 어딘가에 여전히 묻혀있을 것입니다. 고전주의 트리오의 맏형 하이든만이 유언에 따라 묫자리를 다른 곳에 써 비엔나에서 떨어진 아이젠슈타트에 그의 묘가 있습니다.
음악의 신들이 모여 있는 비엔나 중앙 묘지, 좌로부터 베토벤, 모차르트, 슈베르트
실제 비엔나에선 연중 내내 도시 곳곳에서 음악회가 열립니다. 다시 시계를 되돌려 1995년, 저도 비엔나에 왔으니 음악회도 한 번 보고 가야 했습니다. 본래 계획엔 없었는데 쇤브룬 궁전 관람을 마치고 나오는데 출구 앞에서 궁정 음악가 복장을 한 소년들이 당일 저녁 음악회 티켓을 팔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요한 슈트라우스의 왈츠 음악회였습니다. 생각보다 가격도 비싸지 않아 티켓을 구입하고 그날 저녁 그곳에 갔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장소가 무슨무슨 팰리스였는데 가보니 빈필 신년음악회가 열리는 무지크페라인과 별 차이 없는 멋진 궁전이었습니다. 당연히 그것은 문제가 안 되었습니다.
문제는 저의 복장이었습니다. 젊은 배낭여행객이 예정에 없던 음악회를 가다 보니 옷이 준비가 안 된 것인데, 그래도 갔던 것은 티켓 판매 방식도 그렇고, 가격도 그래서, 그런 적당한(?) 음악회인 줄 알고, 그래도 음악회니 갖고 간 옷 중 그나마 격식있는 옷을 입고 갔는데 그곳엔 거의 모든 관객들이 쌍쌍이 예복을 입고 참석한 것입니다. "아, 이런 망신이.." 정말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 수가 없었습니다. 몇몇 동양인만이 저와 같은, 또는 저보다 못 한 복장을 하고 앉아있었습니다. 저를 제발 한국 사람으로 안 봐주기를 기원했습니다.
지금은 그럴 일이 없겠지만 해외여행 자유화 실시가 얼마 안 된 1995년에 일어난 저의 비엔나 흑역사였습니다. 음악회는 훌륭했습니다. 저의 예상과 달리 적당한 음악회가 아니었습니다. 4월이었는데 빈필 신년음악회와 유사한 방식으로 막간 발레까지 더해 경쾌하고 흥겹게 진행되었습니다. 비엔나를 찾은 관광객들에게 참석 못한 신년음악회의 경험을 주고 싶었나 봅니다. 얼굴은 화끈거렸지만 아침에 이어 비엔나를 제대로 실감한 저녁이었습니다.
이렇게 매일 밤 음악회가 열리는 비엔나지만 다음 날 아침잠에서 깨니 멀리 알프스 산 위로부터 긴 담뱃대 같이 생긴 알프스호른의 소리가 메아리치듯 도시 전체에 울리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 산 중턱 티롤 지방의 소의 목에 달린 커다란 워낭 소리도 타악기처럼 들려오는 듯했고요. 그리고 그 산에서 자라는 오스트리아의 국화인 <에델바이스>의 노랫소리와 그 산을 배경으로 한 영화 <사운드오브뮤직>의 <도레미송>도 아름답게 들리는 듯했습니다. 평화로운 비엔나의 아침이었습니다. 이렇듯 접경 국가인 스위스와 많은 부분 알프스를 공유하지만 알프스조차 음악만큼은 오롯이 오스트리아의 것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들의 삶 속에 음악이 녹아있다는 것이겠지요.
뮤직, 댄스.. 누가 봐도 비엔나, 또는 비엔나스러운..
20세기 초 요즘의 러시아를 포함한 G8과 같은 세계 8대 강국에까지 들었던 유럽의 강자 오스트리아제국은 1차 세계대전의 패배로 650여 년간 이어온 합스부르크 가문이 퇴출을 당하였습니다. 그리고 또 일어난 2차 세계대전에선 독일과 엮이어 추축국이 아님에도 또 패전국처럼 되어버렸습니다. 그로 인해 과거 화려하고 강력했던 합스부르크의 오스트리아는 국제사회에서 막강한 정치권력을 상실하였습니다. 과거엔 나폴레옹이 일으킨 유럽전쟁의 전후처리를 위해 비엔나에서 당시 재상이었던 메테르니히에 의해 역사상 최초로 국제회의를 주재하기까지 했던 그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러함에도 천혜의 알프스 자연과 문화와 예술적 자산을 보유한 오스트리아는 세계에서 여전히 그 존재감을 뽐내고 있습니다.
특히 수도 비엔나는 2018년과 2019년, 2년 연속으로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선정되었습니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 미디어 그룹이 선정한 결과입니다. 합스부르크 가문의 안방으로 그들이 6세기에 걸쳐 구축한 편리하고 안전한 도시 시스템이 그렇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과연 알프스의 국가답게 세계의 주요 도시 중 1인당 공원 면적이 가장 넓은 것도 선정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문화 예술 유산과 함께 비엔나를 여행자들이 원픽으로 꼽는 주요 이유일 것입니다. 가장 살기 좋은 도시는 가장 여행하기 좋은 도시이기도 하니까요.
비엔나엔 이렇게 많은 비엔나가 있지만 그래도 그중에 제일이 음악임은 그 누구도 이견이 없을 것입니다. 현대에 와서 미술에 클림트와 에곤 쉴레 등의 예술가와 제국 시절 릴케, 카프카, 프로이트 등의 문인들이 활약하였지만 그래도 그간 누적되어온 비엔나의 음악적 자산엔 턱없이 모자랍니다. 전통과 그것이 이어진 유산이라는 것은 쉽게 사라지는 것이 아니니까요. 그래서 그것은 시간이 흐를수록 강화되어 고전(Classic)으로 굳어지는 것입니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 등이 활동한 아테네가 철학의 수도가 되고 그들의 기록이나 작품이 수천 년이 지나도 변함없이 읽히는 고전이 되었듯 비엔나도 그런 길을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말 그대로 고전이라 번역되는 클래식 음악의 수도인 비엔나입니다.
* 위의 글은 오는 6월 4일 오후 8시 예술의 전당 IBK 챔버홀에서 열리는 <Only in Vienna> 음악회의 프로그램북에도 실릴 내용입니다. 지난 3월 <19세기 유럽 개화기의 여성 작곡가>에 이은 '프렌즈오브뮤직'의 올해 두 번째 프로젝트입니다. 이번에 연주될 음악은 타이틀에서 보듯 18, 19세기에 비엔나에서 활발하게 활동한 음악가들 중 브람스, 슈베르트, 슈페르거의 아래 곡들로 구성되었습니다.
- J.M. Sperger / Duo for Viola and Double Bass
- J. Brahms / Trio for Clarinet, Cello and Piano in a minor, Op. 114